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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강력한 정적이 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정치 10단 |
| 서울 종로구 운현궁에서 만난 대원군과 명성황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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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0년대에서부터 90년대를 지나는 동안 우리 정치계를 풍미했던 세 김 씨를 일컬어 소위 정치 9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근대사에서 가장 걸출한 정치인을 내세운다면 단연 대원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원군을 정치 10단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원군이 3김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이다, 지난 주 대원군이 한 시대를 호령했던 운현궁을 찾아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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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현궁 노안당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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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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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인사동에서 낙원상가로 나가 왼쪽으로 경복궁을 향하여 걷다보면 교동초등학교와 덕성여대입구를 지나 바로 오른편에 고색창연한 기와집들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운현궁이다.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 114-10 사적 257호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운현궁은 고종황제의 아버지이며 구한말 국내외적인 격동기에 개혁정치와 쇄국, 그리고 며느리인 명성황후와 권력다툼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풍운의 정치가 대원군의 정치적 야망과 꿈, 그리고 절망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넓은 마당이 있고 오른편으로 옛 군관 복장을 한 인형들이 세워져 있는 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우선 눈길을 끈다. 이곳은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맡았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수직사(守直舍)다.
이곳을 지나면 담장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데 맨 오른쪽에 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노안당(老安堂)이다. 이곳은 대원군이 일상생활을 하던 곳이며 둘째 아들 명복이 고종임금으로 즉위한 후 10년의 섭정기간 동안 개혁정책이 논의되고 정치의 중심무대가 되었던 역사적인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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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현궁 앞 거리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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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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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당이라는 현판은 추사 선생의 글씨를 모아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추사 김정희의 독특한 필체를 엿볼 수 있다. 이 건물에는 대원군이 집무하던 모습과 큰아들인 이재면의 모습도 재현되어 있다. 건물의 오른편으로는 넓고 기다란 마루방이 있는데 대원군이 손님들을 접대하던 곳으로 '영화루'라고 한다.
그럼 대원군은 이 운현궁의 주인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고유명사일까? 그것은 아니다, 본래 조선시대에는 왕위를 계승할 적자손(嫡子孫)이나 왕의 형제가 없어서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승할 때 그 왕의 생부를 대원군이라고 호칭했다.
흥선대원군 이전에도 선조의 아버지 덕흥군을 덕흥대원군으로 추존했으며 철종의 아버지도 전계대원군이라 했다. 그러나 그들 대원군들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모두 사망했고 흥선대원군만 아들이 왕위에 있을 때 살아 있어서 섭정으로 왕권까지 행사했기 때문에 보통 대원군 하면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일컫는 호칭이 된 것이다.
역사적인 격동기에 왕실의 실권을 쥐고 있던 익종비 조대비와 흥선군의 정치적인 야심의 결합으로 왕위에 오른,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섭정을 편 흥선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대개 두 가지로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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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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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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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나는 땅에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서원의 철폐와 세제개혁,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을 편찬하여 법질서를 체계화한 개혁적인 정치가였다는 평이다. 그런가 하면 천주교도 박해와 쇄국정책으로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려운 국가재정 상태에서 경복궁을 중건하며 당백전을 발행하는 등 경제파탄을 야기했고, 며느리 명성황후와의 권력다툼으로 국가를 더욱 위기국면으로 만든 당사자라는 악평도 있다.
그러나 그의 정치행적이 고스란히 간직된 노안당은 쌀쌀한 오후의 기울어지는 햇살 아래 말이 없었다. 진실은 무엇일까? 후사가 없던 24대 헌종의 뒤를 이은 철종의 왕위계승도 정치적인 실세였던 왕실과 외척 세도가들의 정치적인 산물이었다.
23대 순조의 장인(국구)이었던 안동김씨 김조순으로부터 시작된 외척들의 세도정치는 헌종 즉위 후 헌종의 모후인 조대비의 부친 풍양조씨 조만영 일파로 5~6년간 집권세력이 교체되었지만 다시 안동김씨들이 세력을 잡은 상태에서 25대 철종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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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현궁 노락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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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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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와 풍양조씨, 다시 안동김씨로 거듭되는 외척들의 세도정치가 이어지는 동안 국정은 말이 아니었다. 왕은 그야말로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세도가들의 국정 전횡과 부패가 극에 달했다.
영·정조 대가 지난 후 조선의 국운은 급격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국왕다운 국왕이 없었고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등 외척들의 발호 속에 세도정치라는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의 삼정이 문란하여 백성들은 착취와 궁핍에서 허덕이고 지배계급인 세도가와 양반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지지 않고 법과 백성 위에 군림하며 호의호식을 구가하고 있었다.
왕실의 재정은 바닥이 나고 권위는 땅에 떨어져 말이 아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걱정하거나 돌아보지 않았다. 양반과 세도가들에게는 왕이나 국가는 없었고 오직 가문의 영광만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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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안당 정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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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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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도정치의 와중에서 흥선군 이하응은 살아남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춘다. 일설에는 그의 기이한 행적들이 나돌기도 하지만 확인 된 것은 없다. 그러던 중 25대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조대비와 흥선군의 동병상련의 뜻이 맞아 떨어져 고종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헌종 때 친정인 풍양조씨 가문의 세도정치로 권력의 맛을 알았던 왕실의 실권자 조대비는 안동김씨들의 세도정치에 숨을 죽이며 절치부심하다가 같은 처지에 있던 흥선군의 정치적 야심과 뜻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것은 당시 20세로 영민하다는 평판이 있는 흥선군의 큰아들 재면을 왕으로 봉하지 않고, 12세로 큰아들 재면의 재능에 미치지 못하던 어린 명복을 왕으로 봉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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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원군의 집무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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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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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정치적 야심으로 고종이 즉위한 후 대원군과 조대비 간에 한동안 권력의 줄다리기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결국 흥선군이 대원군의 자격으로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섭정을 펼친다.
노안당을 지나면 노락당(老樂堂)이다. 정면이 10칸에 측면이 3칸으로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툇마루 좌우로 9개의 방을 거느린 이 건물은 높고 웅장하다 하여 “노락당이 굉장히 높아 하늘과의 높이가 한 자 다섯 치 밖에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이 건물은 고종과 민비의 가례가 치러지고, 가족들의 회갑잔치 등 각종 잔치의 장소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명성황후가 삼간택이 끝난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즉 정치 10단의 대원군과 격동기의 여걸 명성황후의 악연이 시작된 곳인 셈이다.
당시 세도정치로 권력의 핵심이었던 안동김씨를 척결하고 개혁을 꿈꾸던 대원군에게 외척은 철저히 배척하고 싶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원군은 여흥민씨 집안이지만 세력이나 가솔들이 가장 미미한 집안에서 왕비 간택을 했다. 그래서 선택받은 사람이 명성황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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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현궁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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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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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정작 당사자인 며느리 명성황후가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정적이 되리라고는 정치 10단의 대원군으로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섭정을 펼친 10년 동안 이 운현궁에서 단행된 개혁과제들, 서원철폐와 세제정비, 법전편찬과 삼정의 개혁은 당시로서는 감히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정말 대단한 개혁이었다.
국가재정을 파탄으로 이끌며 이룩한 경복궁의 중건도 다른 한편으로는 왕실의 권위를 세우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었다. 세도정치에 치를 떨던 일반 백성들은 한 동안 그의 개혁정치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경복궁 중건에 따른 과중한 부담은 민심을 그의 반대편으로 돌리고 말았다.
거기다가 고종이 성년이 되자 그동안 대원군의 개혁단행으로 손해를 본 유림들과 양반계급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민심을 읽은 명성황후는 시아버지 대원군으로부터 왕권을 되찾기 위한 계략을 펼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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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물전시관에 전시돤 척화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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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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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다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권력은 역시 부자간에도 나누어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유림을 대표한 면암 최익현의 탄핵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대원군. 그러나 정치적 야망과 확실한 자기주장이 있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권력싸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구미제국의 이전투구와 세력 확장, 이권을 둘러싼 각축장으로 변해가는 국제정세와 내부적인 상황대처 방법 등에서도 두 사람은 사사건건 생각을 달리하여 부딪친다.
그 상황에서 임금인 고종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있었지만 그는 조정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시아버지인 전주이씨와 며느리 여흥민씨 간의 권력싸움만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절 대원군은 처음 이 노락당에서 명성황후를 만나고 간택한 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어쩌면 땅을 치며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서 명성황후는 일제에 의하여 시해당하고 대원군도 이곳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친다. 500년의 역사를 가진 한 나라가 망해가는 과정에서는 이렇게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권력싸움도 있었지만 이들의 싸움에는 나름대로의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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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로당 출입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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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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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모두가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고 왕권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그 방법과 길이 달랐을 뿐이다. 지향점은 같았으나 길이 달라 부딪친 수많은 싸움에서 그들은 서로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노락당을 지나면 안채에 해당하는 이로당(二老堂)이다. 여자들만 거처하던 이곳은 입구(口)자 형으로 건축된 건물이다. 대원군의 부대부인인 민씨가 운현궁의 살림을 도맡아 하던 곳이며 한때 명성황후도 드나들던 곳이다.
이로당을 지나 밖으로 나오면 유물전시관이다. 유물전시관에는 당시 운현궁에서 쓰던 각종 집기와 유물, 그리고 그림과 그릇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한편에는 대원군이 외세를 배척하여 세운 척화비 한 개가 대원군의 성품처럼 고집스런 모습으로 서 있다.
벽면에 액자로 붙어 있는 그림에는 경근문과 공근문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눈길을 붙잡는다. 경근문은 고종이 어린나이에 즉위하여 왕궁으로 들어간 후 외로울 때 사가인 운현궁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하여 드나들도록 만든 어린 고종임금의 전용문이었다.
공근문은 대원군이 섭정하면서 대궐을 손쉽게 드나들기 위하여 만든 전용문이다. 경근문은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연결하던 사랑의 문이었다면 공근문은 권력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어진 상징적인 의미가 담긴 문인데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없는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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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관의 방안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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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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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은 격동기의 탁월한 정치가요 풍운아였던 대원군이 그의 야심만만한 개혁정치를 펼치며 천하를 호령하던 곳, 그 정치 10단의 대원군이 가장 만만한 상대로 간택한 며느리 명성황후를 처음 만나고 가르쳤던 곳이다.
그 격동의 세월을 고스란히 지켜본 운현궁은 쌀쌀한 날씨 속에 고즈넉한 오후를 맞고 있었다. “정치 10단의 대원군이 여걸 민비를 몰라보고 처음 만난 곳이 이곳이구만.”동행한 친구가 운현궁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감회가 새로운 듯 불쑥 던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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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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