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한 민족의 얼이고 정신이고 역사이고 문화다. 언어를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왕궁을 수리하고 확장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민족은 바로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민족이다. 일제가 강점기에 한 일은 바로 우리말을 못 쓰게 하고, 일본어를 국어라고 하여 모든 교육을 일본어로 강요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영어에 미쳐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든 국민에게 영어를 강요하는 듯하다. 어린아이들도 영어 때문에 혹사당하고 있다. 한창 모국어를 배우고 그 속에 담긴 한민족의 정신과 얼을 배우며 성장해야 할 나이에, 영어에 미쳐서 정작 한글은 문법도 모르고 문장도 제대로 배울 수 없는 교육이 판을 치고 있다. 작금의 카이스트에 연이은 학생 자살 사건도 언어라는 측면에서 한 번 짚어 볼 일이다. 카이스트는 모든 강의를 100% 영어로만 진행한다는 것을 자랑삼아 말해왔다.

이것이 정말 한국의 영재들을 교육하는 학교가 자랑할 일인가? ‘영어감옥’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있다. 누구를 위한 교육이고, 무엇을 위한 강의란 말인가? 일본을 여행한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의 영어 못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은 외국인들이 알아듣든 말든 일본어를 지껄이며 장사하고 돈을 번다. 심지어는 호텔이나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도 그들은 뻔히 외국인인 줄 알면서도 우선은 일본어로 묻고 답한다.

이런 현상은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어는 필요한 사람들만 하면 된다. 세상에 지성의 산실이라는 어느 나라의 대학이 제 나라 말을 제쳐놓고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하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세상에 어느 나라가 회사에 입사하는데 영어로 면접을 하고 영어 못하면 취직에 어려움을 주는 나라가 있나? 그런 나라는 영국이나 미국의 식민지였던 몇 나라에 불과하다.

우리는 남의 나라 식민지였을 때는 우리말로 교육하려고 목숨 걸고 싸우더니, 이제 마음 놓고 우리말로 교육할 수 있는 세상이 되니 기를 쓰고 영어로 캠퍼스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한 현상인가? 이제 10년 뒤에는 세계적으로 중국어가 영어만큼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카이스트에 묻고 싶다. 그 때는 모든 강의를 중국어로 할 것인가? 옛날 세종임금께서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백성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편하게 해주기 위하여 한글을 창제하신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서울장신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