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경에서 수사과장만 20년을 했다는 최모씨의 말에 의하면 “살인범을 조사해 보니 살인을 한 사람만 나쁜 놈이 아니고, 많은 경우 죽임을 당한 사람도, 죽을 짓을 하긴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다.

한문 글에 ‘삼천 가지 죄악 중 불효한 죄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는 말이 있다. 경쟁이 치열한 산업사회가 되면서, 전에 없이 불효막심한 자식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자주 나온다. 예컨대 여러 형제가 있는데도, 서로 부모를 안 모시려고 싸운다는 이야기하며, 늙은 부모를 무허가 양로원에 보내버린다는 이야기도 있고, 치매 걸린 부모를 거리에 버려두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자기들만 편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는 보험금을 노리고 부모를 죽여서 비닐봉투에 넣어 암매장해 버렸다는 이야기도 가끔 나온다.

자식 된 사람은, 자기 부모가 아무리 인격이 보잘 것 없고, 무식하고 무례한 근로자일지라도, 그래서 자기는 교육도 못 받고 무지와 질병과 빈곤만 대물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부모를 박대하면 안 된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극진히 모셔야 한다. 부모는 내 생명을 있게 해준 원인자이기 때문이고, 나름대로는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를 시켜준 은인이기 때문이고, 숙명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모자식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는 작품이나 상품이 아니고, 천부의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남의 부모와 비교평가해서도 안 된다. 군·사·부 일체(君師父一體)란 관점에서 보더라도 절대적이고 하늘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모실 때는, 부모가 나에게 ‘어떻게 키워 줬느냐’를 따지고 계산을 해서 거기에 상응하게 모시는 것은 잘못이다.

세상에는 지탄받아 마땅한, 불효자식들이 가끔 있는데, 그건 부모에게도 얼마간의 책임은 있지 않을까 쉽다. 몇 가지 질문을 해 본다면 첫째 부모가 된 당신은, 지난날 당신의 부모에게 모범적인 효행을 하고 살아 왔는가? 자식은 자기 부모를 비판하면서도,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를 많이 닮는다고 한다. 둘째 성경은, 부모도 자식을 노엽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자식도 스무 살이 넘으면 나의 부속적 존재가 아니고 독립적 개체이다. 함부로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해도 안 되고, 인격을 무시하거나, 비교평가해도 안 되고, 경우에 없는 말로 공격을 해도 안 된다. 그러면 성격이 뒤틀리고 심성이 거칠어지기 쉽다. 셋째 자식의 됨됨이는, 잘잘못 간에, 절반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한다. 유전적인 요소도 있고, 환경적인 이유도 있고 가정교육에도 원인이 있다. 넷째 부모가 부도덕한 쾌락이나 부정과 물신주의에 빠져 있으면, 그자식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길을 걸어 가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부모 또한 자식의 처지를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 입장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보편적으로 부모가 노령에 접어들면 자식한테 의지하려는 경향이 생기는데,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녀손들이 생활 전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랄진대 ‘자식에의 의존경향’은 수위를 낮출수록 좋다. 그리고 ‘효행’을 공·맹사상이 지배하던 옛날처럼 하다가 보면,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흔히 고통스런 인생을 고해라고 한다. 자녀 손들은 격랑을 헤치고 앞으로 헤엄쳐 가는 수영선수다. 자식이 부모를 잡고 갈 수는 있어도, 부모가 자녀를 붙들고 늘어지면 같이 죽는다.

/ 새문안교회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