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시기가 한 데 몰리는 베이비붐 세대, 인생 2모작 어떻게 할 것인가가 사회적 논의 과제가 됐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1963년에 태어난 이들이 720만 명이다. 서울대학교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해 5일부터 4개월 동안 베이비붐 세대 4668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했다. 그리고 결과를 어제 발표했다. 조사 결과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준비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를 위해 돈을 모아두지 못했다'가 전체의 30.3%였다. 15.8%는 '은퇴 준비를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라고 답했고, '계획조차 없다'는 사람도 10.6%에 달했다. 그렇다면 은퇴자금 준비를 마친 사람은 몇이냐. 8%에 불과했다.

은퇴 자금 모아두는 사람들, 자금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축적하고 있을까. 월 평균 17만 원을 저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10명 중 8명이 보험을 연금 상품으로 이용하고 10명 중 7~8명이 국민연금을, 6~7명은 예금과 적금에 투자한다고 답했다. 이걸 어떻게 봐야할까. 연구소는 “베이비붐 세대가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갖고 있으며 은퇴 자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저축 포트폴리오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은퇴 자금 마련에 소홀한 까닭이 결코 게을러서는 아니다. 자녀를 위한 지출이 많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월 평균 소득은 386만원이다. 전체 가계 평균소득의 1.12배에 해당한다. 수입의 대부분은 자녀 교육과 결혼에 들어간다. 대표적으로 대학등록금은 연 소득의 21%인 973만 원, 평균 유학비용은 연 소득의 35%인 1621만 원으로 조사됐다. 자녀 결혼자금은 연 소득의 74%인 3428만 원에 달했다. 이래서야 어떻게 자신들을 위해 돈을 모으겠나.

은퇴 이후 수입원이 불안정해질 텐데, 그때엔 생활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베이비붐 세대는 본인의 은퇴 시점을 62.3세로, 기대수명을 81.5세로 예상한다. 그러나 실제로 기업의 일반적인 정년은 55세이다. 그렇다면 본인이 예상한 80.9세까지 살 경우 퇴직 후 약 25년을 소득 없이 살아야 하는 위험에 처한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여유시간을 11시간으로 잡을 경우 25년은 10만 시간에 해당한다. 10만 시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때가 되면 노동시장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에 맞춰 고령자 노동시장에 변화가 일 것으로 연구소는 내다봤다. 미국과 유럽 같은 서구에서 20년 전부터 뿌리내리기 시작한 징검다리 직업 그리고 시간제 근로, 복지서비스 일자리가 활성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징검다리 직업, 즉 '브릿지 잡(Bridge Job)'이란 직장에서 물러난 뒤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10년 이내에 파트타임이나 풀타임으로 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이미 한국보다 앞서 베이비붐 세대의 출현을 경험한 미국 아닌가? 미국 은퇴자의 3분의2 정도가 브릿지 잡을 활용한다. 이들은 직장 생활을 경험했기에 책임감, 충성도가 대단하다. 게다가 노하우를 다음세대에 전수할 수 있다. 그러니 기업이 선호한다. 미국은 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이 한꺼번에 이뤄졌다. 그래서 일시적 노동력 부족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걸 브릿지 잡으로 막고 있다. 한국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조셉 퀸 미국 보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속 100마일로 달리다가 왜 갑자기 속도를 제로로 떨어트리려 하느냐"며 "70마일, 50마일, 20마일로 차례로 감속하는 게 낫다"며 브릿지 잡의 등장 배경을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 현실에서는 공공근로 같은 육체노동이 노인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화이트 칼라 생활하던 분들이 갑자기 그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은 반면에 일자리가 퍽 다양하다. 미국의 골프장과 도서관을 가면 70~8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골프장에서 예약을 받고 골프카 정리 등의 일은 할아버지들의 몫이라고 하고. 미국은 도서관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도서관마다 도서 대출 담당은 거의 모두가 할머니들이라고 한다. 백발이 성한 할머니들도 자주 볼 수 있다고 하고. 또 미국에는 미국인을 제외한 외국인을 대상으로한 무료 영어 교육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 영어 강사 대부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가 퇴직자 4만여명을 대상으로 재취업 교육을 실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올해 10억4000만 원을 들여 그렇게 한다는 건데. 생계에 상관없이 자신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하는 전문직 퇴직자에게는 경영자문과 진로지도 같은 사회봉사형 일자리를 알선할 계획이란다. 생계유지를 위해 빨리 취업하기를 원하는 퇴직자에게는 단기간의 교육을 거쳐 가사도우미·아이돌보미 등 일자리를 마련해 줄 방침이라고 한다. 체계적 교육 후 직업 전환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직업교육을 마친 뒤 방과후 학교 보조교사, 독서지도사 등의 전문적인 일자리를 소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제야 손 쓰는 격이니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까 염려된다. 노인이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도록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인 베이비붐 세대는 경험과 지식이 풍부해 우리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인 일자리를 개발해 보급할 필요가 있다. 평균수명의 연장에 맞추어 스스로 근로생애를 재설계하는 일도 필요하다. 지금 시작해도 늦은 편이다. 은퇴하는 고급 인력의 인생 2모작, 그들의 몫으로 떠넘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