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온 '복지국가 스웨덴'(신필균 저, 후마니타스 발행)이란 책을 요약해봤습니다.

"출산 6개월 뒤 또는 부모 출산휴가(480일) 뒤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각종 유치원과 탁아소 등 다양한 아동센터들이 존재한다. 16살까지 아동수당도 나온다. 18살까지의 아동·청소년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다. 18살이 되면 임대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는데, 임대료도 건물 소유자와 세입자조합 간에 단체협상을 통해 정하게 돼 있다. 임신휴가 급여로 월평균 소득의 80%를 최대 50일까지 받을 수 있다. 출산휴가는 480일이고 부와 모 양쪽이 나눠서 쓸 수 있되 어느 한쪽도 60일 미만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역시 평균 소득의 80%를 받는다. 자녀가 아파도 부모가 연간 120일까지 간병휴가를 받을 수 있다. 65살 이후부터 누구나 보장연금을 받는다. 고용과 소득수준에 비례한 부가연금제도도 마련돼 있는데, 급여액은 소득의 60% 수준이다. 개인이 부담하는 병원비와 약값은 아무리 큰 수술을 받더라도 연간 45만원 수준을 넘지 않게 돼 있다. 실업급여도 이전 소득의 80%를 14개월간 받을 수 있고 18살 아래 자녀가 있으면 그 기간이 150일 더 늘어난다."

사실 스웨덴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10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야 했을 만큼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최근까지 하늘에서 달러 다발이 쏟아졌을까요? 아닙니다. 소위 ‘있는 사람들’의 횡포에 맞서 거세게 노동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가진 자들이 보다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지게 됐고, 뒤 이어 보편적 복지가 뿌리내리게 됐습니다. 야당에서는 이 보편적 복지를 우리 현실에 반영하려 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피부에 와 닿는 사례로 ‘의무 교육’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전 과정에 대한 수업료를 국가가 대신 내줍니다. (준비물 비용 등은 별도이지만요.) 가정 형편이 나은 학생들에게 따로 받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전국 각지에서 초중학교 학생에게 돈 안 받아도 밥을 주는 무상급식이 선 보였습니다. 이 역시 있는 집 아이에게 따로 비용을 청구하지 않습니다.

무상급식 정책은 진보 성향의 야당들이 6.2 지방선거에 내건 공약입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최근 무상급식 외에 무상의료, 무상보육 그리고 대학 등록금 절반 부담 정책을 당론으로 채택했습니다. 무상의료는 입원 진료비 부담률을 10% 이내로, 아무리 고액의 진료비를 내더라도 100만 원 이내로, 외래 치료비의 본인부담을 30~40% 이내로 하는 정책입니다. 무상보육은 여기에 만 5세 이하 어린이집과 유치원 비용을 전액 지원하되 그곳에 아이를 안 보내는 가정에게 양육수당을 지원하는 방안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각종 장학혜택을 통한 대학 학자금 부담의 절반 인하를 도모하는 반값 등록금 정책은 ‘무상’은 아니나 ‘절반의 무상’을 표방합니다. 어떻습니까? 공통점은 ‘무차별’입니다.

이와는 상대되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선별적 복지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형편이 안 좋은 이들만 골라서 혜택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유차별’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한나라당의 ‘70% 복지론’이 그렇습니다.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소득 하위 70% 계층의 0~5살 영·유아 보육료 전액 지원하고 △같은 계층의 평점 B학점 이상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등록금 취업 후 상환 대출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무상급식과 관련해서는 이미 “부잣집 아이들의 밥까지 챙길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지요.

누구 주장이 옳을까요. 여론은 당장은 선별적 복지에 무게를 싣는 듯합니다. <한겨레>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월 22~23일 19살 이상 전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전화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보편복지론이 30.3%에 그친 데 비해, “선별하여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선별복지론은 68.8%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따져보면 여론은 보편복지론에 점차 동조하는 양상입니다. ‘세금을 더 내더라도 복지 수준을 지금보다 더 늘리자’(53.1%),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복지 수준은 부족하다’(59.1%), ‘복지 확대를 위해 최상위 부자들에게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81.3%)는 견해가 다수였습니다. 복지 열망은 높았지만 방법론에 대한 혼선 또는 인식의 부족이 혼재한 듯 합니다. (이번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오차한계는 ±3.5%포인트입니다.)

사실 모든 국민이 골고루 최상의 복지를 누리자는데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지금은 반대하는 듯 보여도 이명박 대통령도 ‘무상복지’에 관한한 의지가 강했던 인물입니다. 12살 이하 필수 예방접종 무료 실시, 만 5살 이하 아동 입원·외래진료비 본인부담금 완전 면제, 0~5세 무상보육. 대선 때 이런 공약을 내세웠었습니다. 지당한 주장입니다. 실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국가는 국민에게 기본적인 교육·의료·주거·노후에 대한 보장을 해주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실업보험·재교육 지원 등을 통해 재기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 좋습니다. 계층 간 위화감을 줄인다는 점에서 국민통합의 효과가 있습니다. 교육, 의료 같은 일상의 짐을 줄인다는 점에서 여성의 경제 참여 효과도 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재원 즉 돈입니다.

‘3+1’ 무상복지안을 내세운 민주당의 대책을 보겠습니다. 부자들 세금 깎아준 것 다시 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연간 18조 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4대강 사업 예산같은 비효율적인 예산을 5%만 절감해도 연간 15조 원을 아낄 수 있다고 셈했습니다. 또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받으면 4조2000억 원, 과도한 비과세 감면 혜택을 줄이면 연간 6조5000억 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도 폈습니다. 이 같은 방안이 완전 실현됐을 경우 43조 원 정도가 확보되는 만큼 절반 수준인 20조 원 안팎으로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그리고 등록금 부담 절반 인하 정책에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부자감세 철회는 결국 세금을 올려 받겠다는 것인데 이게 증세가 아니면 뭐냐는 것입니다. 사실 ‘복지를 위해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인가’라며 반대하면 이겨낼 장사가 없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소금세를 물리는 것에 대한 불만을 기초로 프랑스 혁명이 불거졌습니다. 또한 세금 과세는 미국이 영국에 대항해 독립전쟁을 벌이는 데 결정적 원인이 됐지요.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안정적 세원 확보를 명분으로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는데, 이에 대해 불만이 급격한 민심이반으로 이어졌고, 공화당 총선 참패, 부마항쟁을 빚어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참고로 부마항쟁에 대한 대응 방법을 놓고 부하들끼리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숨졌지요. 노무현 정부 당시 신설된 ‘종합부동산세’가 정권 교체의 큰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6억 이상 집 있는 사람에게 매기는 세금인데도 말이지요.) 그밖에 비과세 감면 혜택을 줄이고, 소득에 맞게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에게 제대로 징수하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제대로 하면 재원은 42조 정도 나오며 필요 예산 20조를 채우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이익단체의 반발, 징수 과정에서의 갈등 유발 같은 부작용은 지나치게 외면한 듯 합니다.

이런 정서를 잘 아는 여당은 벌써부터 ‘세금폭탄’ 운운하면서 딴죽을 걸고 있습니다. “무상복지는 서민 주머니 털어 부자에게 혜택주는 것”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꺼냅니다. 사실 참여정부 때에 월세 사는 서민이 당시 여당 당사로 전화해 “왜 먹고 살기 힘든데 종합부동산세를 걷느냐”며 항의했다고 하지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증세 이야기만 나오면 화들짝 놀라는 게 국민 정서를 악용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한나라당의 의도는 물가 폭등으로 생활이 날로 빠듯해지는 서민들에게 증세에 대한 반감을 유발해 복지 논의를 차단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않습니다. 우선 세금 늘여서 복지 재원에 충당하는 것은 맞지만, 유럽의 예나, 지금 무상복지론을 주장하는 한국 야당의 셈법으로 보나, 조세정의 원칙으로 보나 부자에게 더 걷어서 서민에게 더 많이 나누는 게 보편적 복지의 재원 조달 방안입니다. 서민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여당의 반대논리는 또 있지요. ‘북유럽도 그렇게 했다가 실패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있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18%가 넘는 복지 지출의 유럽이, 3~6% 불과한 한국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럽의 보편적 복지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노르웨이·스웨덴이 복지 때문에 재정 파탄이 났다고 주장하는데, 5년간 재정수지를 분석해보면 그런 복지체계와는 상반된 미국·독일보다 탄탄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야당이 먼저 낸 아이디어라서’, ‘일단 시행되고 나면 수정 폐지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게 굳어질 경우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여당의 주요 지지층인 부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이런 이유로 반발할 것이 걱정돼서’ 이런 이유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은 아닐까요? 한나라당의 대응수가 너무나 얕습니다.

여전히 ‘이도 저도 시끄러우니 이대로 살자’는 분, 혹시 계신가요? 이혜원 성공회대 교수가 <한국일보> 2011년 1월 28일자에 기고한 내용을 보셔야 합니다. 요약하겠습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는 미국의 선별적 의료복지와 영국의 보편적 의료복지를 비교하는 내용이 있다. 1인당 의료보험 지출이 7000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인이 왜 가장 낮은 의료를 받는가? 보험료의 31%는 행정에 사용된다. 개별 치료의 보험적용 여부는 1000 곳이 넘는 보험회사와 수 만 가지 상품마다 다르다. 접수 직원은 진료실보다 더 많다. 이들은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환자 자격을 일일이 확인한다. 아무리 급해도 접수가 완료돼야 진료가 시작된다.

영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언제든 원하는 진료를 받는다. 1인당 의료보험 지출은 미국의 5분의1이다. 보험자가 국가 한 곳이기 때문이다. 접수는 환자 정보만으로 '한 번에' 끝난다. 보험료의 1.3%만 행정에 사용된다. 평균수명은 미국보다 더 길다. 심지어 극빈자가 미국 부자보다 더 오래 산다. 영아사망률도 더 낮다. 보편적 복지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

야당의 보편적 복지 방안, 아직 설익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더 체계적이고 정교한 재원 조달방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체제와 북유럽의 환경이 상이한 점도 살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한 여당과 야당의 성의 있는 토론과 논쟁을 바랍니다. 덮어놓고 된다, 안 된다의 정쟁으로 변질되지 않기 바랍니다. 질 좋은 국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국민에 대한 국가의 도리 아니겠습니까? 세금으로 녹 받고 사는 분들의 진지한 성찰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