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사랑이다. 사랑은 종교의 본질이자 확실한 포교 수단이다. 서로 다른 종교들이 극단적인 갈등을 노출하기도 하지만 사랑을 외면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종교가 보편성을 확보하려면 사랑은 필수다.

기독교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희사(喜捨) – 자카트'는 이슬람 신자들의 의무다. 어려운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줘야 한다. 불교도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 사상을 통해 자비를 실천할 것을 촉구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1462년 이탈리아 페루자에서 소액 대부업을 시작했다. 전당포 사업이라고 불러도 된다. 서민들이 물건을 맡기면 시가의 2/3 범위 안에서 급전을 빌려줬다. 담보대출비율(LTV)이 67%인 소액 대출 상품인 셈이다.

이 전당포사업의 이름은 '몬티 디 피에타(monti di pieta)'. 우리 말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펀드'로 풀이할 수 있다. 교회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지하는 상황에서, 청빈(淸貧)을 핵심 가치로 삼는 프란체스코 수도회까지 전당포 사업에 뛰어든 것은 그만큼 고금리 대출의 폐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경우 전당포업자들이 요구하는 금리는 보통 연 43.5%에 달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60%를 훨씬 웃돌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담보를 제공하면 최고 연 52%, 담보가 없으면 최고 연 120%까지 금리가 치솟았다.

가톨릭은 이런 고리대금업을 근절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게 제 3차 라테란(Lateran) 공의회다. 교황청은 1179년 모든 교구에서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파문을 단행하라고 지시했다. 고리대금업자들은 교회 묘지에 묻히는 게 금지됐고, 성체도 모실 수 없었다.

경제활동을 통제하면 지하경제만 살을 찌우듯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파문은 거래비용만 높였을 뿐이다. 고리대금업자들은 사업 위험 부담이 커지자 이를 그대로 채무자들에게 전가했다.

중세의 주력 산업은 농업이다. 대부분의 서민들이 농업에 종사했다. 모든 것을 인력에 의존하다 보니 생산성도 낮았다. 40%를 웃도는 고금리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결과는 뻔했다. 빚을 갚지 못해 집이나 농지를 빼앗기거나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채무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크로스로드 1회 '채무노예여! 어머니 품으로' 참고)

몬티 디 피에타는 주로 부유층의 기부금을 재원으로 활용했다. 길드나 중산층도 기부에 참여했지만 귀족계급의 기부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피렌체에서는 특정 주일을 '기부금의 날'로 선포해 적극적인 기부를 유도하기도 했다. 미사 시간에 고금리 대금업자들을 규탄하는 한편 가난한 이들을 돕자고 호소하면 신자들이 앞다퉈 기부에 참여했다. 기부로 자금을 조성한 만큼 돈을 다시 돌려줄 필요도 없었다. 더욱이 자금 조달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기 때문에 파격적인 수준의 저금리 대출이 가능했다.

미리 정해진 금리를 적용했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영국에서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보통 기금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는 수준에서 금리를 결정했기 때문에 10%를 웃돌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출 기간은 보통 1년이었고, 금액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몬티 디 피에타가 처음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을 때는 도시주민은 25 리라, 도시로부터 반경 5마일 이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10 리라로 대출금액을 제한했다.

대출 사기를 막기 위해 담보물은 엄격한 심사를 거쳤다. 담보물의 상태를 꼼꼼히 관찰한 후 전문 평가인이 가치를 산정했다. 대출이 결정되면 담보물의 상태, 소유자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적은 증서를 3장 발행했다. 한 장은 담보물 소유자에게 줬고, 또 한 장은 대출 장부에 첨부했다. 나머지 한 장은 담보물에 부착했다. 담보물 소유자가 원리금과 함께 증서를 제시하면 물건을 돌려줬다.

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10여 년 사이에 40개 이상의 몬티 디 피에타가 설립됐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이런 대부업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몬티 디 피에타 사무 공간을 성소로 여겨 춤이나 공연을 금지했다.

서민금융회사인 저축은행의 존립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로 멍이 들대로 든데다 저금리로 여수신 환경이 악화일로다. 상당수 저축은행이 추가로 퇴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서민금융회사들이 무너지면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은 더욱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어차피 은행들은 이런 사람들과 거래하지 않는다. 채무 불이행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은행이 대출을 거부하고, 저축은행의 기능 마비 현상이 지속되면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은 약탈적 고금리 대출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 고금리 대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국민행복기금은 기존 금융채무 불이행자들의 짐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앞으로 발생할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사전에 구제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한국판 ‘몬티 디 피에타’ 설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가 나서 저금리 소액 대출 금융회사를 설립하고, 정부가 세금 등 각종 지원을 제공하면 상당수 한계 신용자들을 구제할 수 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낮은 금리로 급전을 지원해 주는 것도 사랑의 실천이다.

참고문헌
1) Homer, Sydney. 1987. A History of Interest Rates. New Brunswick : Rutgers University Press.
2) Means, Howard. 2001. Money & Power. New York : John Wiley & Sons.
3) 니얼 퍼거슨 지음. 김선영 옮김. 2010. 금융의 지배. 민음사.
4) Monti di Pieta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정문재 / 뉴시스 부국장 겸 지식정보부장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