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3월 3일 열린 제43회 국가조찬기도회. 길자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의 제안으로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모든 참석자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소망교회 시무장로 신분으로 당선됐고, 지금은 일흔이 넘어 은퇴장로가 됐다. 서울시장 시절 개신교 집회에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지만 대선 출마 시 교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도출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정도다.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대선을 반년여 앞둔 2007년 7월 주말예배 설교에서 "친북·반미·좌파 세력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기왕이면 예수님을 잘 믿는 장로가 (대통령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했고,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역시 비슷한 시기에 “올 12월 대선은 무조건 장로 후보를 찍어라. 안 찍는 사람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까지 지지의지를 감추지 않은 것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 그 자신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2008년 4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났을 때에 기도하자고 제언했다. 친미성향 김장환 목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또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김진홍 등 보수 원로 목사들의 의견을 주요하게 참고하는 바람에 ‘주일’ 이후 정책 기조나 인사 내용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한다. 해외 순방 전에는 주요 목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도를 부탁했다고도 한다.

이것도 신앙인으로서 몸에 굳은 습관 때문이겠거니 하며 넘어가자. 심각한 것은 뭐가 뛰니 뭐도 뛰는 격이란 점이다. 권부 주변 인사의 설화를 보자. ‘보온’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명진 스님을 표적 삼아 '좌파 주지' 발언으로 불교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정정길 당시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천주교를 "반대하려고 작정하고 나선 사람들"로 폄하하기도 했다. 타 종교에 대한 배척만이 아니다. "모든 정부부처 복음화가 꿈"(주대준 당시 청와대 경호처 차장)이라느니, "(촛불 든 이들은) 사탄의 무리"(추부길 당시 청와대 홍보비서관, 목사)라느니 하는 발언 등으로 헌법상 정교분리의 원칙을 위험스럽게 범하는 일들이 허다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핵심적 문제는 인사다. 취임 이후 정부 조각이나 청와대 수석 인사에서부터 소망교회 출신 인사를 대거 기용했고,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에 포항을 기독교 도시로 만들겠다며 예산까지 배정하려던 정장식 전 포항시장을 임명한 점이 그렇다.

그러나 김신 대법관 추천이야말로 화룡정점이다. 개신교 장로인 김신 대법관은 교회 관련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를 불러내 함께 기도한 뒤 기도가 끝나자 "아멘"으로 화답한 일 때문에 종교 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개신교 선교를 금지하는 국가에서 발생한 지진을 "신의 경고"라고 표현한 글을 법원 바깥의 매체에 기고한 점도 문제시됐다. 이런 논란에 이명박 대통령이 눈 하나 깜짝 안 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김신 후보를 두고 "법관이 특정 종교의 의식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건 특정 종교에 대한 특별한 우대행위일 뿐만 아니라 재판 중립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국회는 임명동의안을 부결해야 한다. 대법원이 징계 절차를 밟지 않을 경우 탄핵소추도 불사해야 한다"고 불을 지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이 연구원에 대해 곧장 한국교회 대변지요, 대변자라 각각 불리는 국민일보와 한국교회언론회는 표적으로 삼는다. 개신교만 공격하는 이들이라며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아래 친개신교 기류는 통계로 표징된다. 이러다보니 1945년 미군정 시기부터 2011년까지의 공공 분야에서의 종교차별 사례를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산하 종교평화위원회가 측정한 결과, 총 488건 중 이명박 정부가 194건으로 1위를 기록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합쳐서도 114건으로 절반에 그친다. 현 정권에 가장 적대적이며, 개신교에 대한 유독 차별 호소가 빈번했던 불교계의 측정을 못 믿는다면, 이것은 어떨까. 2011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공직자종교차별신고센터 집계 최근 4년 간의 공직자의 종교차별행위 신고 건수는 총 138건으로 나타났다. 이 센터의 설립 배경은 이명박 정부의 종교 차별 시비를 가라앉히기 위한 불교계 달래기 책략에서 나온 것인데, 2012년 9월, 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150건 중 70% 이상이 개신교에 집중됐으며, 이 중 70% 이상을 종교차별 문제가 있다고 판정됐다고 한다. 이에 개신교계는 연구원이 이 센터의 용역을 받는다며 의미를 깎아내릴 뿐이다.

한겨레21과 인터뷰한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공동대표는 "공직자의 공적인 언행이 종교와 분리되지 않으면, 그 특정 종교에 돈·인사·권력·사회 분위기 등 모든 분야에서 혜택을 주는 것과 같다“고 우려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공직사회가 각하 비위 맞추기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개신교 주류 세력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힘’은 여실히 드러난다. 국가조찬기도회 석상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로 하여금 무릎 꿇게 만든 일이던가, 이슬람권 투자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쿠크법을 이슬람에 대한 특혜요, 포교자금 유용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해 결국 관철한 것이다. 타종교 또는 비신자의 정서적 공감대 없이 교회가 반대하면 안 되는 구조, 일종의 권부로의 등극이며 역설적으로 권위의 추락을 부른다.

이제 2012년 대선과 함께 개신교 주류가 권력 핵심으로부터 멀어지면 어떻게 될까. 비신자인 문재인 안철수는 물론, 보수 정서로는 통할 수 있겠으나 신자가 아닌 박근혜가 된들, 이제 교인 대통령을 곁에 둘 수 없게 되는 개신교 주류는 세력과 권위 모두 실추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은 지성세계에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주류 교회는 논외의 대상으로 치부된 지 오래다. 주류 교회가 만든 담론은 개신교의 이익논리라는 낙인부터 박히니 아젠다 세팅이나 이슈 파이팅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안티 사이트, 나꼼수 탓만으로 돌릴 일인가. 여성 교인을 성추행한 목사가 스스로의 잘못을 ‘작은 흠결’로 치부하고, 버젓이 교회 개척해도 치리 한 마디 못하고,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 역시 무시하거나 ‘무지’로 매도하고, 불투명한 회계 관리를 ‘종교 행위’로 덧칠하는 이런 ‘멋대로’ 처신에 어느 누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 한탄은 하나, 결국 방관하는 여타 다른 교회 지도자들은 뭐 곱게 봐주는 줄 아나. ‘기회가 닿으면 똑같이 행동할 우범자’로 비춰질 뿐이다.

통계는 거짓말을 않는다. 개신교 신뢰도가 천주교·불교에 비해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는 조사 결과를 보았는가. (시사IN이 미디어리서치에 의뢰, 10월 6일~7일 양일간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것으로, 임의걸기(RDD) 방식으로 전화면접조사를 했으며,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3.1%p.) 복수로 선택할 수 있다며, 가장 신뢰하는 종교를 묻는 질문에 천주교는 61.8%, 불교는 55.1%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위세로 보더라도 대중에 가장 밀착된 개신교는 28.1%에 불과했다. 매년 낮아지는 양상이다. 질문의 양태를 ‘신뢰하지 않는 종교’로 물었다면 어땠을까. 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개신교의 가감 없는 현실이 이러하다.

이승만 이후 전두환까지 독재정권 시절에 권력에 아부하고 타협하면 됐던 개신교 주류는, 김대중 노무현 등 두 민주정부를 지나며 ‘우호적 권력의 등장만을 기다릴 수 없다’며 이익단체화 또는 정치세력화라는 두 갈래의 대안을 모색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개정사학법 반대 등을 외치며 잦은 장외집회로 세과시를 하는가 하면, 총선 때마다 당을 결성해 의회 진출을 꾀한 점이 그렇다.

그러다가 여의치 않자 2007년 ‘장로 대통령’ 신화 재재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주류 교회를 선거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종교의 장막만 치면 그 안에서 선거법 위반 등의 행위를 해도 모든 것이 용인되는 법망의 허점을 최대한 활용한 끝에 이명박이 대통령 직함을 얻게 됐던 것이다. 당선 직후 ‘한국기독실업인회' 신년하례회에 참석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하나님 뜻을 받들어서 5년 후에 하나님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대통령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단다. 과연. 결국 ‘화려한 날’은 가고 있다. 가는 세월, 하나님의 대리자 행세한 이들도 막을 수가 없는 법이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5년 뒤 이명박과 개신교 주류의 운명이 별 다르지 않을 것”이란 식으로 이야기했다. 뭐 특별한 혜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인의 불편한 시각에 초연한, 염치 따위는 잊은, 그 다르지 않은 양자의 행태를 보면, 누구나 같은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 조금만 관심 있어 권력에 유착한 순간, 맛이 가버렸던 과거 종교의 망조를 상기하는 이들이라면 눈 감고도 전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는 무너진 진보를 일으켰고, 복지, 공동체, 경제민주화, 언론자유화 등의 무형의 가치의 소중함을 깨우쳤다. 아울러 교회개혁까지 한 방에 이룰 듯 하다. 그러나 막연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무너진 토대를 누가 기경(起耕)해 건강한 기독교 신앙의 본을 세울 것인가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던져졌기 때문이다.

/ 월간 '복음과상황' 2012년 12월호 '김용민의 MB뉴스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