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을 붙잡고, 가려는 세월을 아쉬움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또 한해가 바뀌면 죄인으로 새해를 맞이할 것 같아 두렵기만 합니다. 연초에 당신께 맹세하고 서원하였던 그 많은 언어들이 실체가 되지 못하고 허공에 떠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 무슨 면목으로 새해를 맞아 당신 앞에 결단하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작열하는 태양 앞에 가뭄으로 대지가 메말라 있듯이, 그 옛날 엘리야가 보았던 변화의 작은 구름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아 타들어가는 불쌍한 마음이 어찌 해갈(解渴)의 비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 당신밖에는 구원의 길이 없기에, 이제 다시 기도합니다. 비를 주소서! 변화의 작은 징조라도 보여주소서. 이 죄인을 살리시고 변화시키시고 은혜를 주셔서,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한 손바닥만 한 구름이 되게 하소서. 작은 구름들이 모여 큰 구름이 되게 하시고, 쓰러져 죽어가는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큰 생명의 비로 쏟아지게 하소서. 아래로, 아래로, 이 한 몸 던져 세상을 살리는 생명의 비로 곤두박질하게 하소서.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도는 목소리가 죽게 하시고, 고개도 숙여지게 하소서. 혈기도 죽게 하시고, 명예를 탐하던 마음이 죽게 하시고, 거짓을 밥 먹듯 내뱉던 혀가 죽게 하소서. 비를 위해 머리를 무릎에 처박았던 엘리야처럼 무릎이 꿇어지게 하시고 교만한 머리가 땅을 향하게 하소서.

교회와 민족을 질타하는 예언자로 자처하며 독설을 내뿜고 혈기 등등하여 의인의 높은 자리에서 한국교회의 죄를 책망하던 거짓 선지자들이 죽게 하소서. 위선의 상좌에서 내려와 겸손을 허리에 동이고 교회와 민족을 살리게 하소서. 명예와 재물과 정치적 이득을 모두 챙기면서 한국교회의 구세주로 자처하는 거짓그리스도들이 죽게 하소서. 당신을 닮아 빈손으로 섬겨 교회와 민족 앞에 헌신하게 하소서.

한 해가 저물어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세월을 붙잡는다고 멈추기야 하겠습니까? 오히려 가는 세월 앞에 스스로를 멈추고 반성과 회개와 눈물을 통하여 내려감을 배우게 하소서. 높은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사 끝내 죽음으로 세상을 살리신 생명의 주님을 닮게 하소서. 당신의 자취를 본받아 쏟아져 내리게 하시고, 끝내 머리를 박고 온 몸을 불살라 메마른 대지에 생명을 주는 하나의 빗방울로 살아지게 하소서.

/서울장신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