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성형외과 3곳 중 2곳, 샌드위치 전문점 2곳 중 1곳, 커피 전문점 3곳 중 1곳, 50평 이상 아파트 2곳 중 1곳이 이곳 3개 구에 집중돼 있습니다. 도심 변두리에서는 측정되기 힘든 지표지요. 여기는 어디일까요? 단서 몇 가지 더 흘립니다. 국내 10대 증권사의 서울 시내 지점들이 보유한 주식과 채권 등 각종 자산을 구별로 집계한 결과, 이곳 3개 구의 자산 규모는 95조 5000여억 원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서울시 전체 자산의 40%를 차지합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기는 어디일까요?

강남‧서초‧송파를 일컫는 강남 3구 말고 이 나라 국경 안에서는 답이 없습니다. 감회가 상전벽해(桑田碧海)입니다. 40년 전 경부고속도로를 지을 당시 현재 강남의 핵심 거점인 양재동의 평당 가격이 200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6만 배 뛴 5000만 원입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지하철은커녕 이곳까지 닿는 대중교통편이 없었으니까요. 이곳에 집이 있는 사람은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옛 국립묘지의 이름)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강남 전성시대입니다. 서울지역 고교 중 서울대 입학률이 높은 고등학교는 강남 3구가 단연 톱입니다. 당연합니다. 사교육의 아성 또한 이곳이거든요. 사법연수원생의 출신 지역과 학교를 보면 최근 5년간 서울이 32.8%, 그중 강남의 8학군 고교 출신이 32%였습니다. 사법고시만이 아니지요. 외무, 행정 그리고 이른바 언론고시도 강남이 싹쓸이하는 추이입니다. 부의 편중 현상, 당연히 기회의 독식을 배태(胚胎)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투기적 가치를 창출하는 자기증식적 부동산 가격, 8학군과 고액 사교육기관을 통해 유지되며 부모의 지위를 계승할 수 있게 하는 ‘교육 특구’, 강남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문화사회적인 결속이 오늘날의 ‘강남’을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었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런 세상은 예견된 것일지 모릅니다. 정부와 서울시가 1970년대 강남 권역을 개발하면서 용적률과 건물 높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학교 같은 공공시설을 집중 배치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했기 때문입니다. 또 1998년 국제통화기금 체제에선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강남권 재건축을 유도하면서 용적률, 층수에 특혜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강남 전성시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잠실 제2롯데월드(112층), 삼성동 한전 부지 그린게이트웨이(114층), 잠실운동장 부지 국제컨벤션콤플렉스(121층), 압구정동 등 한강 수변 지역 초고층화(50~80층)에 이르기까지 정부 및 서울시가 추진하는 대규모 사업이 강남권에 편중됐습니다. 또 강남 도심간 직통 지하철 건설, 지하철 9호선 연장노선 조기 착공(송파 지역), 재건축 소형 평형 의무비율 완화, 강남 3구 투기 지역 해제 검토, 양도세 감면 및 종부세 완화 발표도 강남권에 치우쳤습니다.

강남·서초·송파 강남 3구에 거주하는 인구는 서울시 전체 인구의 약 20%. 6․2지방선거에서 이들 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했으며, 개표 결과 초반 패색이 짙던 오세훈을 구해줬습니다. ‘서울시장’이라기보다 ‘통합 강남구청장’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 오세훈은 ‘럭셔리 구민’의 요구에 부응했습니다. 남의 아이들 밥값 대신 대주는 명목의 세금은 절대로 낼 수 없다는 뜻을 반영해 무상급식 정책을 파탄 내려고 기를 썼습니다. 혈투만 벌인 게 아닙니다. ‘디자인 서울’ 주창자답게 ‘모피 쇼’도 연출하는 문화적 기염을 발산했지요. 서민에게도 선물이 없지 않았습니다. 58억 자산가답게 딸들에게도 수천만 원씩 저축케 한 부자 아빠인 그가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느라 허리가 휘었다”며 아이러니를 선보임으로써 웃을 일이 없는 서민에게 실소나마 자아내게 했습니다. 사회가 타락하면 민주주의가 재산 증식과 보전의 도구가 됩니다.

지금은 회사가 상암동으로 이사했습니다만, 유력 방송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는 동생이 몇 년 전에 강남 논현동으로 출근할 당시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강남에서는 요즘, ‘촌스럽다’라는 말은 안 써. 쓴다면 ‘강북스럽다’라고 말하지.” 이젠 저 잘났고 남 못났다고 차별까지 한다는 이야기입니다(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나 동생은 ‘강북 중 강북’인 마장동에서 30년을 자랐습니다).

사실 새삼스러운 일입니다. 수년 전부터 지식인층 사이에서는 ‘강남 현상’이라는 말이 회자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한강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그렇게 명명됐지만, 이제는 계층과 문화가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특구’가 돼 버린 것입니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타워팰리스 같은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가리키며 “오래전 엥겔스가 지적했던 ‘지배계급 연합의 분리와 차별화 전략’마저 드러나고 있다”고 파악합니다.

타워팰리스 출입 차단기를 지나 그 안에 들어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고 합니다. 숙식은 물론 레저, 여가, 심지어 투표까지. (흥미로운 일화가 있습니다. 2002년 대선 당시 서울 강남구 도곡2동 숙명여고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타워팰리스 주민을 위해 별도의 ‘투표 전용 줄’이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런 불편 때문이었는지 2007년 대선 때는 그 안에 투표소가 따로 마련됐습니다. 결과도 덧붙이죠. 2274표를 얻은 이명박이 88표를 얻은 정동영을 압도했습니다.) 요컨대 그들만의 천국입니다. 이곳의 경우, ‘택함받지 않은 백성’은 출입조차 쉽지 않다고 합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그래서 ‘신 상류층의 방주’라고 이 공간을 일컬었습니다.

부요와 기회의 이기적 독식, 이런 강남에서 예수가 누울 자리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강남일수록 교회가 번성합니다. 최신 자료인 2005년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 강남구 개신교 인구 비율은 23%, 12만 명으로 나타났습니다. 10년 새 7%(4만 명)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전체 평균(19.6%)보다는 여전히 높습니다. 사실 경신교회, 광림교회, 사랑의교회, 소망교회, 온누리교회(양재), 임마누엘교회, 충현교회 등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개신교회가 뿌리린 동네가 이쪽입니다(다 강남, 서초, 송파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 부촌에 십자가 빛을 밝혔던 대형교회들, 어떻게 과열되는 물질 만능 세태에 냉각수 역할을 해 왔을까요? 그러나 들리는 소식은 사회 통념은 고사하고 법질서마저 무너뜨리는 파행을 빚고 있다는 추문으로 가득합니다.

경신교회 전준구 목사는 여러 여성 교인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광림교회 김선도 원로목사는 2000년 아들의 목회 세습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지요. 사랑의교회는 서초동 금싸라기 땅에 2100억대 새 교회당을 짓는 것도 논란거리인데 온갖 편법 특혜를 받았다는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무장로로 있는 소망교회는 출세의 통로로 변질해 세인의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담임목사는 부목사에게 얻어맞았으며, 또 다른 부목사는 청와대 신우회의 지도목사라고 사칭하며 교회 신도의 돈 수억 원을 가로챘다가 물의를 빚는 총체적 추태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온누리교회는 2010년 6․2지방선거에 출마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딸을 수천 명의 교인 앞에서 소개해 선거법 위반 논란을 자아냈고요(이미 그전부터 하용조 목사는 주요 선거 때마다 ‘이런 이런 후보가 돼야 한다’며 지침을 줬지요. 선거 개입의 달인입니다). 임마누엘교회 김국도 목사는 법원으로부터 자격이 없다는 판정을 받고도 완력으로 반대파를 제압하고는 감독회장을 참칭하고 다닙니다(형님들-김선도, 홍도-과 발맞춰 교회는 아들에게 물려줬고요). 충현교회는 개척자인 김창인 목사가 담임목사직을 제3자에게 넘겨줬다가 회수하고 은행원으로 있던 아들을 신학 공부시켜 목사로 만든 다음 그 자리에 앉혔지요(이후에 아버지와 아들은 교회 운영 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고 틀어집니다).

이렇다 할 대형교회는 아니라도 ‘강남교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또 있습니다. 강남교회 김성광 목사입니다. “김대중, 김일성 때려잡는 게 기도 제목”이라고 하던 분이지요. 기도원에 우파 인사 모아 놓고 ‘의식화 교육’하는 정치 지향적 목사라 할 수 있습니다. 압권은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정부가 ‘북한 소행’으로 단정하기 이전에 천안함 승조원 중 일부가 좌파라서 자살 폭탄 테러를 벌인 것 아니냐는 무책임한 의혹을 제기했던 점입니다(참고로 이 분의 매형은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입니다). 이런 몰지각한 어른들을 꾸짖어야 할 청년들은 소녀시대, 손담비 노래를 거꾸로 돌려 들으며 “음란의 영이 지배하고 있다”며 한술 더 뜨는 형국입니다. 지난가을 순복음강남교회에서 있었던 일화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강남의 탐욕과 교회의 몰지각이 만난 꼴입니다. 둘은 죽이 잘 맞습니다. 상당수 강남 교인은 새벽부터 교회에 나가 “복 주옵소서. 나만. 내 식구만. 우리 가문만” 이랬을 것입니다. 이들은 전대미문의 목회직 세습을 옹호했고, 교회의 무리한 대형화를 부추겼고, 그 과정에서 교회 안을 ‘죄인들의 공동체’가 아닌 상류층의 ‘이너서클 그룹’으로 만들었습니다. 강남 지역 교회의 문제점에 따른 책임을 목사 일개인에게만 몰아 버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2007년 7월 한국교회 대부흥 기념대회에서 설교를 맡은 고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원로)는 “이놈이 죄인”이라며 가슴을 쳤습니다. 설교할 때 죄, 회개, 순종 등의 부담스런 단어를 피했다고요. 또 단것은 먹이고 쓴 것은 먹이지 않으려는 나쁜 설교자가 됐다고요. 비교적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옥한흠 목사의 사랑의교회조차 이런 ‘강남스러움’과 타협했다는 통회(痛悔)는 ‘강남신앙’의 폐단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강남의 교회에서 ‘회개’에 관한 설교를 하면 그 주간 헌금이 매우 적게 걷히고, 반대로 ‘복 받을 것이다’ 이런 설교를 하면 헌금 주머니가 넘쳐났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강남신앙’의 소유자가 대통령이 된 세상입니다. 소통 부재, 부정부패, 민주주의 압살, 서민 경제 추락, 환경 파괴, 남북관계 파탄. 어찌 믿는 이의 시대에 이런 말이 나올까요. 탐욕과 신앙이 만나 몰염치라는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한 탓일 겁니다.

‘강남신앙’은 ‘성공 목회’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빠르게 전이되고 있습니다. ‘사람 수가 많으면 장땡’이라는 무비판적 수용은 목사는 물론, 개인까지 병들게 합니다. 이를 추종하지 않는 지성 어린 ‘반(反)강남신앙’의 출현을 기대합니다.

/ 월간 복음과상황 2011년 7월호 기고문

/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