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舊正)을 앞두고 92세 되시는 어머니가 심한 감기와 숨이 차는 증세 때문에 북부노인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병실마다 간병인이 한 명씩 배정되어 있어서 환자 옆에서 왼종일 보살펴 드리지 않아도 되지만 매일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저녁에 동생들이 와서 교대해 줄 때까지 병원 휴게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노트북으로 ‘아이브로’를 통해서 인터넷을 하거나 독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홍익교회 45주년사(史)’를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읽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깊이 빠져들어서 정독을 하게 되었다. 사실, ‘45주년사’의 글들은 거의가 내가 쓰다시피 한 글이라, 5년 전 책을 발간하고는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나 은퇴한 지 3년이 된 탓인지 다시 읽으면서 과거 시무하던 시절의 일들이 기억나면서 깊이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벅찬 보람을 느끼던 날들이 가슴 가득 차오르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30대에 이른 우리 부부가 목회에 전념하는 만큼 날로 교인들이 증가함으로 30평의 교회당이 협소하여 많은 보조의자들을 동원하고 이층 다락을 만들어 몇십 명을 수용했다. 그것도 모자라 본당과 교육실 벽을 헐고 천막 지붕을 치고 예배드림으로 매주일은 잔치기운으로 가득 찼던 날들이며, 신유은사를 받은 집사람을 통해서 병자들이 나음 받았다는 간증을 들을 때마다 부족하기만 한 종들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또한 가난한 교우들이 대부분 임에도 힘을 모아 250평의 교회당을 신축하고 첫 번 예배드리던 날들하며, 그 강단에서 설교하던 벅찬 시간들이며, 건물이나 대지가 늘어가던 재미하며, 본당 화재라는 엄청난 시련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결국 교회당을 배로 증축하게 하신 전화위복의 하나님을 온 교우들이 체험한 사실이며, 세 곳의 교회를 개척하고 전담선교사 두 분을 파송하던 때의 벅찬 감격을 ‘45주년사’를 통해서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45주년사’에 등장하고 있는 많은 이름들과 희미한 사진에 나타난 얼굴들을 보며,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희생적으로 충성봉사 하던 일꾼들의 기도와 희생들에 의해 오늘의 교회가 이룩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가슴 가득히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 한 분 한 분의 밀알적인 희생들이 어울러져서 홍익교회라는 공동체가 성숙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목회 현장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보람이나 감격적인 날들보다 낙심과 좌절, 고통과 상처받은 날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45주년사’를 읽으면서 글 행간이나 사진들의 갈피 틈에 은익 되었던 수많은 날들의 아픔들이 비집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다시금 가슴을 찌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이다. 겉으로는 화려한 내용의 글이요, 활짝 웃는 얼굴들의 사진이지만, 후면에 숨어 있는 아픔이나 상처들은 목회자의 심안(心眼)으로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때로 목회 상에서 만난 갈등과 좌절로 캄캄한 밤을 만날 때마다 우리 부부가 교회당에 나가서 주님께 호소하며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며 만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30년 이상의 목회를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편히 안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목회란 한마디로 십자가와 부활의 연속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목회란 십자가를 지는 희생의 섬김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요, 그런 십자가의 섬김이 부활의 능력을 받는 통로가 되는 것이라 감히 고백할 수 있다. 그런 속에서 거친 심령들이 변화되고 거룩한 공동체가 이룩되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하튼 목회는 하나님이 능력을 주실 때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은 목회의 무거운 짐을 벗고 편히 안식하는 일에 3년 동안 익숙하다 보니 다시는 시무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는 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