일단 터지면 겉잡을 수 없는 게 핵폭탄만은 아니다. 세금폭탄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금은 모두가 가까이 하고 싶어한다. 반면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금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죽음('주금')과 세금이다.” 아무리 강단있고 베짱 좋은 정치인이라도 ‘세금 좀 더 내셔야 한다’는 말은 차마 못 꺼낸다.

세금 징수는 늘 납세자로부터 반발을 일으켰다. 프랑스에서는 소금세에 대한 증오심이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됐다. 또한 세금은 미국이 영국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벌이는 데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말기인 1979년 부마(釜馬)항쟁 때 시위 군중 사이에 “부가가치세 철폐하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2년 전 박 정권이 안정적 세원 확보를 명분으로 도입한 부가세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부가세 신설에 등을 돌린 민심은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공화당에 참패를 안겼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부가세를 인상했다가 총선에서 졌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신설된 ‘종합부동산세’가 정권 교체의 큰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일화가 있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으로 항의 전화가 왔다. “왜 종부세를 만들어 서민을 어렵게 만드느냐”라는. 물어봤더니 월세 사는 분이었다고 한다. 잘 알겠지만 종합부동산세는 당시만해도 6억 이상의 집 가진 사람에게만 물었다.

세금을 적게 받았더니 애국심이 샘 솟은 사례도 있다. 주인공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당시 국민이 주는 것만 받아 영국 세율은 유럽에서 가장 낮았다고 한다. 여왕의 정책에 감동받은 국민들은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전쟁 때 자발적으로 주머니를 털었다. 새로운 장비로 무장한 영국 함대는 승리했고 대영제국의 돛을 올리게 됐다고 하고.

결국 ‘세금의 추가 징수는 신중하라’는 원리는 동서고금 다르지 않다. 과도한 세금 징수가 군주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챈 중국의 한비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군주는 남의 부녀자와 재산을 넘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도 비슷한 조언을 했다. 그러다보니 조세저항 없이 세금을 받아낼 구상으로 군주의 머리는 쉴 날이 없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 시절에는 세금을 새로 부과할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상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공직에도 발탁될 수 있었다고 한다. 빨래 할 때 내는 ‘세탁세’, 모자 쓸 때 내는 ‘모자세’ 등이 이 제도를 통해 나온 작품들이다.

최근 여당과 보수성향의 신문들이 야당의 무상복지 당론에 대해 세금폭탄론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사실 상대의 복지정책을 세금폭탄으로 규정하는 순간 복지란 논점은 희미해진다. 그러면 진지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쟁은 불가능해진다. 그러자 반대편에서는 이런 논리가 나온다. “사실 폭탄으로 치면 온갖 복지예산을 집어삼키는 ‘4대강 폭탄’만한 게 또 있을까. 그럼에도 세금폭탄이란 말은 계속 듣게 될 것 같다. 첫째, 한나라당이 이 좋은 정치공세 용어를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고 둘째, 집권당이 되니 지켜야 할 자기이익이 더 커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민주당 강봉균, 김효석, 김영환 같은 의원들은 재원 마련 대책의 취약성을 지적한다. 이걸 모를리 없는 손학규 대표는 “증세 없는 무상복지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편다. 세금 더 늘리지 않고, 어떻게 국가가 무상보육, 의료, 등록금 부담 절반 줄이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일까? 현재의 3+1 그러니까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와 등록금 부담 절반 줄이기는 잘못된 데에 허비되고, 낭비되는 돈을 줄이면 소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나라당도 마냥 반대만 하기엔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세금 폭탄론으로만 엄호하기엔 무상복지 논쟁이 간단치 않다. 무상복지라는 주제를 두고 반대만 하면 당은 복지를 반대하는 대안 없는 모습으로 비쳐 불리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부자감세, 서민예산 삭감 논란으로 당이 궁지에 몰린 형국 아닌가.

복지 천국으로 불리는 북유럽은 어떻게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놓는 구조가 됐을까. 이것도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국민의 세금 부담 규모가 2010년 현재 국내총생산의 약 31% 정도다. 북유럽 국가들 평균은 55%이고, 유럽연합 국가들 평균은 51%, OECD 국가들 평균은 45%이므로 우리나라의 조세 재정 규모는 형편없이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정 규모가 유럽 선진국 수준은 아니라 OECD 평균 수준에라도 도달하려면 14% 포인트가 더해져야 한다. 말하자면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 걸 듯 증세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난하다. 북유럽도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꾸준한 비전 제시, 국민 설득이 필요하다.

어느날 갑자기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의회 다수당이 바뀌었다고, 복지천국이 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사실 북유럽은 부자증세와 복지재정지출을 통해 부를 위로부터 아래로 적극적으로 이전시키는 복지국가 펌프를 설치한 덕택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사회 정의와 공정.공평을 달성했다. ‘이렇게 가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북유럽의 길이 옳다면 증세는 필연적이고 가진 자의 희생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그걸 감당할 아량이 있느냐는 것이다. 논의의 장은 열린 셈이다. 생산적인 토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