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로 인해 현명한 사고가 마비돼선 안 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의 호소다.

최악의 테러 참사를 맞은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시민의 분위기도 이랬다. 인구 60만 도시에는 20만여명의 시민들이 저마다 장미 꽃을 들고 모여들었다. 극단주의자의 연쇄 총격난사로 희생된 76명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장미행진'으로 명명됐던 이 행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안전을 위해 행진 대신 추모집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들 입에서는 사랑과 관용(톨레랑스)의 말이 나왔다.

스톨텐베르그 총리의 말은 울림이 컸다. "악이 사람 개인을 죽일 순 있어도, 노르웨이라는 공동체 전체를 죽일 순 없다." 행사가 끝날 무렵 한 가수는 노르웨이가 나치의 점령 아래 있을 때 불렸던 반나치 투쟁가 '젊은이를 위하여'를 불렀다. 집회 뒤 거리는 시민들이 내려놓은 장미꽃으로 가득 찼다. AFP 통신은 "사람들은 슬픔 속에 하나가 됐지만 범인을 향한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고 타전했다.

미국과의 차이가 크다. 10년 전 9·11 테러 직후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이것은 미국만의 싸움이 아니라 세계의, 문명 전체의 싸움이다"라며 보복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토안보부를 창설하고 애국법을 제정했다. 테러리스트 색출을 빌미로 통신감시를 강화,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기도 했다. 이것은 또한 20만에 이르는 사망 군인·민간인을 양산한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이어졌다.

노르웨이는 어떤 나라일까. 남한의 3배가 넘는 면적이지만, 인구는 490만이다. 대구와 인천 인구를 합한 정도다. 그러나 세계 7위의 원유수출국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만4000달러로 세계2위, 삶의 질과 복지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진보와 보수는 만인이 합의한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지를 놓고 토론하고, 이념 논쟁은 1970년대 이후 이민자 수용과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 파병 때에나 벌어지는 수준이었다고 그는 전한다. 구성원 간 평등의식은 강하다. 길을 가다 총리를 만난 시민이 존칭 없이 이름만 불러 인사할 정도다. 유력 정치인들도 수행원 없이 길가를 활보하는 정도다.

19세기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노르웨이. 그러나 1814년 덴마크령이던 그 때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며 귀족제를 금지하는 진보적 헌법을 제정했다. 이것이 가능한 배경으로 스타인 링겐 옥스퍼드대 사회학과 교수는 토양이 비옥한 서유럽은 봉건제가 발달해 지배-피지배 계급이 분화한 반면, 노르웨이는 토양이 척박한 나머지 누구도 큰 부를 축적하지 못한 점을 들었다. ‘다같이 못 사는 나라’인지라 지배 피지배계급의 분화가 무의미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공동체주의와 평등주의가 뿌리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번 참극으로 노르웨이는 이완돼가던 관용의 기치를 다시 돋우게 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극단주의가 가져올 비극의 결말을 절실히 체험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