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이 조금 일찍 끝나서 당회실로 올라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방의 책상 위에 난초만 조용히 지키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포항에서 올라오신 어느 집사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귀한 마음이 감사해서 정성껏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처음 받았을 때에 다소곳하게 피어있던 꽃은 지고 호리호리한 잎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은 떨어지고 없는데 자꾸만 무성한 잎들에게 눈이 갑니다. 보면 볼수록 그 잎들이 예쁘고 싱그럽고 날렵하고 깨끗하고......
마치 꿀을 발라 놓은 듯 눈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아, 이래서 선비들이 난초를 사랑하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곶은 대나무, 겨울에 피는 매화, 향기와 빛깔이 가득한 국화는 짐작할 수 있었지만 잡초(?)같은 난초를 왜 그렇게들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작은 난초에도 하나님의 손길과 마음이 가득합니다. 난초 한포기를 통해 마음에 작은 여유를 갖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들에 핀 백합화도 돌보신다고 하신 하나님, 난초 보다 백합화보다 귀한 저희들을 더욱 귀히 여기시며 돌보시는 줄 믿습니다. 봄을 맞아 이곳저곳에 잔치를 벌인 꽃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이 새록새록 쌓여가기를 축복합니다.


우연히 발견한 난초에 관한 詩입니다.


난초(蘭草) / 정지용

난초잎은 차라리 수묵색.
난초잎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잎은 한밤에 여느 다문 입술이 있다.
난초잎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눕다.
난초잎은 드러난 팔굽이를 어쩌지 못한다.
난초잎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잎은 칩다.

/홍익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