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정변이 발발한지 50년이 됐다. 요즘은 ‘군사정변’이라고 한다. 그게 ‘쿠데타’를 일컫는 것인지 아니면 ‘혁명’의 의미를 담은 것인지 애매하다.

사실 ‘쿠데타’와 ‘혁명’ 이 두 표현은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쿠데타는 한마디로 내란이다. 주도한 사람에 대해서는 형법상 사형 판결도 가능한 중범죄다. 반면 혁명은 초법적인 면은 있으나 이제까지의 사회체제를 폐기하고 새로운, 한층 고도의 사회 체제를 세우는 행위를 뜻한다. 저간에 흐르는 긍정적 뉘앙스가 뚜렷하다.

5.16은 형식적으로는 쿠데타가 맞다. 군인들이 본령인 나라 지키기를 거부하고 총구를 수도 서울로 돌려놓고는 돌진해 국가 권력을 찬탈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1963년에 있은 대선에서 국민은 쿠데타를 진두지휘한 후보에게 다수표를 몰아줌으로써 사실상 정치적으로 용납했고, 권력을 쥐고 18년 동안 나라 경제를 부흥한 공로를 인정했다. 그래서 혁명으로 봐야 한다는 쪽이 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그러나 평가는 가능하다. 백원우 민주당의원이 소장으로 있는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5월 9~10일 이틀간 자동응답방식 전화로 9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전·현직 대통령이 재출마했을 경우 지지의향을 복수응답이 가능하도록 해서 물은 것인데. 그 결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57.5%의 지지율을 얻어 47.4%의 노무현, 39.3%의 김대중, 16.1%의 이명박 전 현직 대통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박정희는 재출마시 지지하지 않겠다는 의견에서도 가장 낮았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대선 주자 지지율에 있어 1위를 고수하는 배경, 뿌리가 깊다.

왜 이렇게 박정희는 사후 30년이 넘도록 인기가 식지 않을까. 사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서 재임할 당시까지만 해도 박정희의 5.16은 쿠데타로 낙인 찍혔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노태우를 끝으로 군부정치인들이 물러나게 되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 김영삼 시대에 박정희가 부활했다는 평가가 많다. 1997년 발발한 외환위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라는 게 외환보유고에 달러 즉 현찰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발생한 게 아닌가. 그 뒤로 기업은 현찰을 쓰지 않고 모아뒀다. 수출로 떼돈 벌면 직원도 고용하고 투자도 활발히 해야 할 텐데 과거에는 온존했던 그 관행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낙수 효과, 이른바 트리클 다운 효과가 증발된 것이다. 대기업들이 돈을 모아놓고 풀지 않는 것이다. 금고에 가둬놓고 보는 것이다.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사이에 격차가 심화되는 것 즉 양극화가 촉진되는 당연했다.

이런 양극화는 ‘박정희 향수’의 물꼬를 트고 말았다. 사실 박정희 시절에는 부의 분배가 상대적으로 평등했다. 당시에 하위 40%의 소득성장률은 9.5%였다. 전체 평균 성장률은 9%다. 도시 빈민도 같이 잘살게 됐다. 그 뿐 아니다. 수는 적었지만 당시에는 독재의 칼날이 서민을 위해 쓰기도 했다. 부동산값이 오르면 철퇴를 가했고, 전국적으로 고교 평준화를 단행했으며, 봉급은 적을망정 차별받지 않았던 직장이 있었다. 비록 독재를 했으나 시장의 강자들을 억누르고 약자들을 다독였다는 기억이 무덤 속의 박정희를 불러일으켜 세운 것이란 이야기다. 실제로 박정희 모델에 대한 향수는 그 어느 계층보다 고연령, 저소득, 저학력 등 서민층에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 양극화의 뿌리가 박정희 시대로부터 비롯됐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국 사회는 재벌 즉 대기업의 독무대다. 이런 재벌을 키운 사람이 바로 박정희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때 이 나라는 10% 안팎의 고성장을 나타냈다. 지금은 5%의 성장률 달성도 쉽지 않은 시대인데 말이다. 이건 정부가 주도하고 대기업이 따르는 협력체제가 가동되었던 덕분에 가능했다. 정부의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금융과 기업에 개입하는 것이다. 탁 까놓고 이야기해, 대통령 한마디면 은행이 착착 빌려주고, 대기업은 자금난 걱정 없이 땅 짚고 헤엄쳤다. 그렇게 기업이 아무런 제한 없이 은행으로 돈을 꿨다가 닥친 게 외환위기다.

지금은 그런 식의 관치경제를 했다가 큰일 난다. 게다가 이 나라 저 나라 안 가리고 FTA 체결하고 있지 않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 말대로 아무리 잘난 대통령이 나와도 권력이 시장을 좌지우지 못하게 돼 버렸다. 앞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부자의 꿈을 꿀 수 있고 또 실현될 수 있는 세상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러려면 뼈 빠져야했다. 박정희 정권 18년이 지나면서 대한민국은 세계 최저 임금, 세계 최장 시간 노동, 세계 최대 산업재해의 나라가 돼 버렸다. 전태일 열사 사건은 하나의 상징이다.

박정희는 확실히 정치를 하고 싶어 했다. 국가 개조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다는 게 박정희를 지지하는 이들의 주장을 넘어선 신념이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식자층 말고는 대통령과 임금님의 구분이 분명치 않았던 때였다. 정치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게 헌법이 보장한 명목상 원칙이지만, 나보다 똑똑한 상류층이 해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 인식체계이었다. 박정희의 정계 입문은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어려웠다.

또한 박정희의 그 무리한 군사반란이 가능했던 것은 쿠데타를 용인하던 사회분위기이었다.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은 알면서도 묵인했다. 장면 총리는 총성이 나자 군 통수권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가 버렸다. 윤보선 대통령은 ‘올 것이 왔다’고 했고 진압군 동원을 거절했다. 미국은 혁명 반대 성명을 냈다가 곧 인정하는 쪽으로 갔다. 재야인사인 장준하·함석헌 씨 역시 5·16을 지지했다. 게다가 앞서 짚은 대로 1963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가 이겼다. (물론 가까스로였다. 도시에서는 윤보선이 더 많이 득표하기도 했고.) 그 뒤 김종필이 출마한 총선도 공화당이 압승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5.16을 혁명으로 단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다. 4.19 혁명으로 이 나라가 이승만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동했는데 2공화국이 능력이 있었냐 없었냐, 당시 사회가 혼란했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군부가 헌정 질서를 중단시킨 점은 분명 역사를 뒷걸음질 쳤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대혁명, 미국의 시민혁명처럼 혁명은 주체가 시민이어야 하고 사회구조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5·16은 사회구조적 변화는 가져왔지만 주체가 군인이었다. 군사정변이라는 평가가 좀 더 중도적이긴 해도, 혁명의 표현을 갖다 쓰는 것은 대단히 주관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2011년의 현실에서 5.16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자리 잡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불거지는 박정희 향수가 모든 주도권을 한 손에 쥔 신묘한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나타나 한국 사회를 순식간에 변혁시킬 것이라는 망상을 불러일으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 대선 때 어떤 사람이 나와서 자기가 제 2의 박정희라느냐 하며 말도 안 되는 각종 경제 살리기 공약을 내세웠다. 현대 대한민국 체제는 지도자 한 사람의 개인기로 운영되는 나라가 아니다. 박정희가 부활해 다시 대통령이 된 다음, 그 때 했던 대로 독재, 관치로 경제를 휘어잡는다고 이 나라가 잘 먹고 잘 살게 될까. 아니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박정희 향수를 양극화 해소를 간절히 바라는 시대정신으로 해석하고 좋은 정책으로 국민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해법이다. 이에 관한 오판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