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선거(투표)를 민주정치의 꽃이라고 말한다. 민주정치는 곧 대의정치(代議政治)이고 국민과 주민을 대표하는 대의원(대표)을 뽑는 제도가 선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방자치제를 시행하면서 선거가 부쩍 많아졌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각급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방의원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정치의 꽃인 선거가 진행 중일 때나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부정선거’파문이다.

지난 4월 11일 실시된 19대 국회의원 선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당이나 야당 가릴 것 없이 부정선거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정선거 유형은 다양하다. 요즘 새롭게 등장한 모바일 투표 조작 같은 신종 부정선거가 등장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품살포에 의한 매표행위다.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는 속담처럼 가장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지방 선거에선 한마을주민 수십 명이 음식접대를 받은 것이 선관위에 적발 되어 음식 값의 50배에 해당하는 수십만 원씩의 벌금을 물게 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부정선거의 뿌리는 멀리 1950년대 자유당 시절 소위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선거가 있을 때면 시골마을마다 공공연히 막걸리 잔치가 벌어지고, 정말 고무신 같은 소소한 물건들이 집집마다 나누어지곤 했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당연한 것처럼 죄의식 없이 행해졌던 부정선거였다. 그러나 요즘은 선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선관위나 수사기관, 사법기관은 물론 민간단체의 감시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후에도 부정사실이 밝혀지면 당선무효처분을 받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새로운 유형의 부정선거가 발생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부정선거가 발붙일 수 없는 날이 가까워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럼 우리 교계의 현실은 어떨까? 지난해 장로교 통합교단 서울노회에서는 한기총 사태를 계기로 교회개혁을 주장하며 총회 총대파송을 거부하여 교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교회개혁의 대상은 근래 사회적인 불신과 ‘안티기독교’ 정서로 드러난 전반적인 교회운영이지만, 중요 이슈 중 하나가 음식접대 등의 향응과 금품살포로 얼룩진 총회장선거제도 개혁이었다.

그 여파로 지난 7월에는 총회규칙부 주관으로 전국 주요도시를 순회하는 ‘총회장선거제도개선안’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개선안으로 토의된 내용은 (1)‘선거에 참여하는 총대를 노회총대 전원으로 확대하는 안’ (2)‘현행제도를 유지하되 부정선거 행위자의 벌칙을 강화하는 안’ (3)부정선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제비뽑기 안’ 등이었다. 공청회에서 토론의 열기는 매우 높았다.  그러나 개선안 자체로 부정선거를 막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먼저 1안으로 제시된 노회원 전체가 총회장선거에 참여토록 하는 안은 ‘오히려 부정선거의 판만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2안의 벌칙 강화안도 교회라는 특수 조직, 더구나 총대구성원인 목사와 장로들 간에 은밀히 이루어지는 부정을 누가 어떻게 적발하여 제제할 수 있을 것인지가 의문으로 제기되었다. 누가 (어떤 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3안에 대한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제비뽑기는 대의정치인 장로교정신에 위배된다는 의견과, 무엇보다 총대들의 투표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안이어서 반발의 수위가 높았다.

올가을 총회에서는 과연 어느 안이 채택될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4~5명의 후보자가 출마하여 진행되고 있는 부총회장 선거양상은 아직까지는 매우 고무적이다. 어느 후보도 금품살포나 음식접대 등 부정선거를 하는 징후가 보이지 않고,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치루겠다는 소신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긍정적인 현상은, 부정선거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서울노회를 중심으로 일부 뜻있는 교계지도자들이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부 교계 정치꾼들의 농단과 이에 야합하는 후보자가 선거분위기를 흐려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부정선거를 적발하여 사회적 문제로 만들려는 수많은 언론과 사회단체들, 그리고 감시의 눈길을 멈추지 않고 있는 교계단체와 뜻있는 성도들. 아무리 은밀하게 행하여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시선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교단에서 불고 있는 개혁바람이 이번 부총회장 선거에서부터 깨끗하고 공명한 선거로 자리 잡아, 사회적인 불신과 조소를 벗어던지고 주님으로부터 잘했다 칭찬받는 교회, 믿지 않는 국민들로부터도 신뢰와 존경받는 기독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홍익교회 장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