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인사를 대상으로 한 친자확인 소송, 요새 빈번하다. 2년 넘게 진행돼 온 이만의 환경부 장관의 친자확인 소송이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2심 법원에서도 패소한 이만의 장관이 얼마전 상고장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미국시민권자인 30대 여성이 "1970년대에 어머니와 이만의 장관이 교제해 나를 낳았다"며 "친자로 인정해 달라"고 2009년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장관은 법원의 수차례 유전자 감정 촉탁을 거부했고 1·2심 모두 이 여성의 주장을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얼마전에 친자확인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가정법원이 50대 초반의 김 모 씨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친자로 판결했다. 법적 검증 절차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응하지 않은 것도 이번 패소 판결의 배경이 된 듯 하다.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은 “터무니없는 모략”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친자확인 소송으로 입소문을 탄다. 2005년 한 일본 여성의 생모가 YS를 상대로 친자소송을 벌이다가 소를 취하한 적이 있었다.

한 신문은 이렇게 평가하더라. “젊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을 보면 귀공자 타입이었는데 재력이 있는 데다 20대에 국회의원이 됐으니 뭇 여성이 따랐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고대국가였더라면 그 자식들에게도 설화 한 토막은 붙었음직하다”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서울대 박시인 교수가 생전에 저술한 문화인류학의 고전격인 ‘알타이 인문 연구’를 인용했다. 비약한 것이지만 고대 역사적 인물의 탄생설화에 관한 것이다.

주몽, 박혁거세, 수로왕, 석탈해의 탄생신화지?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를 뜻하는 ‘난생(卵生)’이 있다. 금빛으로 빛나는 개구리 모양의 아이가 동부여의 왕 이야기인 ‘금와(金蛙)’ 설화도 있다. ‘태양의 아들’ 설화 등은 고대 동서양이 문화적으로 비슷하다는 연구다. 그런 인물은 대개 당시 제사장 등 권력자의 혼외아들이 많다는 주장도 편다. 생후 버려져 떠돌다가 언젠가 나라를 이끌 인물로 장성해 돌아오면 신비한 설화로 장식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남 모르는 비밀을 안고 사는 비련의 주인공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탄생의 비밀’이라고 해서 드라마 속에서도 소재로 많이 활용한다.

권력과 돈, 명예를 거머쥔 통치자들은 부인을 여럿 거느리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는 듯하다. 대통령, 재벌총수, 유명 배우, 유력 정치인 등이 그런 범주에 속한다. 얼마전 한 외신을 보니 인도의 한 종파 수장은 부인을 39명이나 뒀다는 내용이 있었다. 94명의 자녀, 14명의 며느리, 33명의 손주 등 180명의 대가족이 한 건물에 산다고 하는데. 부인 사이에서도 위계질서가 있어서 첫 번째 부인이 집안 대소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한다. 남편과 잠자리를 함께 할 부인을 요일별로 편성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고 하고.

설령 원치 않았던 자녀라도 소송을 당하기 전에 솔선해 책임지는 자세가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사실 과거엔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DNA를 규명하는 기술이 1953년에 발표되고 그것이 보편화되면서 옛날 이야기가 됐다. "현대과학의 최대 발명은 컴퓨터,최대 발견은 DNA구조 규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 검사법의 등장으로 2차대전의 전범 요세프 멩겔레의 신원이 확인됐다. 요세프 멩겔레, 아우슈비츠에서 생체실험할 사람 즉 죽일 사람을 고르던 내과의사이었지? 우생학적으로 완벽하게 우월한 유전자를 만들어 내라는 히틀러의 엄명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밖에 세익스피어는 안암, 베토벤은 매독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른바 출생의 비밀도 찾아낸다. 1998년엔 미국 독립선언문 기초를 다진 토머스 제퍼슨, 이 사람들의 후손들의 혈액검사를 통해 제퍼슨이 흑인하녀 샐리 헤밍스와의 사이에 사생아를 낳았다는, 200년에 걸친 소문도 확인됐다. 그런가하면 빌 클린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모니카 르윈스키의 드레스 체액검사에도 활용돼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서자를 인정하지 않는 정서는 참으로 뿌리깊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함을 한하나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에서는 서자의 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자도 아버지의 관직이 높으면 벼슬길에 나갈 수 있었지만 승진에는 한계가 있었다. 재산 상속권 역시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완전히 폐지된다. 정서마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동양만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정실의 자식보다 모자란 게 뭔가. 첩의 자식이라고? 자연의 본능이 남의 눈을 피해서 만든 인간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한 서자의 독백이다. 성인이 된 공자(孔子),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 아랍인의 조상 이스마엘, '모나리자'를 그린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들도 말하자면 ‘서자’이다. 자서전에서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 본인의 서자임을 사후에나 밝힌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분명히 하고 싶을 그 갈망, DNA 규명 기술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사람들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