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목회자 모임에 가면, 은퇴 후 힘든 날 중의 하나가 주일날이라고 대부분 말하는 것을 발견한다. 사실, 나부터도 주일날 예배 참석하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다. 은퇴 후 처음에는 잘 아는 후배들이 목회하는 교회를 순회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후배들은 거의 하나같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어느 후배는 노골적으로 식사하라면서 봉투까지 주기도 한다. 은퇴 목회자들은 그 봉투를 ‘이제는 그만 오십시오.’라는 의미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러므로 장기 목회하던 원로목사가 본 교회에 매주 참석한다면 담임목사의 입장에서 얼마나 부담이 되겠는가? 더욱 전임자보다 더 교회를 성장시켜야 할 입장에서, 때로는 전임자의 목회의 부족한 면을 지적해야 할 때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전임자가 매주 턱밑에 앉아 설교를 듣고 있다면 은연 중 감시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은퇴한 분들이 본 교회에 매주 출석하겠다는 분들을 적극 만류하는 입장이다.

여하튼 은퇴 목회자들은 본 교회를 떠나 이 교회 저 교회를 순례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출석할 교회가 마땅하지 않다. 작은 교회에 출석하면 열심 있는 안내위원들에게 잡혀서 꼬치꼬치 심문을 받는 것도 너무나 힘들고, 아무도 간섭 안 받기 위해 제법 큰 교회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다 보면 너무나 자기를 과시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자연적으로 이 교회 저 교회를 출석하다 보면 ‘설교 듣기 달인’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40년 목회하면서 ‘설교하기 달인’이 되었다. 주일아침 설교, 수요 밤 설교, 금요 밤 설교, 매일 밤 9시 설교, 심방설교 등, 매주 20편 이상의 설교를 강행하면서도 나름대로 감당해 왔다. 닥치는 대로, 의무적으로 설교하다 보면, ‘내가 설교 자판기가 되었나?’라는 생각으로 자조(自嘲)하던 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은퇴한 후 5년 동안은 설교하는 회수보다 설교듣는 회수가 10배 이상은 많아가다 보니, 자연적으로 ‘설교 듣기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교회에 출석하여 주보를 통해서 본문이나 설교 제목만 보아도 설교 내용이 대충 떠오르게 된다. 더 나가서는 설교를 들으면서 땀과 기도가 배인 설교인지 아닌지를 감지하게 된다. 땀과 기도가 깊이 배인 설교를 듣노라면 비록 어눌한 언변이라도 심령에 깊은 감동이 고이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때로 울리고 웃기는 청산유수의 언변의 설교자라도, 땀과 기도가 배이지 않은 말씀 요리를 내어 놓으면 은근히 짜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본문과는 달리 동떨어진 엉뚱한 내용, 특히 거의 자기 주관에 불과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며 설교할 때는 일어나 나가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느 목회자는 철저히 본문 중심일 뿐 아니라 깊이 분석하면서 설교할 때 순간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떨림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그런 귀한 설교를 듣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40년 동안 나의 목회를 되돌아보면서, 무사히 목회를 마치게 도와주신 하나님께와 30년 이상 설교를 들었던 본 교회 교인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은퇴한 후에 이 교회, 저 교회 순회하면서 설교자를 선별하여 들을 수 있지만, 우리 교우들은 30년 이상이나 나의 설교를 들으면서 얼마나 ‘듣기 달인’이 되었겠는가? 내가 본문만 읽어도 무슨 설교 내용인지 훤히 꿰뚫지 않았을까? 때로는 감동을 받는 때도 있었겠지만, 때로는 노회나 총회 일에 쫓기어 무성의하게 준비한 설교를 들으면서 얼마나 짜증이 일었을까 생각하면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노골적으로 설교를 비판하지 않고 무던히도 참아주면서 장기 목회를 마무리하도록 도와준 교우들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