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31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있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철회 등을 요구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 ⓒ진보신당

슬기롭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악하기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리석지 않겠지하는 마음은 있었다.

물론 이명박 씨를 보면서 애틋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나름대로 실현시키고 싶을 국가 비전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나라 발전에 일익이 됐으면 하는 충정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말이다. 필자는 그의 진정성까지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국민을 해하려는 사탄이라는 오해 또한 하지 않는다. 그도 뭐 하나 제대로 풀리지 못하는 현실에 답답해 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 직시해야 할 점은 ‘이명박 씨의 한계’이다. 지금 물가는 하늘을 치솟는다. 유가 폭등, 곡물 대란, 원자재 수급 불안에 기인해서 말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권의 귀책도 있다. 성장률 유지에 급급해 무리하게 환율을 올리려다 서민 생활에 치명상을 입힌 과오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떻게 대통령 책임이냐고? 외환위기 때 재정경제부 차관을 지낸 강만수 씨를 기획재정부 장관에 앉힌 사람은 이명박 씨 본인이다. 설령 오늘의 총체적 난국을 불러온 주인공이 이명박 씨가 아니라도, 모름지기 국가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에는 ‘외부의 부정적 변수를 최소화하는 위기 관리 능력’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해법이 없다.

이명박 씨는 취임하기 이전에 ‘경제 살리기’를 공언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방안을 보면 우리 사회 상위 10% 부자들에게 집중된 부의 편중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 분명한 것들이다. 사실 외환위기 전에는 부자가 잘 먹으면 주워 먹든 나눠먹든 간에 서민도 잘 먹는 그런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부자가 잘 살면 서민이 더욱 어려워지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부자들이 챙긴 돈을 안 풀어서 그런 것이다. 그는 'CEO 대통령‘을 표방했다. 그러나 그가 CEO하던 때는 외환위기 훨씬 이전이다. 그의 경영방식은 그래서 낡은 레코드판의 노래같이 잡티와 구태가 절절하다.

구태는 ‘대운하 건설 계획’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국토를 공사판으로, 백두대간의 흉부를 뚫는 거대 역사(役事)라면 건설 경기가 부양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게다가 고용이 창출될 것이기에, 경제 성장에 커다란 진전이 있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비용 손실, 환경 파괴, 문화재 훼손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게다가 경기 부양과 고용 창출 효과는 그때뿐이다. 지금이 삽 퍼서 밥 짓는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의 구태는 결국 ‘단순한 사고’에서 비롯된다.

쇠고기 시장에 대한 ‘무제한 개방’은 이명박 씨의 단순성을 웅변하는 부분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해 협상을 엉망으로 하고 시장을 다 열어줬다”는 지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본인도 ‘국민의 건강권’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했지만, 행동은 정 반대로 한 것이다. 국민들이 격분했다. 하지만 “안 사먹으면 그만 아니냐”라는 투로 나온다. 반발이 거세지니까 그때 가서는 “(저희가) 홍보를 잘 못한 것 같습니다”라는 식으로 해명한다.

어디 이것뿐인가. △ 대북강경정책을 시도하다가 주워 담는 작태를 연출하는가 하면, △ KBS를 비롯한 주요 국영 및 공영방송 사장에 자신의 측근을 앉히려 하는 점, △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 또 금산법의 완화를 통해 재벌기업의 문어발식 지배를 가능케 한 점, △ 초중고등학교별 학력 격차를 공개함으로써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학력 서열화를 조장한 점, △ 공기업의 무리한 민영화를 추진함으로써 국가의 공적 기능마저 기업의 시장 논리에 맡기는 우를 범한 점, △ 뉴타운 건설 논란을 야기함으로써 집 없는 서민의 설움을 가중시킨 점, △ ‘떼법 금지’, ‘불법시위 근절’을 명목으로 우리 사회 힘없는 소수의 비명조차 손으로 틀어막는 반민주적 행태를 보인 점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100일이 대단히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게끔 했다. 이는 그가 ‘국가의 공공적 기능’ 즉 정부가 시장과 경쟁의 원리에 의해 낙오된 시민들을 보듬고 끌어안는 역할을 전혀 염두에 않았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이는 그가 대통령 이전에 신앙인으로서 건강한 양식을 가졌는지를 의심케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 달 내내 이어져온 ‘5월 항쟁’은 5월 31일 밤 성난 국민에게 물대포를 쏘는 등 공권력의 횡포가 발산됨으로써 ‘6월 항쟁’으로 이어지게 됐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수십만의 군중들이 모여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상황에서조차 “촛불을 공짜로 나눠준 사람이 누구냐”며 황당한 질책을 쏟아낸 이명박 씨. 그는 이 말 속에 이런 결론을 담았다. ‘나는 대통령감이 아니다’라고. 그래. 사실 ‘대통령 감’이 아니라도 ‘감’이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라도 한다면 국민들이 좀 참으며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나는 훌륭한 대통령감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뭘 모른다”는 완고한 자세를 유지하며, 살수포의 조준을, 백발의 어르신, 미니스커트 입은 여성, 정장 차림의 직장인,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온 엄마, 교복 입고 나온 ‘초중딩’들에게까지 계속 겨눈다면, 그에게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는 ‘하야’뿐이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씨에게 마지막으로 충고한다. 지금은 정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이다. 신뢰 회복이 없는 그 어떤 수습책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경질한다고? ‘경질 논의’가 나올 시점부터 나오는 지적을 들어봤는가. ‘시키는 대로 한 게 무슨 죄냐’라는. 스스로 조장한 ‘이명박 대 국민’의 대결구도부터 해체해야 한다. 그러려면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말대로 “국민에게 져야” 한다. 미국에게 점수 잃어도 국민의 요구가 그렇다면 쇠고기 수입 조건에 대해 재협상해야 하고, 기만적인 대운하 물밑추진, 방송 장악 등 독재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언론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뻔 한 정답을 두고 우회로를 찾아봐야, 길은 나오지 않는다. 이도저도 싫다며 공안정국 조장하려는가. 한 누리꾼의 댓글로 결론을 대신할까 한다.

“전 세계 어느 국가도 대한민국처럼 부셔버려야 할 적이 선명해지고 구체화되면 앞 뒤 가리지 않고 뭉치는 국민들도 없다. 이명박, 너는 그걸 간과했다."

/ 시사평론가, CBS라디오 <시사자키 주말> 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