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맞을 때마다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소서”(마 27:38, 막 10:37)라고 자리를 부탁했던 제자들의 철없는 간구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인간들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하여 고통의 십자가를 향해 죽음을 길을 걸어가고 계셨지만 철없는 제자들은 자리다툼을 하면서 따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왕으로 등극하기 위한 출정(出征)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그들의 어머니의 요청으로 마가복음에는 그들 자신의 요청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아무튼 저는 고난절을 맞을 때마다 그 기록이 생각되고 그 철없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늘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집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는 육체의 고통보다 제자들조차도 주님의 그 고난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는 심적 외로움, 영적 고독이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저리기도 합니다. 그토록 가르치고 3년이나 따라다니며 배웠지만 아직도 예수님의 뜻보다는 자신들의 세상적 입신출세에만 관심을 가지고 엉뚱하고 한심한 생각을 하면서 따라오던 그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리고 예수님은 낮아짐의 은총을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2, 눅 14:11, 눅 18:14)라고,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 23:11)라고, 낮추고 낮아지는 것이 축복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 참으로 선한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기 원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면서도 그 낮아짐의 은총을 누리지 못할 어떤 저주의 마법에 걸려 있는 존재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성(罪性)이요 인간이 짊어진 저주인 것 같습니다.

정말 신앙의 축복, 믿음으로 얻는 감동은 겸손함의 은총, 낮아짐의 감격인데, 낮아지고 섬기고 남을 높여주고 세워주는 것이야말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가지는 축복인데 이 낮아짐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은 너무나 적은 것 같습니다. 힘이나 지위나 직분이나 직임은 섬기라고 위임된 의무이지만 사람들은 그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 휘두르고 지배하는 권리로 착각하여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의 자리를 범(犯)해 버립니다. 별것도 아닌 힘을 가지고 자기가 주도하고 주인공 노릇을 하려고 하다가 그 섬김의 은총, 섬김의 행복을 잃어버립니다. 촛불도 못되는 주제에 태양노릇까지 하려는 만용을 부리다가 스스로 무너져 버립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자리가 그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 때문에 무너져 버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올라가지 않았으면 떨어지는 불행도 없었을 부끄러운 자리도 많이 있습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섬김의 은총을 받은 자리인데 많은 경우 겸손히 낮아짐으로 섬기고 믿는 감격을 잃어버리고 매일 무거운 짐으로 허덕이는 것을 봅니다. 때론 저질러 놓은 것을 변명하고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그 알량한 명예 지키고 권위 지기고 체면 유지하려고 허덕이다가 겸손히 배우고 낮아짐의 은혜를 잃어버립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진정으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길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고난주간에 섬기고 있는지 지배하고 있는지, 청지기 자리에 있는 사람인지 하나님 자리를 차고 앉아 있는 사람인지, 섬김의 감격과 기쁨이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내 자리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자리인지를 돌아봅니다. 주여 나에게 낮아짐의 은총을 더하소서.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