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명절이 다가옵니다. 추석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명절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기원은 먼 옛날 고대사회로부터 존재했던 달에 대한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가 서산에 지면 칠흑같이 어둔 밤이 찾아오던 시절에 달은 고마운 존재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어둔 밤에는 사나운 맹수가 다가와도 알 수 없고, 적이 쳐들어와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에게 어둔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달이 휘영청 떠서 어둔 밤을 밝혀 주니 달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겠습니까?

달의 고마움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고마운 것은 농사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은 달을 보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달의 모양을 따라 씨 뿌릴 때를 알 수 있었고, 추수 때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달은 어둔 밤을 밝혀 주고, 농사를 가능케 했습니다. 이런 달의 고마움을 마음에 간직하고 고대인들은 한 해의 첫 열매를 거두는 음력 8월 15일 달 밝은 밤에 모여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 날을 한가위로 불렀습니다.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가위는 ‘8월의 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때가 되면 달이 연중 가장 크고 밝은 때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밝은 보름달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면서 먹고 마시고 춤추었던 것입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한가위의 기원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왕이 6부를 정하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두 패로 가른 뒤, 편을 짜서 7월 16일부터 날마다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서 지는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를 가배(嘉俳)라 한다”고 하였고, 또 “이때 진 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라 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후세 사람이 그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의 유래와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추석명절을 지켰던 목적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의 신께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곡백과를 주신 하늘의 신에게 감사하고 다음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아 하늘의 신께 감사했습니다. 송편을 반달처럼 만드는 것도 바로 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습니다.

둘째는 한 해 동안 함께 농사지은 이웃과 기쁨을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농사지을 때에 절대 개별적으로 농사짓지 않았습니다. 서로 힘을 합해 도우면서 농사지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집 논에 모를 심으면, 내일은 이웃 집 순이네 논에 모를 심었습니다. 추수 때도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한 집 한 집 추수했습니다. 이것을 ‘두레’라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두레공동체였습니다. 이렇게 힘을 합해 농사를 짓고 수확한 다음 함께 풍년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남자들은 함께 모여 농악을 즐겼고, 씨름을 하면서 기쁨을 나눴습니다. 부녀자들은 강강술래, 어린이들은 원놀이, 가마싸움 등의 놀이를 하면서 즐겼습니다. 추석놀이의 특징은 공동체놀이라는 것입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전부가 공동체 놀이입니다. 이 놀이문화만 봐도 우리 민족이 공동체의 삶을 추구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추석 명절을 지켰던 근본 목적은, 풍년을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과 그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라.’는 기독교 신앙이 전하는 가르침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추석명절은 애석하게도 하늘의 신께 감사하며 함께 기쁨을 나누는 아름다운 정신을 잊어버리고, 풍성하게 수확한 모든 식물을 조상들이 주었다고 믿고 조상에게 제사하는 날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조율시이(棗栗枾梨), 홍동백서(紅東白西), 좌포우혜(左脯右醯),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건좌습우(乾左濕右), 접동잔서(接東盞西), 좌반우갱(左飯右羹), 남좌여우(男左女右) 등 조상들에게 바치는 제사상을 차릴 때, 이렇게 복잡한 원칙에 따라 온갖 정성을 들여 차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이렇게 변질되어 버린 추석명절의 정신을 다시 회복해서, 참으로 우리에게 복 내려 주시는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헌신하는 절기로 승화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광양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