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어디 가서 목사란 신분을 밝히기가 부끄럽다. 과거에는 부정을 저지른 교회 중직들의 뉴스가 매스컴에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도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목사들의 뉴스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이어 터지고 있는 뉴스의 단골메뉴가 이름 있는 목사들의 부정, 음행, 권력 다툼의 추태 소식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한국교회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 그 동안 은폐 되었던 일들을 백일하에 폭로하고 계시는가?’라는 두려운 생각이 앞선다.

오늘 우리 목회자들은 검은 사회 풍조 탓인지 너무나 세속화 되고 있다. 때로 목회자들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면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화제의 내용들이 불평 일색일 때가 많다. 교회 크기에 비해 너무 인색한 사례금, 점점 거세지고 있는 교회 장로들의 기세와 견제, 낡은 사택과 승용차, 안식년이 되었음에도 냉담한 교회, 등등 끝이 없다. 아니면, 세상 정치나 교단 정치 이야기에 지나치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더 한심한 것은 그런 틈바구니에서 필자의 마음도 똑같은 불만으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날이면 복음서나 바울 서신을 읽으면 죄의식으로 가득 차게 되고, 기도의 문이 막히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오늘의 목회자들은 한국 초기의 선교사나 목회자, 일제나 공산 치하에서의 목회자들에 비하면 얼마나 높은 대접을 받고 있는가? 그렇다면 날마다 감사하면서 종의 도를 따라 목회해야 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왕 같은 대우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주기철 목사의 4남인 주광조 장로(영락교회)는 「죽음을 이겨낸 영원한 삶」이란 저서에서 당시 주 목사가 일제의 고문에 의해 몸이 찢기고 손톱과 발톱이 모두 빠져 나갔으며, 하루에도 여러 차례 실신했다고 증언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런 모진 고문을 받고 있는 동안, 일제의 사주를 받은 평양노회는 1941년 1월 창동예배당에서 모여서, 산정현교회의 목사관을 신학교 사택으로 쓰게 해달라는 평양신학교의 청원을 이의 없이 가결했다는 사실이다.

산정현 교회는 그런 노회의 만행을 막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일제 총칼 앞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주 목사의 노모와 어린 아이들이 목사관에서 쫓겨나 그 추운 겨울에 헛간에서 사흘을 보내야 했고, 해방이 될 때까지 그 가족들은 무려 열세 번이나 집을 옮겨 다녀야 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주 목사는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자기 한 몸이 고문을 당하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데 노모와 어린 아이들이 사택에서 쫓겨나 유리걸식하게 만든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가장 잔인한 고문이었다.

아니, 온 교회들이 힘을 합쳐서 주 목사를 도와야 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가해자가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통탄할 일이 아닌가? 일제와 공산 치하에서 목회했던 선배 목회자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호강을 누리며 목회를 하고 있는가? 그 분들이 나사로의 삶을 살았다면 오늘의 목회자들은 부자와 같은 환경에서 목회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부터 30-40년 전만 해도 목회 환경이 열악했다. 필자는 목사가 된지 40년이 지나고 있다.

처음 시골 목회할 때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음으로 여름에는 석유 등불 밑에서 마이크나 선풍기 없이 설교함으로 땀범벅이 되었어도 목욕탕이 없어 부엌에서 목물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겨울 땔감이 나무여서 사택이나 교회당은 연기 속에 시달렸고, 또한 재래식 변소 하나로 교인들과 함께 사용하다 보니 그 불편함이란 말이 아니었다. 전화는 동네 이장 댁에 비상전화가 고작이고, 버스는 하루에 세 번 다니는 형편이어서 부부가 아픈 아이를 교대로 업고 면 보건소를 찾아 십리 길 언덕을 넘기도 했다.

당시 목회 업무량은 너무나 과중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봄과 가을 대심방, 매년 2차례씩 개최하는 부흥회, 부교역자 없이 새벽기도회, 구역권찰회, 금요기도회 등 각종 예배와 성경공부를 담당해야 했으므로 늘 피곤에 찌들어 살아야 했다. 그런데다가 장례가 나면 염습(殮襲)까지 담당해야 했다. 그 때는 병원에서 돌아가는 것은 객사라고 여겨서 운명할 임박에는 집으로 모셔옴으로, 뜨거운 여름날에 중병으로 돌아간 분에게 수의를 입히다 보면 악취가 진동하고 시신에서 흐르는 내용물로 양말이 흥건히 젖는 등 곤욕을 치뤄야 했다.

일제나 공산치하, 60-70년대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목회적 환경이 좋아졌는가? 버스를 몇 번 갈아타야 하던 심방에서 이제는 교회차를 이용할 수 있다. 설교 원고를 노트에 적는 대신 컴퓨터로 쉽게 작성하고, CD나 인터텟을 통해서 쉽게 설교 자료를 구할 수 있다. 냉난방과 최고급 음향 시설이 장치된 장소에서의 예배 인도, 등사기로 주보를 작성하던 것에서 컴퓨터로 화려한 주보나 현수막을 제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는 끼니가 없어 굶기는 커녕, 이제는 호텔에서 뷔페식을 대접 받으면서 ‘이 호텔 음식이 맛이 있니, 없니.’라고 품평이나 하는 등, 배부른 소리를 하기 일 수가 아닌가?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님 때문에 손톱 하나 뽑히기는커녕, 필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뺨 한 대 맞은 기억이 없는 채, 편안하게 40여년의 목회를 마치고 은퇴 후 안식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박봉으로 연명하며 나사로 같은 삶에 시달리는 외진 산곡의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휴전선 넘어 북한 땅에는 일제시대 보다도 더 극악한 고문으로 시달리며 참담한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우리 남한의 목회자들은 왕처럼 대접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불만을 토하고 있으니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가? 어느 새 우리는 바산의 암소처럼 이처럼 기름져 버림으로, 점점 영적으로는 무디어지고 육체는 물질욕과 명예욕, 음욕으로 비둔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여기저기서 목회자들의 추태들이 터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된다. 여기서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맛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진 채, 교회와 사회로부터 힐책(詰責)을 받도록 하나님이 징계하실지 모르지 않는가? 한국의 목회자들이여, 선배들의 배고픔과 고난과 순교의 피 위에 우리는 이처럼 편안하게 사역하는 줄 알고 주 앞에 엎드리어 탐욕으로 굳어 있는 우리의 심령을 회개로 기경(起耕)하자. 더욱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우리에게 맡긴 양들을 온전히 돌보며 목회 사역에 전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