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이웃 주민집 현관문에 붙인 메모. ⓒ민중의소리

새해에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문인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다세대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 췌장염 등을 앓았지만 치료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고인은 같은 세입자의 현관문에 이런 쪽지 글을 남겼다. “죄송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슬픈 글이 있을까 싶다. 이웃집 사람은 며칠 집을 비워 그 쪽지를 보지 못했고, 돌아와 밥과 김치를 들고 갔을 때엔 숨져 있었다고 한다.

G20 국가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청년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에 이른바 ‘사회 지도층’ 소리 듣는 사람들은 각성해야 마땅하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 배우 중심의 투자를 이끌어내느라 작가에 대한 지원은 인색하기 그지없는 한국 영화계의 비정상적 구조를 고발한다. 시나리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나. 객석 점유율 60~70%, 1000만 관객 시대의 숨은 주역, 작가들은 이렇게 비명도 못 지르고 세상을 떠났다.

흔히 작가는 부요하면 안 되고 가난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았다. 가난 뿐 아니라 고독 역시 예술가에게 어울리는 분위기이다. 화가 이중섭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의 일본인 부인 이남덕과 주고받은 편지를 번역한 ‘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이라는 책의 일부분이다. “우동과 간장으로 하루에 한 끼 먹는 날과 요행 두 끼 먹는 날도 있는, 그런 생활이었소. (…) 불을 필 수 없는 사방 아홉 자 냉방은 혼자 자는 사람에겐 더 차가워질 뿐 조금도 따뜻한 밤은 없었소.”

이중섭은 한국에 머물렀고, 가족은 일본에 있었다. 이중섭은 가족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돈 벌려 그림을 그렸고, 바라는 바 없었던 전시회도 열었다. 하지만 벌거숭이 그림은 음란 그림인 ‘춘화'로 판명 받아 철거됐고 그림 값을 떼이기도 했다. 가족의 그리움이 날로 커갔던 이중섭, 이런 기막힌 현실에 분노해야했지만 허기가 이를 막았다. 결국 정신분열 증세에 이르렀다. 그렇게 병을 얻고는 숨을 거뒀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3일간 시신이 병원에서 방치돼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중섭의 그림은 매우 비싸다. 작년 한국아트밸루연구소가 추정한 2010 상반기 한국미술시장보고서를 보면 작가별 가격지수 1위가 그다. 작년 유화 작품 `황소`는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6000만 원에 낙찰됐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지금은 철도 역 이름으로도 추모되는 김유정 역시 배고픔을 못 이기고 세상을 떠났다. ‘동백꽃’ ‘봄봄’ 같은 단편을 남기고. 춘천시 외곽에 있는 김유정문학촌을 가보면 그의 고단한 삶이 전시된다. 말년엔 폐결핵이 그의 심신을 파괴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필승아, 나는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살아날 것 같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하지만 김유정은 끝내 닭국물을 입 속에 흘려 넣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가 그의 나이 29이었다.

지난해 말엔 1인 인디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지하 전세방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진원 씨가 그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 사람도 평소 배고픔을 호소했다. 그 배고픔에는 가수가 곡당 몇 십 원 밖에 음원 수익을 나눠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이들의 아픔에 더 큰 생채기를 내는 것이 있다. 무지몽매한 댓글들이다. “굶어죽을 때까지 뭐했느냐”하는 식이다. 예술가로서의 자존감, 품위 유지를 위해 다른 일 하지 않고 창작 활동에 매진하는 것을 사치로 여기는 시각이다.

현실에서 가난은 예술가의 창작을 방해하는 고통일 뿐이다. 최고은 씨가 시나리오를 안 쓰고 젠 척했나. 쓰고도 정당한 대가를 못 받은 것 아닌가. 공정하지 못한 구조는 외면한 채, 개인의 무능으로 모든 문제를 편리하게 결말짓는 자들이 큰소리치는 사회, 답답하고 한스럽다.

“문인들은 가난하니 부의금을 받지 말라.” 어머니처럼 자상했던 작가 박완서 선생이 남긴 마지막 당부가 새롭다. 사실 문인들은 거의가 가난이 뼛속까지 번져 있다고들 알고 있다. 문인들의 술자리가 유독 긴 것은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기실 선뜻 누군가 술값을 치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서글픈 이야기도 있다.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이런 제목의 책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극히 경제학적인 해석이다. 사실 저자인 한스 애빙은 네덜란드의 경제학자이다. 그러면서 화가이다. 이런 해석이 주목된다. ‘예술의 신화화’. 예술은 신성하고 순수하고 초월적인 그 무엇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래서 세속을 상징하는 돈과 예술은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예술에서도 돈은 중요하다. 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정치와 경제로부터 독립된 명성과 부를 획득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는 극히 제한된 이들에게만 해당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예술가로 성공하는 것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인데 이게 극히 어렵다. 르네상스 시절처럼 문예 부흥기에는 통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문화예술 종사자들에게 생계는 물론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줄 버팀목을 해줄 역할이 국가에게 있다. 달리 문화국가라는 말이 있겠는가. 최고은 씨의 죽음은 문화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입지가 흔들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