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아 씨의 신간 '4001' 표지

요즘 정치면, 경제면, 사회면, 문화면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말이 바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닐까 싶다. 노이즈 마케팅하면 요즘 정운찬 전 총리를 꼽게 된다. 신정아 씨가 최근 내놓은 자서전에 정운찬 전 총리가 서울대 총장으로 있을 때에 자기에게 자리를 약속하면서 구애를 했다고 주장했다.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믿지 않는 편이다. 워낙 허위, 과장 발언을 많이 했던 터이다. 이에 대해 정운찬 전 총리는 “책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려는 노이즈 마케팅”이라며 일축했다.

책이 꽤 많이 팔렸다고 한다. 5만부를 찍었다. 그 중 2만부가 발간 첫 날 나갔단다. 이튿날엔 ‘완판’됐다고 한다. 출판사는 4만부를 새로 찍고 있다고 한다. 권당 14,000 원. 인세가 10%니까. 권당 1,400 원 씩 5만부이면 대략 7000만 원의 인세를 챙기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신정아 씨만 노이즈 마케팅을 취했느냐.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가 <국민일보> 기자에게 한 말이 있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떠보고 싶었는데, 결국 노이즈 마케팅으로 발목이 잡힌 것 아니겠어요. 답답합니다.”

정운찬 전 총리 역시 노이즈 마케팅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전혀 다른 건으로. 지금 동반성장위원장이지? 미행설까지 제기하며 사직서를 냈지? 나름 중소기업을 위한다며 권부 핵심 인사들에게 할 말 하는 인사로서 이미지 관리를 한껏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따라서 정운찬 전 총리 역시 이런 논란과 파문을 이용하는 식의 노이즈 마케팅 기법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런 정운찬 전 총리가 신정아 씨의 노이즈 마케팅의 이용 상대가 됐다.

노이즈 마케팅, 이 말의 뜻부터 정확히 규정해본다. 노이즈(Noise)가 듣기 안 좋은 소음을 뜻한다. 짧은 시간에 제품이나 인물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좋지 않은 내용을 퍼트린다. 자극적인 내용일수록 쉽게 소비자에게 기억되고 전파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다시 이야기해 단기간에 제품 인지도가 올라가 매출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걸 다른 말로 네거티브(Negative) 전략으로도 말한다. 노이즈 마케팅이 성공하려면 빠른 전파력이 핵심이다. 그 역할을 인터넷이 요즘 하고 있다.

얼마전 한 대형마트가 ‘통큰’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이것 역시 노이즈 마케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한정된 물량의 상품을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한정된 기간에 판매한다는 특징이 있다.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너무 싼 가격에 공급하는 터라 주변 중소상인들의 반발을 샀다. 이 반발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그 대형마트는 즐거웠다. 욕은 먹더라도 자기 상점이 너무 싸다는 점이 저절로 홍보돼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노이즈 마케팅은 연예계에서도 최고의 마케팅 기법으로 꼽힌다. 가요계에서 음원 또는 뮤직비디오를 발매 또는 공개일에 앞서, 고의 유출하는 것이 그 예다. 신인가수의 경우 노출 사고를 일부러 조장함으로써 인지도를 높이는 수법도 자주 쓴다. 개봉을 앞두고 주연 배우의 열애설이 갑자기 불거지는 건 영화계에서 많이 써먹는 수법이다. 영화 내용을 두고 반발하는 단체의 항의와 소동은 거의 퍼포먼스에 가까운 홍보라 하겠다.

여론몰이로 이슈화하는 것도 노이즈 마케팅의 전형이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동성애나 군복무, 종교가 한 예다. 이같은 문제는 찬반이 극심해 쉽게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수많은 관객을 모았던 '왕의 남자'는 동성애로 시선을 끌었다. '다빈치 코드'는 기독교의 명예를 훼손시켰는가, 아닌가라는 이슈를 만들었다. 실미도 등은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개봉 전부터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당하는 등 이슈가 되었다.

정치 분야에서도 노이즈 마케팅은 신예들에게 효과적인 홍보 전략이 된다.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황당공약과 기행을 한 허경영씨도 노이즈 마케팅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존 정치권과는 다른 파격적인 공약과 지능지수 430 등의 주장은 이야기거리로 포장돼 이슈화가 되었다. 아무도 몰랐던 그였지만 이런 엽기적인 눈길 끌기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독한 말로 논란을 키울 지언정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 역시 노이즈 마케팅의 전형적 수법이다.

노이즈 마케팅이 워낙 여기저기서 나오다보니까 사람들의 냉소를 사기도 한다. 갈수록 홍보하려는 것의 생명주기가 짧아지면서 수용자의 이목을 끌기 위한 부풀리기, 본질을 벗어난 이슈화, 과포장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덩달아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이 증가한다. 결국 무관심, 냉소, 신뢰 상실로 이어져 결국 부메랑이 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깊다. 신정아 씨 책에 대한 비판의 글이 많다. 신정아 씨가 과연 약자, 피해자로서 자신의 기본권을 행사한 것일까, 도리어 책 팔기 위해 나아가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위한 방편으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이슈를 들고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간의 과장, 허위 발언이 많지 않았나. 따라서 신정아 씨 주장은 무게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진실 여부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여기서부터는 신정아 씨만 비판할 일이 아니다. 진실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 공권력, 언론이 예전 같은 신뢰를 얻지 못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법적 다툼으로까지 갈까? 신정아 씨 주장이 허위요, 모략임이 드러나도 소송 건 사람들, 확고한 명예회복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어차피 힘 있는 자들이 이기는 게 진실 아닌가’라는 냉소만 자아내지 않을까. 진실이 승리하는 게 아니라 승리하는 게 진실이라는 뼈아픈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진실은 강자의 전유물처럼 돼 버렸다. 그런데 진실이 홀대받고, 조작된 마케팅이 주목받는 현실 속에서는 강자나 약자나 다 같은 피해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