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대 사회적 신뢰도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종교에 대한 신뢰도, 종교의 이탈률, 각 종교의 성직자에 대한 신뢰도 등등 모든 통계조사에서 개신교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이와 함께 하루가 멀다 하고, 교계에서 각종 비리와 의혹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근본적인 갱신이 필요한 시점을 이미 놓치고 있다는 위기감이 교계 전반에 확산 되고 있다. 이즈음에 그 동안 지속적으로 여론의 눈총을 받아왔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회장 선거에서 드러난 금권 선거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심각성을 노정하기에 이르렀다. 한기총이 지역교회의 목회와 선교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 일고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한기총이 지역교회와 복음전도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

무엇보다도, 한기총이 과연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 참여단체와 참여인사들, 그리고 그 재정 규모 등으로 보아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것 같이 보이고, 또한 최근 들어서는중요한 시점마다 목소리를 높임으로서 한국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대중적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한기총이 한국 교회를 대표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여럿 있다. 그 중 참여 단체가 내는 회비는 사분의 일 정도이고, 나머지는 대형교회와 일부 목사와 재력가들에 의해서 충당되는 현상이 그 하나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한기총의 성명이 각 교회와 노회, 그리고 교단에서 논의 과정이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다른 이유이다. 교회가 탈정치적일 수 없고, 때로 기독교회의 입장이 정치적 입장으로표현할 수밖에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각 교회와 교단에서의 아무런 논의와
수렴 과정 없이 일부 목사들에 의해서 작성되는 성명은 한국 교회 전체의 이미지를 훼손할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기총은 한기총이 한국 교회 전체를 대변하는듯한 인상을 일반 대중에게 주어, 한국 교회의 대표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대표성을 실제로 갖지 않은 한기총이 보이는 비윤리성, 정치성, 그리고 이로 말미암는 사회 통합의 역기능 등은 각 지역교회의 목회와 선교에 지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목회적인 면에서 대다수 의식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비판적 안목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젊은 세대가 기독교를 떠나 무교가 되거나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비율이 다른 어떤 종교보다 높은 현상은 이와 무관치 않다. 한기총이 배태하는 부정적 이미지와 지역교회의 미성숙과 비리가 결합되어 기독교의 종교 이탈을 최악의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또한 한국 교회의 얼굴이며 어른으로 자처하는 한기총이 보여주는 모습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며 행함이라면, 적지 않은 교회내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가를 보여주어야 할 교회의 이미지가 한기총으로 대변됨에 따라, 일반 대중이 기독교의 복음에 관심을 갖고 진지한 구도를 하는 일에 지대한 장애를 가져오고 있다. 교회의 대 사회적 활동 역시 순수하게 읽혀지지 않을 위험까지 존재한다. 일반 사회에서조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타락선거가 만연한 모습은, 교회에서 선포되는 복음의 메시지는 결국 따르지도, 살아내지도 못할 언어의 유희와 위선자들의 종교적 허식 정도로 일반 사회인에게 전달된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에서 회심과 개종 비율의 지속적 저하에 한기총의 부정적 이미지가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 한기총과 같은 개신교를 대표하는 조직의 필요성

한기총은 한국 교회를 엄밀한 의미에서 대표할, 전 교회적 합의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그 자질에 있어서도 심각한 결격 사유를 안고 있다. 이제 한기총이 스스로 근원적인 개혁과 재구성을 하지 못한다면 해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유사대표성” 또는 "과잉대표성"으로 인해 한국 교회에 끼치는 위해를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기총을 대신할 다른 조직체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심각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각 지역교회와 교단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같은 주님을 섬기는 면에서 교제하고 연합하기 위한 교제 차원의 조직은 필요할지 모르지만, 과연 최근 한기총이 보여준 것과 같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대표적 기관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재고하여야 한다.

개신교의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성도 각 개인이 성서를 자신의 상황 속에서 신실하게 해석하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여러 사안에 대하여 조금씩 다른 입장의 견해가 개진될 수 있고, 대화와 논쟁의 과정을 통해, 진리에 더 가까이 나가고 또한 그 진리를 더 온전히 따를 수 있다. 그런데 한기총과 같은 대표 기구가 생겨나, 각 교회에서의 적절하고 충분한 논의도 없이 한국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개신교가 가지는 본질적 장점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치적 권력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속셈까지 더해진다면, 이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가르침에 역행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조직이 철저하게 성직자 중심의 조직이 될 때, 개신교의 전통인 만인제사장설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사제 중심과 사제 우월의 사상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한국 교회가 전체적으로 함께 공동의 입장을 개진하여야 할 때가 있다면, 그 때마다 사안별로 동의하는 교단과 교회가 그런 입장을 표현하여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3. 한기총 해체 상황의 책임자와 보다 본질적 갱신의 필요성

한기총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되었건 한국의 중요한 교단과 단체들이 가입되어 있는 이 단체가 이제 더 이상 자체 정화와 개혁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해체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요청인데, 이는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상황의 책임을 단지 몇몇의 교계 지도자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이번에 드러난 금권 선거의 규모가 너무 광범위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한기총의 모습이 각 교단에는 없다고 말하기 힘든 점이 우리를 또 한번 곤혹스럽게 한다. 더 나아가 각 교단의 노회에서는 어떨까? 아니, 그 노회에 속해 있는 지역교회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슬프고도 고통스럽게 우리는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교회 내의 권력의 비정상적 집중과 재정의 불투명한 사용, 그리고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의 일탈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자는 안수집사도 장로도 되기 어려운 우리 교회 내부적 상황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성도들은 교역자들이나 당회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 아래, 기도가 동반된 당연한 문제제기와 사랑을 동반한 감시의 의무를 너무 오랫동안 도외시했다. 부교역자들은

담임 목사의 목회철학에 순종하여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는 미명 하에 그들이 따르는 주님의 뜻을 거슬렀다. 불행히도, 그리고 가슴 깊은 아픔으로, 한국 교회 속에 있는 우리 모두의 “침묵과 무관심의 카르텔”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작금에 벌어진 한기총의 금권선거의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한국 교회가 이번의 이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기회를 통하여 스스로 각성하여 깨어나지 못한다면, 한기총 해체는 사실 또 다른 유사 한기총을 만들어내고 말 것이다. 단지 한기총 해체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참여하는 갱신이 필요하다. 교회가 건강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은 결코 목회자나 교회 제직(諸職)의 의무가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예수를 본받으며 따라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소극적으로는 내부적으로 책임성 있는 존재로 상시적 감사와 건설적 비판의 역할을 하며, 적극적으로는 교회와 사회에서 예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철저한 헌신을 해야 한다.

이에, 이번 한기총 사태를 바라보면서 누구에겐가 돌을 던지는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 성도들이 가칭 “예수를 따르는 교회를 위한 지킴이 서약”(줄여서, “교회 지킴이 서약”)을 하는 운동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주님의 교회의 실제 지체들인 우리 성도들이 일어날 때, 한국 교회가 뿌리로부터 갱신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교계의 명망가들에 의해서 이끌어지던 갱신이 아닌, 모든 성도들이 깨어나는 갱신이 필요한 때이다. 각 지역교회에서, 각 노회와 교단에서 “교회 지킴이”들이 겸손과 사랑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것만이 한기총 해체에 이어지는 의미있는 열매를 가져올 것이다. 주여! 한국 교회를 도우소서. “교회 지킴이”들을 일으키소서!

/ 나들목교회 대표목사, 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