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여권 후보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우선 한나라당 후보로 나경원 최고위원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상대를 압도하는 형국은 아니나 나경원 최고위원은 여권 내 서울시장 후보들 가운데 야권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나 박영선 민주당 의원과 맞붙어 승부를 겨뤄볼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김충환 의원 같은 다른 예비주자들이 있긴 하지만 여론지지율에서 차이가 크다. ‘나경원 대세론’를 뒤집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당 일각에선 나 최고위원에 대한 ‘추대’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다.

나경원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후보로 정해지더라도 보수진영 시민후보를 자처한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의 후보 단일화라는 과제가 남는다. 시간이 많지 않은데다가 이석연 전 처장은 마음이 상해했다. ‘시정잡배’까지 거론하면서 한나라당을 비판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석연 전 처장은 9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시정잡배도 이런 짓은 안 한다”며 “‘마이 웨이’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밝힌 것이다. 사실 이석연 전 처장을 영입하기 위해 한나라당 지도부가 애썼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매달리는 형국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이석연 전 처장을 외면하는 이유는 ‘여론조사 지지율’ 때문이다. 나경원 최고위원이 상승세인 반면에 이석연 전 처장의 지지율은 상당히 낮게 나왔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야권 주자로 급부상하는 시민단체 출신 박원순 변호사의 맞상대로 같은 시민단체 출신이고 행정수도 이전 헌법소원 당시 노무현 정부에 일격을 가해서 서울의 기득권을 지킨 인물인 이석연 전 처장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여론조사 지지율이 상당히 낮았다는 점에서 당지도부의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석연 전 처장은 “시장 후보로 거론된 지 불과 이틀이 지났는데 이(여론조사 지지율) 결과를 가지고 나를 재단해 버릴 카드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계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며 “한나라당 내부사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영입대상으로 거론하다가 여론조사를 가지고 당내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공당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석연 전 처장이 무리한 요구를 한 측면도 있다. 이석연 전 처장은 자신을 범여권 후보로 추대하라는 식이었다. 우선 당에 입당해 경선을 치러주기를 바랐던 한나라당으로서는 황당한 요구다. 한겨레 9월 17일자를 보면 서울지역 한 초선 의원은 “이석연이란 사람을 아는 시민들이 얼마나 되느냐. 이석연 전 처장은 입당하지도 않고 추대해달라는 것 같은데 그야말로 과대망상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석연 전 처장 영입에 나선 홍준표 대표에 대해 한 초선의원은 “지도부가 놀지는 않았다고 생색을 내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며 “노력은 가상하지만 억지 흥행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전원책 변호사를 미는 보수진영도 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멸공산악대 등 극우 단체들이 전원책 변호사를 '범보수 후보'로 추대하며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출마에 반대했다. '보수 기독교 정당', '조갑제 신당'의 창당 움직임 등과 함께 보수 진영 내 분열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어버이연합 등 33개 보수단체는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수의 아이콘 전원책 변호사를 서울시장 재보선 '필승 범 보수 후보'로 추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 정통 보수단체는 1000만 서울시민들을 책임질 서울시장 자리를 친북좌파 세력이 지지하는 박원순에게 빼앗길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단호한 결단을 내리기로 결정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처럼 극우 단체들이 이석연 전 처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 전 처장이 '나는 보수인사가 아니다'고 밝힌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보수 진영 대표로 내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박세일 선진통일연합 상임의장을 대표로 한 200여 명의 보수 단체 대표자들은 이 전 처장을 범보수 시민후보로 추대키로 했다. 또 서경석 기독사회책임 상임대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김종일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공동대표, 이명희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 이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유석춘 교수, 인명진 목사, 김진홍 목사,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이다.

여권이 갈라지게 된 원인은 이석연 전 처장의 과도한 몸값 요구, 한나라당의 원칙과 기준 없는 후보 영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에 있다. 결국 한나라당은 주말이 지나 '이석연 카드'를 사실상 폐기했다.

한나라당 김정권 사무총장이 "서울시장 후보와 관련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한나라당은 여론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당내에서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석연 전 처장이 나경원 최고위원을 훨씬 밑도는 지지율을 보이자, 그의 영입을 위해 애써왔던 지도부가 태도를 바꿨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김 사무총장은 이런 비유를 했다. "바람개비를 든 아이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앞으로 뛴다"며 이석연 전 처장의 입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왔다갔다’ 행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때 김황식 국무총리를 차출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리 선거가 급하다고 해도 멀쩡하게 국무총리로 일하는 사람을 뽑아 아무 데나 끼워 넣겠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을 누가 납득하겠는가. 그 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떠올랐다. 최근 들어선 그나마도 아니고 ‘돌고 돌아 나경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 한나라당 소속 시장이 그만둬서 생긴 재보선에 왜 한나라당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 정립도 안 된다. 후보 논의에 앞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초래한 잘못부터 철저하게 반성하는 게 옳았다. 오세훈 전임 시장은 막무가내로 주민투표를 밀어붙였고 거기에 한나라당이 편승했다가 시민들한테서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주민트표로 인해 180억의 생돈이 들어갔고 이번에도 300억이 또 들어간다. 이래저래 민폐다. 한나라당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는 아니더라도 선거에 대한 의미 규정조차 없다. 있다면, 홍준표 대표가 주민투표 무산 직후 “사실상의 승리”라고 얼버무렸을 뿐, 투표 결과를 공식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10·26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주민투표에 참여한 25.7%의 의미가 소중하다며 이른바 복지 포퓰리즘과의 ‘성스러운’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겠다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당권을 사실상 장악한 박근혜 전 대표조차 복지 지출에 방점을 두고 있는 마당에서 당론 통일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10월 8일쯤 복지정책 TF가 시안을 발표하는 대로 당론을 모아보겠다고는 한다. 하지만 올바른 순서는 복지정책 관련 당론을 먼저 정리하고 그에 맞는 후보를 선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