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총선에서 아들이 낙선한 후 우리 가족들은 맨붕 상태에 빠졌다. 특히 당사자인 용민의 맨붕 상태는 심각했다. 몇 군데 방송국의 일과 대학에서의 강의 등 모든 일을 사임한 상태인 데다 보수측 신문과 방송에 의한 악의적 공작에 해 실추된 이미지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에 더했다. 다행히 방송과 딴지일보 제작을 위해 대학로에 새롭게 마련한 100여평의 사무실과 까페에서 일하게 됨으로 맨붕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우리 부부도 지난 석 달 동안 심각한 맨붕 상태에 빠져 있었다. 목회 40년 동안도 이런 상태를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1991년 교회 화재 때나 영락교회 수습전권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엄청난 시련을 겪었으나 어쩔 수 없이 목회 일에 매이다 보니 심한 허탈감에 빠질 겨를이 없이 지나간 탓인지 모른다. 이번 경우에는 아들 용민이 한국 보수층은 물론이고 한국교회로부터도 패륜아, 반기독교 인물처럼 취급받음으로 부모로서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좌절을 을 겪어야 했다.

맨붕이 가져온 현상은,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떠한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의욕상실 상태가 되는 것이다. 걸려오는 전화도 받고 싶지 않고 어느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는 글 쓰는 것조차도 너무나 귀찮았다. 소리지에도 다른 매체에서 거의 퍼다 메꾸고 있었다. 그래도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세 달이 되어 가니 조금씩 예전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간다. 여전히 의식의 밑바닥은 맨붕의 찌꺼기들이 남아서 괴롭히고 있지만 말이다.

물론, 그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하나님만이 형편없이 실추된 우리 부부와 아들 명예를 회복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라면서 집중적으로 간구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밀려오는 좌절감은 우리를 다시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게 만들고는 했다. 그러한 맨붕 상태에 빠졌던 석 달 동안 우리 부부의 소일거리는 여기 저기 쏘다니는 일과 영화 관람이었다. 우리 부부 간에 가장 잘 맞는 취미는 여행과 영화 관람이다. 특히 영화 관람은 수준급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 번번이 극장을 찾는 것도 너무 번거롭다. 궁리 끝에 3월 초에 가정용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홈쇼핑을 통해서 구입했다. 과거에는 100만 이상이던 호가하던 것이 요즈음은 60만원 급이다. 거실에 200인치 정도의 스크린을 걸고 5채널을 오디오 기기를 연결하고 관람하니 영화관이 부럽지 않다. 무엇보다도 편리한 것은 영화를 보다가 피곤하면 쉬었다가 시간될 때 다시 보면 된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영화관을 찾아가 오래 기다리는 번거로움이 없어 좋다,

영화 파일은 ‘위디스크(wedisk)'라는 사이트에서 usb에 다운 받으면 된다. 가격도 한편에 140원에서 천원, 최신 영화는 3-4천원이면 된다. 주로 아카데미상이나 칸느상 등을 받은 영화나 역대 랭킹이 높은 영화를 다운 받아 본다.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전쟁과 지진, 연애와 갈등, 음모와 투쟁, 성공과 실패 등 간접 경험을 한다. 엄청난 사건의 영화를 2시간 동안 관람하고 나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아픔 따위는 하찮아 보이게 된다.

때로 테마 여행 파일을 다운 받아 유럽이나 오지(奧地) 같은 곳을 대형 화면을 통해서 관람하면서 간접 경험을 한다. 수백 만 원의 여행비나 엄청난 수고 없이 편안한 소파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며 유명 관광지를 관람하고 있으며, 특별히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까지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석 달 동안 수십 편의 필림을 관람한 것 같다. 소위 유명하다는 영화는 거의 설렵한 셈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맨붕을 극복하면서 길고 긴 사망의 골짜기를 벗어나 푸른 초원과 잔잔한 시냇가을 향해 나가고 있다.

결국 맨붕 극복 여부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데 달린 것 같다. 때로 우리가 난관에 봉착할 때 지레 겁에 질려 야산 같은 문제를 험산(險山) 같은 문제인양 두려움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마음 때문에 아낙 자손에 비해 자기들은 메뚜기만도 못한 존재라고 비관하기를 얼마나 자주했던가? 아니다. 무슨 문제를 만나든지 오직 하나님이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고 담대한 마음으로 문제를 극복한다면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아낙 자손도 자기들의 밥으로 보이게 됨으로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복지를 허락 받는 날을 만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