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과학기술계에서 실패에 대해 재인식하는 시선이 많다. 지난해부터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검토해온 한국연구재단은 이 제도를 올해에 이른바 ‘모험연구’ 분야에 한해 시범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명예로운 실패를 인정함으로써 모험, 도전, 혁신을 북돋워주고, 이로써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있다.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선 이런 격언도 실패를 위로하는 말 정도로 들리곤 한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도 성공 신화를 이룬 발명왕 에디슨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실패는 극적인 성공 스토리를 빛내주는 ‘과거 한때의 추억’으로 들릴 수도 있다. 오히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하는 연구만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확한 통계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연구과제의 성공률이 80%를 넘는다고 한다. 이는 많은 연구자들이 무척 안전한 연구만 하거나, 아니면 선행연구를 충분히 한 과제가 주로 선정된다는 뜻일 것이다. 혹자는 연구결과의 부정이나 온정적 평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도전적인 연구, 황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어렵다고 한다.

나로호 발사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이 큰 충격을 받은 점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관행 때문이다. 이주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이 두 차례에 걸친 나로호 발사 책임을 지고 2월 18일 기초기술연구회에 사표를 제출했다. 나로호 1차에 이은 2차 발사.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밤을 세워가며 노력했을까를 생각하면 과학자들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괴롭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울 것이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갈 것이다. 문제는 당장 안 된다고 접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불과 몇 번의 시도 끝에 우주 안착에 성공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1957년 10월 옛 소련이 최초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다급해진 미국은 두 달 후 최초 발사체를 발사했지만 2초 만에 폭발했다. 미국은 이듬해 첫 위성 발사에 성공했지만 1959년까지 총 12번의 시험에서 8번 실패를 기록했다. 유럽도 첫 발사는 실패했는데. 11번 발사 중 7번 실패를 경험했다. 일본 역시 9번의 발사 중 4번 실패를, 브라질은 연거푸 발사에 실패했으며 세 번째엔 폭발사고가 발생해 21명이 사망했다.

실패도 스펙이었고, 그것이 완성, 성공의 밑거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두 번의 실패, 동정도 낙담도 필요 없다. 위성 기술만이 아니다. 요즘들어 실패 자체를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자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중소·벤처기업의 도전과 혁신을 위해 우리나라에도 실리콘밸리 같은 ‘실패의 요람’이 필요하다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지적은 많은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실패학이라는 학문도 나올 상황이다. 미국 대학에선 실패를 주제로 한 경영학 강좌가 주목받았다. 일본에선 ‘연구 실패 지식도 연구 결과의 일부’로 인식해 실패 정보를 연구자한테 제공하는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초에 한국연구재단도 조금 특별한 사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모험연구지원사업’이라는 것인데 창의적이고 도전적 아이디어를 가진 혁신적이고 참신한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의 특징은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실패하더라도, 이를 용인하는 ‘성실실패 용인제도’를 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요즘엔 정치권에서도 '중소·벤처기업 성실실패 인증제도 도입' 움직임이 있다. 박범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이 중소·벤처기업 성실실패 인증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했다. 실패를 실패로만 보지 말고 ‘명예 실패’를 바로 보자는 뜻이다. 사실 '성실 실패‘는 Honorable Failue, 바로 ’명예 실패‘이기도 하다. ‘성공의 결과가 보장되지 않되 과정이 정정당당한’ 실패를 응원하는 일은 경쟁이 관료주의와 불합리로 치닫지 않게 숨통을 틔우는 제도가 될 수 있다.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실패해도 좋으니 쓰라고 한 돈, 마구 갖다가 쓰는 도덕적 해이 현상도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막기 위해서는 실패 정보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불성실이 성실로, 성실이 불성실로 둔갑해 상처를 남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 평가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실패를 마냥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처하는지, 이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한 리더십 전문가의 글로 이 이야기, 갈음하고자 한다. “기업이 투자를 하고서 수익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효율성 지표를 투자수익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비록 실패했더라도 실패를 교훈 삼아 결국 큰 수익을 내는데 성공하면 그 수익률을 실패수익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실패도 결국 투자이기 때문이다.” 높은 실패수익률 숫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성실실패를 너그러이 인정해주는 성숙되고 관용적 문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거기엔 짜임새 있는 관리와 후속 대처도 필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