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등단 40주년을 맞은 작가 박완서씨가 22일 별세했다.

천주교 신자인 고 박완서 씨는 향기로운 신앙의 문필을 많이 남겨 큰 감동을 선사했다.

“아기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아기 예수를 닮았는지요. 인종이나 피부 빛깔,성별까지도 초월해서 말입니다. 아기마다 광배(光背)를 타고 난 것처럼 빛이 충만해 그 근처만 가도 사람들 얼굴은 환해지고 가슴은 울렁거립니다.”(‘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중)

고 박완서 씨가 크리스천이 된 것은 오십을 갓 넘은 1985년. 신앙을 갖기로 마음 먹은 배경은 간단했다. 예수가 자신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는 자녀에게 큰 복은 못 주시더라도 재난이야 주실까 하는 은근한 생각이었단다. 또 우아하게 늙고 싶다거나, 뭔가 희망을 갖고 죽고 싶다는 심산이었단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나약함이나 불완전함을 상쇄시켜줄 절대자를 갈망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다 시험이 왔다. 의사를 꿈꾸던 아들 또 동창생의 죽음이었다.

“주님, 고백합니다. 요 며칠 동안 당신에 대한 극심한 분노와 의혹에 시달리고 있음을. 며칠 전, 동창생이 죽었습니다. 원망 끝에 문득 뭐가 떠올랐는지 아십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당신의 시신이었습니다. 바로 제 자식도 이렇게 죽일 수 있다는 아버지, 엄혹 그 자체라는 깨달음이 전율처럼 등줄기를 스쳤습니다.”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에 이와 관련한 정리된 마음이 담겨 있다.

“열심히 사느라고 살았건만 문득 뒤돌아볼 때, 도무지 산 자취 없음은 생애를 스쳐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묘한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교묘한 순간들을 기억해내기로 하면 한이 없어,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 뒤를 졸졸 귀찮도록 따라다니면서 환난으로부터 지켜주고, 고통을 받을 때 위로해주고,좌절했을 때 용기를 주고, 교만했을 때 시련을 주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한편 수필집 ‘한 말씀만 하소서’에 등장하는 내용이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잡다하게 읽은 책 중 어떤 목사님이 죽었다 깨어나서 보고 왔다는 천당이 생각이 났다. 바닥은 온통 황금이고 궁전 같은 집은 화려한 보석으로 되어 있더라고 했다. 내가 상상한 천당하고 너무 달라서 더 읽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 내가 그랬으면 하고 그려보는 천당은 내 고향 마을과 별로 다르지 않다. 풀밭, 풀꽃, 논, 밭, 맑은 시냇물, 과히 험하지도 수려하지도 않지만 새들이 많이 사는 산,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좋아 맨발로 걷고 싶은 들길, 초가집 등이 정답게 어울린 곳이다. 내 고향 마을에서 천당으로 옮겨놓고 싶지 않은 건 터무니없이 크고 과히 깨끗치 못한 뒷간 뿐이다.”

그는 갈망하던 천국을 향하게 됐다. 생애 마지막 거처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빈소이며, 발인은 25일이며 영면할 장지는 용인 천주교 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