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주업무는 목회이다. 하나님이 맡기신 목장에서 하나님의 양떼를 성심성의껏 돌보는 일이다. 때를 따라 푸른 초장과 시원한 물가로 인도하여 살찐 꼴과 생수를 마시게 하고 사나운 야수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우리를 튼튼히 하고 지키는 것이 우선적인 업무인 것이다. 그러나 어느 목회자는 자기 양떼를 돌보는 일에는 게을리 하고 외부로 나가 노회다, 총회, 혹은 무슨 연합기관이나 선교회 일에 열심을 나타내는 모습을 보이므로 목장이 부실해짐으로 나중에는 교회가 큰 시험에 빠지거나 혹은 사임 압박을 받는 일을 볼 수 있다.

은퇴를 앞두고 쓴 졸저(拙著) 「마라톤 목회론」에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바둑을 둘 때 남의 돌만 공격하다가 그 돌이 살아가고 나면 집 부족에 걸려 어이없이 패하고 마는 일이 많다. 그래서 바둑 용어에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말이 있다. ‘공격하기 전에 자기 집부터 지어라.’는 뜻이다.
목회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어느 목회자는 자기 교회를 돌보는 일은 게을리 하면서, 노회나 총회, 무슨 선교회 모임이나 부흥강사 등, 외적 활동을 맹렬히 한다. 그리하여 교계(敎界)에서 유명인사로 통할지 모르지만, 교회는 심히 부실하게 되므로 후에는 교회 내부로부터 엄청난 반대에 직면할 뿐 아니라 외부에서조차 비판을 받는 것을 본다.
이는 외화내빈(外華內負)의 모습으로 바람직한 목회자상(像)이 아니다. 목회자는 우선 자기 교회부터 든든히 서도록 열심히 목회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이 되면 자연적으로 외적인 활동 무대가 주어지는 때가 오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목회 40년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보니 나는 한국교회 안에 장자교단이라는 통합측 서울노회에서 임원을 6년이나 하게 되었다. 1989년부터 부회록서기 2년으로 시작하여 1991년 회록서기 2년, 1993년 서기 2년, 1998년 부노회장, 1999년 노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노회보의 편집위원장을 거의 16년 동안 역임했고, 시험에 든 6-7개 교회 수습위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노회의 중견인물 노릇을 나름대로 했었다.

또한 총회적으로는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한국장로교출판사 서기 이사(3년), 정신학원 이사(3년), 한국기독교가정생활위원회 이사, 총회 역사위원장으로 활동했고, 2005년부터는 영락교회 수습전권위원장, 서울시 연합당회 부회장, 서울노회 교역자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특별히 내가 노회장 때에 우리 노회에서 부총회장 후보를 내었고, 또한 우리 동기들이 세 차례나 부총회장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에 싫든 좋든 선거 운동을 벌이어야 했기에, 내가 정치성향이 강했다면 아마 총회 선거철 때마다 전국을 누비며 신나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 만약에 내가 좀 더 정치적이거나 정치적 야망이 강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목회보다는 외부 활동에 더 열을 올리는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위의 책에서 언급한 내용이 바로 나 자신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정치적인 야망을 따라 목회보다는 외부활동에 열을 올리는 목회자가 되었다면 무슨 바른 글을 쓸 수나 있었겠는가? 그러나 너무나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정치적인 성향이 거의 없다.

동기들이 출마했을 때도 총대 누구에게도 전화 한 통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쑥스러움이 많다. 더욱이나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 많은 글을 썼던 입장이 나를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 비정치적인 사람으로 족쇄를 채운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목회 초반이나 중반까지는 오직 하나님이 맡기신 양떼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노회에서 총대나 임원으로 선출해주지 않는다고 초조해하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힘 있다는 인물에게 빌붙어 한 자리 차지하려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열심히 목회에 힘쓰면서 자기 교회가 어느 정도 제 궤도에 이르면 노회나 총회 혹은 여러 기관에서 자연적으로 추천이나 추대를 받음으로 외부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오기 마련인 것이다. 사실, 나는 40대 중반까지도 노회에서는 총회 총대로 선출되지 못했다.

오히려 우리 교회보다 형편없이 작은 교회 목회자나 후배들이 총대로 선출될 때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노회 안에 몇몇 정치꾼들이 자기들에게 줄을 서는 사람들만 선출하는 식의 장난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가자 자연적으로 노회 임원이 되고 총대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요, 노회에서 여러 가지 중직을 맡게 된 것이다. 반면에 정치적인 장난을 일삼던 자들은 이런 저런 사건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