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부에서 발생한 초대형 지진에 대처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보면서, 한 두 번 이런 상황에 대처한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지진의 나라하면 일본 아니겠나. 꽤 덤덤한 것 같지만, 일본인의 잠재의식에는 지진에 대한 공포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우리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일본의 ‘만숀(Mansion)’, 성냥갑처럼 앞 뒤 폭이 좁고 옆으로 긴 우리 아파트와 달리 사방이 대체로 비슷한 정방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최근 대도시 도심에 잇달아 세워지고 있는 초고층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지진이 어느쪽으로 치고 들어 올 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한쪽 폭을 좁게 짓는 것은 자살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와는 달리 일본은 집값에 지진 불안이 반영돼 있다. 도심과의 거리나 주거 환경 또 교통 편의성이 집값을 결정하는 일반적인 요인이다. 그렇다면 상위권에 들어야 할 도시임에도 되려 변두리 도시 만도 못한 부동산 가격을 나타내는 일본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다. 지진이다. 근대화 시기서부터 일본은 공직자 등용 시험에 지진에 관한 지식을 출제했다. 지진에 대한 이해는 공직자의 자질과도 연관됐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지진 역사를 살펴볼까 한다.

416년 8월23일 현재의 오사카(大阪) 지역인 가와치(河內)지방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니혼쇼키'(日本書紀)의 간단한 기술이 일본 역사상 최초의 지진 기록이다. 그리고 일본의 지진 관측이 시작된 1900년 이후부터는 보다 구체적인 기록들이 있다.

이번 지진이 일본인이 가장 염려해 온 '도카이(東海) 대지진'이 현실로 닥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도카이 대지진'은 100~150년 주기로 발생하는 규모 8을 초과하는 대지진이 일본 동부를 강타할 경우를 가정해 만들어진 용어다. 이 용어 또한 공식은 1707년, 1854년에 발생한 대지진 현상에서 비롯됐다. 1707년에 난 대지진이 150여년 뒤인 1854년에 또 났고, 그렇다면 2000년 무렵에 또 한 번 큰 지진이 난다는 설이었다. 정확하게 157년 만에 초대형 지진이 났다. 마치 백두산 화산이 1000년에 한 번 씩 폭발한다는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그 사이에 지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23년 9월 1일 도쿄 인근 사가미만을 진원지로 한 규모 7.9의 간토 대지진, 우리에겐 관동대지진으로 알려진 이 지진으로 인해 도쿄의 60%가 파괴됐다. 당시 피해자는 약 340만 명에 달했고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9만9331명이 사망했다. 전소한 가옥만 38만1090채에 이른다. 이것만해도 대단했지만 이번 진도 9만은 못하다.

그 간토 대지진 당시 조선인에겐 대지진에 이은 두 번째 참변이 가해졌다. 일본 정부는 민심의 불안을 돌리려 공작을 벌였다. 유언반, 지휘반, 실행반 같은 공작대를 조직해 그들로 하여금 방화·독물투입·투탄 같은 테러 행위를 감행시켰다. 가뜩이나 지진 피해에 낙담한 일본인에게 일본 정부 공작대가 테러를 가한 것이다. 그리고 마치 조선인들이 한 것처럼 조작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 폭동설을 그대로 믿고 그 보복책으로 각 지방별로 자체경비단을 조직해, 군경과 자경단에 의한 한국인 대학살이 자행됐다. 김승학의 ‘한국독립운동사’에서는 이로인해 피살 당한 조선인을 6066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간악한 일제이다.

쓰나미라는 2차 피해가 두드러졌던 1986년 기록도 살펴보자. (참고로 쓰나미는 나루(津)와 파도(波)가 합쳐진 일본어로 1963년 국제과학회의에서 채택된 ‘지진해일’이란 뜻의 세계 공용어다. 쓰나미의 종주국은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다.) 이번 지진처럼 대형 쓰나미로 인해 2차 타격이 심각했던 대표적인 사례인데 메이지산리쿠 지진으로 명명된다. 일본 도호쿠 이와테현에서 규모 8.2 강진이 발생했으나, 진앙이 해상 200㎞ 지점이어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지진 자체를 잘 감지하지 못했다.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다 맑은 하늘에 엄청난 파도를 만난 셈이다. 대형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 지방을 덮쳐 당시 2만 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파도의 높이는 이와테현 미야코시와 오후나시에서 각각 18.9m, 22.4m로 기록됐다.

지난 1995년 1월 한신 대지진은 역대 기록 중 최고이다. 규모 7.2의 강진이 몰아쳐 고베와 이타미 등에서 무려 6400여 명이 숨지고 4만 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붕괴된 주택만 44만 가구, 도시 곳곳은 나흘 밤낮으로 화염에 휩싸였다. 재산 피해액이 10조 엔, 우리 돈으로 130조 원에 달했고 피해 복구에만 2년이 넘게 걸렸다. 이후 몇 년간 잠잠했던 지진의 악몽은 지난 2000년 돗토리현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일어나며 재현됐다.

이번에 발생한 대지진은 이미 2009년부터 징후가 관측됐다. 일본 도쿄 서부 시즈오카현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대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내놓은 것. 당시 일본 정부 지진조사연구회는 '도카이 지진'이 30년 이내에 87% 확률로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1978년 제정된 대규모 지진 대책 특별조치법의 방재 대책을 대폭 손질해 놓았다. 그래도 이 정도 피해를 입었다.

지금 일본은 '이번에 겪은 게 진정한 도카이 지진이 아니라 도카이 지진의 전조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강 건너 아니 바다 건너 우리는 마냥 안전하다며 불구경할 것인가. 막연히 불안해 할 필요는 없지만, 대비하던 가운데 지진을 맞은 역사가 동서고금 없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