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회 대표적 목회자인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는 최근 수쿠크법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하며 이를 추진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하야운동을 경고하기도 했다. 길자연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또한 같은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찾아 안상수 대표에게 내년 총선 낙선운동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길자연 목사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통성(通聲)기도를 올리도록 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의 무릎 꿇음이 비록 명목상 그 대상이 하나님이긴 해도 종교 권력을 향한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신문> 안미현 문화부장은 3월 11일자 ‘데스크 시각’ 칼럼에서 “가뜩이나 ‘땅 밟기’(이웃 종교 영역에 들어가 기독교식 예배를 보는 행위) 등으로 기독교의 배타성과 권력화에 눈살 찌푸리고 있는 이들에게 (‘대통령 무릎기도’가 신 카노사의 굴욕 아니냐는) 또 하나의 불편한 심증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주간조선> 2146호 ‘취재 하이킥’ 코너에서 김대현 기자도 “교회는 이제 예배 공간을 넘어 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 어느덧 정치·사회·경제 등 각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가 됐습니다”라면서 카노사의 굴욕을 언급하더니 “개신교가 이슬람교의 국내 포교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정치권을 압박하며 이슬람채권법 통과를 막아선 것은 정교분리의 헌법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라며 과도한 세속 권력화에 경계심을 표시했다.

이밖에 <한겨레21>도 851호에서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의 언급을 통해, <조선일보> 3월 11일자 ‘태평로’ 칼럼에서, <한국일보>는 3월 8일자 ‘강병태 칼럼’의 한 부분으로, <중앙일보>는 3월 1일자 ‘분수대’ 코너 안에서 ‘대통령을 무릎 꿇게 한 개신교계의 권력’을 중세 교황의 부당한 권위에 빗댔다.

그렇다면 카노사의 굴욕은 어떤 내용일까. 교황은 교회 세력의 확장을 위해 왕의 군사력이 필요했다. 대신 교회는 왕에게 성직자 임명권을 줬다. 그레고리오 7세는 이전 교황들과는 사뭇 달랐다.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청빈과 금욕을 강조하며 왕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추진했다.

1075년 12월 교황은 마침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의 주교직 서임권을 금지시켰다. 황제는 즉각 반격에 나서 교황을 폐위(廢位)시켰다. 교황도 '눈에는 눈'으로 나왔다. 황제를 파문했다. 그러나 주교와 공작들이 교황 편에 선다.

왕권을 잃게 될 위기에 놓이자 황제는 이듬해 알프스산을 넘어 북이탈리로 향한다. 교황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해를 넘겨 1077년 1월 카노사 성에 당도했다. 교황이 그때 잠시 그 성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문이 열리지 않았다. 황제는 맨발에 내복 차림으로 사흘간 금식하며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했다. 그런 다음에야 교황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복권될 수 있었다.

물론 살아난 황제는 3년 와신상담 끝에 교황을 내쫓았지만, 중세 교권(敎權)이 속권(俗權)을 누른 사건이었다.

관련해서 <한겨레21>이 소개한 A 전 의원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아래 내용은 <한겨레21> 851호 내용이다.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 혹은 교회와 정치인의 관계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A 전 의원이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386세대 정치인으로 꼽히는 그는 2008년 4월 총선 때 수도권에서 재선을 노렸지만 수백 표의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득표율로 따지면 1% 정도 차이였다.

개표함을 열어본 뒤 A 전 의원의 캠프가 받은 충격은 컸다. 투표함이 설치된 40여 개 투표구에서 A 전 의원은 상대편 후보와 박빙을 이뤘다. 이긴 곳이 더 많았고, 지더라도 100표 내외로 차이가 갈리는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수백 표 차이로 낙선한 결정적 이유 가운데 하나는 B교회였다. B교회는 신도 수나 예배당 규모 면에서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교회에 속한다. 이런 B교회가 속한 투표구와 이웃한 투표구에서 상대편 한나라당 후보에게 무더기 표가 나왔던 것이다. 여기서 수백 표 차이가 벌어졌고, A 전 의원은 끝내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나라당 후보는 B교회의 집사를 맡고 있었다.

A 전 의원 쪽에서는 2008년 총선 패배의 원인을 이렇게 짚었다. “목사님 설교만 들어봐도 B교회가 완전히 한나라당 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립학교법 개정되면 빨갱이 나라 만든다, 민주당 찍으면 빨갱이 찍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아주 공개적으로 하는 거다. 투표 당일에도 새벽기도회를 연다며 신도 수천 명을 모아놓고 투표를 독려했다. 대형 교회가 이런 식으로 특정 후보에게 네거티브로 나오면 치명적인 거다.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해당 교회 목사의 설교가 특정 후보에게 쏠려 있다면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장에서 그런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다. A 전 의원 쪽은 “그런 대형 교회 목사를 선거법 위반으로 걸었다가 다시는 그 지역에 발을 못 붙이게 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