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4일 저녁에 난데없는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2년 전에 우리 집에서 잠시 키웠던 아기(김기봉)가 이제 성장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ROTC 장교로 임관하는 데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기봉이의 삼촌이 보낸 소식이었다. 우리 부부가 다음날 약속한 장소에 가니 윤창균, 전은진 집사님과 두 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집사님은 우리의 권유로 아기를 맡아 9개월 정도 양육했던 분들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기봉이와 삼촌부부가 도착했다. 너무나 반가운 해후였다. 22년 만에 만나는 기봉이는 멋진 장교복을 입은 늠름한 청년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러나 아기였을 때의 모습이 그 얼굴에 남아 있었다. 집사람과 전은진 집사님은 눈물을 머금은 채 서로 끌어안고 반가워했다. 기봉이는 순천에서 할머니와 누나와 함께 살다가 둘째 작은 아버지 집의 양자가 되어서 수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 과학기술대학교(전 산업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우리는 식사하면서 자연적으로 기봉이의 아기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우게 되었다. 기봉이가 우리 홍익교회로 온 것은 1989년 2월 초순이었다. 형편이 좋지 못했던 엄마가 백일도 안 된 아기를 업고 우연히 우리 교회를 찾아왔다. 그 모자를 발견한 집사람은 아기가 잘못하면 얼어 죽을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따뜻한 음식을 모자에게 먹이면서 엄마를 달래면서 아기를 맡게된 것이다. 그 때부터 아기를 우리 집에서 한 3개월 정도 키우게 되었다.

당시 집사람은 41살이었지만, 매일같이 환자기도회 인도나 환자 심방을 하는 등 교회 일에 전력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큰 딸아이는 고3, 큰 아들은 중3, 막내 아들은 중2인 때였다. 당시는 아이들에게 도식락을 싸주던 때이기에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때요, 특히 큰 딸아이는 고3이 되는 때라 가정적으로는 비상시기였기에 더했다. 그러나 집사람은 아기를 아무 시설에 맡기는 것은 신앙의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힘에 벅찼지만 집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아기에 대해서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 우리 아이들 키울 때와 달리 옷도 명품을 입힐 정도이고, 심방 갈 때나 집회 때도 아기를 데리고 다니므로 교인들의 화제가 되기도 할 정도였다. 심지어는 다른 여인을 통해서 생긴 내 아이가 아닐까 의심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도 아기를 귀여워하기는 했으나 우리 삼남매는 자기들에게 소홀히 하는 엄마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았다. 그러므로 3개월 정도 키우다 보니 가정으로나 교회적으로나 한계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아기가 없는 집을 물색하는 중에 윤창균, 전은진 집사님 가정이 가장 적절한 것 같아 맡기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꺼려하더니 나중에는 얼마나 두 부부가 정성을 다해 아기를 키우는지 지나치다 할 정도였다. 결국 9개월 동안 키우는 동안 깊이 정이 들어 자기들 호적에 옮길 각오를 하고 있는 때에 기봉이네 집안이 아기를 찾아 가겠다는 전갈을 받게되었다, 우리나 두 부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봉이가 그 집안의 장손이요, 그 집안 누구하고도 맡아 기르기로 약속한 적이 없기에 데려가는 것에 대해 반대할 명분이 전혀 없었다. 결국 울고불고 만류하는 부부를 뒤로하고 기봉이네 작은 아버지들이 매정하게 데리고 떠날 때는 우리 부부는 그 부부에게 너무나 볼 면목이 없어서 슬그머니 피했던 일이 지금도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그렇게 너무나 정들었던 아기를 떠나보내고 나서 젊은 부부와 그 형제들로부터 우리 부부는 싫은 소리를 많이 들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행의 기회가 왔을 때 피하지 않고 순종한 우리 부부와 윤창균, 전은진 집사님에게 귀한 선물을 허락해 주셨다. 엄마가 아기를 키운다고 소란을 떠는 가운데서 고3이던 딸아이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사업과에 은혜 가운데 입학하게 하셨고, 아기를 잉태하지 못하던 윤창균, 전은진 집사님댁에 태의 문을 열어주셔서 귀한 두 딸을 허락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큰 딸이 숙명여자대학교 정외과에 합격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멋진 장교복을 입고 나타난 기봉이을 만나는 때는 잔치 기분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주신 것이다. 더 특별한 것은 기봉이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가까이 도와준 막내 삼촌이 직장을 다니면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작년에 방배동에 주향기순복음교회를 개척했고 금년 봄에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사역자의 길을 가게된 동기도 가장 힘든 때에 기봉이를 키워준 분들이 목회자와 집사님 부부라는 사실에 감동을 받은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부부는 22년 지난 후에 열린 귀한 열매를 보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를 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