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걸음 따라

광야에서 자란 우리는, 옛 성지(聖地)를 돌아보며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의 체취를 찾고 싶어 한다. 나는 그 땅을 가본 본적이 없다. 그러나 가보고 싶은 마음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의 내부에 뼈처럼 굳게 응고되는 것을 느낀다. 나는 성급한 나머지 상상만으로 그 땅을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난다. 이미 그 곳에서 살다온 이들의 입장에서는, 때때로 나의 표현 속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들어 날지라도 깊은 이해를 바라고 싶다. 오히려 여러분 이상으로 우리도 그곳을 가고 싶어 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함께 마음과 마음의 포옹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아직도 왜 꾸물거리는가? 어서 열차를 타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반세기의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날을 그리워 하다가 눈을 뜬 채 세상을 떠났는가? 지금 경의선 열차를 타는 우리의 일행 속에 저들의 한(限)들이 함께 동승했음을 감지한다. 드디어 열차는 승리의 팡파르인가? 길게 기적을 울리며 저 위대했던 땅, 그러나 지금은 황폐해진 땅을 향해 떠나기 시작한다. 금촌, 파주를 지나 휴전선을 넘을 때 우리는 심한 흥분에 떨고 말리라. 저 위대했던 성도들이 거닐던 땅，우리의 죄과(罪過)탓에 투옥되고 학살되어 순교한 그 피가 흐르는 땅, 그리고 그들이 걸어간 위대한 걸음을 따라 순례의 길을 떠난다.

모두는 눈물의 벽 앞에
유대인처럼 통곡을 멈추지 못했다.
쓰다듬으며 쓰다듬으며.

무엇을 하는가?
옥문을 열어야 하지 않는가?
매었던 백성들이 풀리어 나오는구나.
창백하고 수척한 몰골들.
민족의 큰 죄과를 당신들이 대신 졌소이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매였던 종들이 돌아오네.”

그들의 증언을 들으며 우리는 또한 목이 메인다.
마지막까지 주(主)를 외치다，순교한 주의 종들의 모습들.
당신들이 십자가 위에서 꿈틀 거리는 동안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제비를 뽑고 있었소이다.

소래 교회를 찾아서

북행 열차로 개성 역에 도착한다. 고려 왕조의 꽃을 피웠던 송악산 기슭의 도시. 정몽주의 절개의 피로 인해 그 기개(氣槪)가 높은 도시. 기적은 다시 울고 황해를 끼고 열차는 달려 해주에 서고，다시 북행하여 사리원에 도착한 후 우리는 열차에서 내려 다시 장연행의 열차로 갈아탄다. 열차는 서쪽으로 힘차게 달리니 재령 읍이 나타난다. 드넓은 재령은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곳，거기 아름다운 예배당이 있었으니 동편의 숲속에 붉은 벽돌로 지은 십자가형의 아담한 예배당，그것은 재령 동부 예배당이었다.

그 예배당은 정찬유 장로가 자기 집을 짓다말고 먼저 하나님께 지어 바치었고 생 다하는 날까지 충성했던 거룩한 터였다. 다시 열차는 신천에서 정거하니 우리의 감회가 다시 새로워진다. 순교자 정일선 목사가 태어난 곳이다. 그는 1940년에 일제의 강압적인 신사참배에 항거하여 은거 생활을 하다가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해방되자, 순교자의 제단인 평양 산정현 교회를 담임하는 중 6․25 사변 통에 괴뢰군에 의해 화형(火刑)을 당한 분이다.

숨차게 달리는 열차의 차창을 통해 멀리 구월산(九月山)이 어렴풋이 보인다. 동의 금강산, 남의 지리산, 북의 묘향산，서의 구월산이랄 정도로 아름답기로 이름난 산. 또한 영산(靈山)으로 일컬어지는 산의 능선을 보며 장연을 거치어 지친 몸으로 송천(松川)에 도착한다. 땀과 먼지로 얼룩진 여행으로 여독이 유난했지만 우리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설립된 소래교회가 있는 곳이다. 1883년에 세워졌다는 교회로 서상륜 서경조 두 형제가 세웠었다.

두 형제는 국경을 넘어 만주로 두루 다니면서 매약 행상을 하였는데 압록강을 건너 영구(營口)로 가던 도중에 외국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고 귀국，소래 교회를 설립한 것이다. 소래는 한국 교회의 발상지요. 또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의 상담소가 되었던 곳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마을 58세대 중 50세대가 믿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성업을 이룩하기 위해 두 형제는 얼마나 고난을 겪었겠는가? 나는「한국 기독교 사진 총감」을 통해 갓을 쓰고 수염을 점잖게 기르고 두루마기를 입은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감격을 금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