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문 자리가 아름다운 사람 자전거를 즐겨 타는 저는 가능하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려 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자리에서 자전거 교통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을 했었지만 목사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는 너무 경망스러워 보인다는 반응이었고 또 조금은 위험하기도 해서 별 주목을 못 끌었는데 요즘 차츰 자전거문화가 만들어져 가는 것 같아서 이젠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것이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면 바람도 쐬고 운동도 할 겸 한강공원을 한 바퀴씩 돌고 집으로 가곤 합니다. 한강공원은 정말 좋은 시민의 휴식공간입니다. 가족이나 연인들 또는 친지나 그룹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모이고, 놀고, 운동하고, 쉬는 공간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특권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민들의 이런 즐거움을 반감시키고 우리 서울 시민들의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맑고 상쾌한 아침 기분을 망가뜨리는 주범이 있습니다. 바로 밤새워 놀고 간 자리에 즐비하게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입니다. 우린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환경운동 캠페인을 압니다만 정말 지난 밤 어떤 사람이 이 자리에 머물다 갔을 지를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들이 머물다가 간 자리에 남아 있는 물건들입니다. 그 자리에 버려져 있는 술병들을 보면서 지난 밤 그 자리에 술꾼들이 머물다간 것을 짐작하게 되고 흩어져 있는 담배꽁초나 버려진 빈 담뱃갑들을 보면서 골초들이 거기 머물면서 독한 니코틴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다 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밤 그 자리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머물다가 갔는지 추하고 부도덕한 사람들이 머물다가 갔는지 그들이 남긴 물건들을 보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흔적과 그들의 인격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남긴 언행은 그들의 행위이기 전에 그들의 인격입니다. 술을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단지 그런 기호(嗜好)를 가진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인간성 자체가 좀 지저분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에 갈 때마다 일본의 그 정결하고 깨끗한 거리에도 담배꽁초는 늘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담배피우는 사람은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이나 다 지저분한 인격의 소유자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건 하룻밤 머물고 간 자리 뿐 아니고 우리의 인생의 자리도 그렇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그토록 머리를 싸매고 올라가 앉고 싶어 하는 직책이나 직분의 자리도 그렇습니다. 그의 임기가 끝나고 그 자리를 떠난 뒤에 그 자리에 무슨 흔적이 남아 있는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보여 줍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은 사람의 삶에도 적용되는 명언입니다. 대통령을 하고도 추한 역사의 흔적은 남긴 사람이 있고 이름 없는 필부(匹夫)로 살아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묵상하는 구약성경 열왕기서의 왕들의 이야기에서 “역대지략에 다 기록이 되어 있지 않느냐”라는 기록을 읽으면서 늘 정신이 반짝 들곤 합니다. 그 왕에 대하여 옳고 그름에 대하여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역대지략에 다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적비를 세우고 어떤 감언이설로 사실을 호도한다고 해도 정확한 흔적이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 무슨 직분이나 직책을 차지했었는가?’보다는 그 자리에서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무슨 일을 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알량한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데 급급하다가, 자신의 감정이나 왜곡된 가치로 완고해진 자기 생각의 비석을 세우다가 부끄러운 흔적을 남기고 내려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든 부끄러운 자리일 뿐입니다. 물론 우리가 언제나 모두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잘 정리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구 더럽히고, 오염시키고, 배설해 놓고, 정리도 않고 그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흔적까지는 남기지 못해도 최소한 추한 흔척이라도 치우고 떠나야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머문 자리에 무엇이 남아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양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