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덕목 중 으뜸은 성실함이다. 성실함의 하나는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이다. 목회자는 새벽부터 시간에 매인다. 새벽기도회 인도 때문이다. 초년목회 때 제일 힘든 일은 새벽기도회 인도이다. 지금은 새벽 5시 반에 새벽기도회를 시작하는 교회가 많지만, 예전에는 4시 반에 새벽기도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철칙처럼 여기고 있었다. 특별히 농촌교회에서 초년목회를 시작한 나의 경우에는 새벽기도회 인도하려면 새벽 3시 반쯤부터 일어나 준비해야 했다.

새벽 4시에 새벽종 대신에 ‘차임벨’을 울려야 했기 때문이다. 잠이 많은 젊은 나이에 새벽 3시 반에 깨야 한다는 것은 속된 말로 죽을 맛이었다. 어느 때는 자명종 시계로 시간을 맞춰놓고 잠이 들었으나 무의식적으로 버튼을 눌렀는지, 기다리다 못해 교인 중 하나가 사택으로 달려와 깨워서야 허둥지둥 일어나 예배를 인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날이야 말로 하루 종일 주님이나 교회 앞에 죄인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여하튼 새벽기도회가 목회자들의 기를 꺾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간 지키기 훈련을 시키는 조교 역활을 하고 있었다. 목회자는 시간을 잘 지킬 때에 성실함이 돋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면에 유능할지라도 시간을 제대로 못 지키면 성실함의 점수는 낮아진다. 기다리는 사람에 입장에서는 점점 짜증이 일어나면서 성실성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인과의 약속, 심방이나 상담 약속에 시간을 잘 지키는 성실성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예배 시간은 정확히 지켜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약속인 동시에 교인들과의 약속이다. 예배 인도자나 설교자가 제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결코 성실한 목회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 목회자들은 예배 시간 엄수를 강조할 뿐 아니라 예배 시간에 늦는 것을 하나님 앞에 불경죄를 저지르는 죄인 양 가르쳐왔기 때문에, 만약 목회자 자신이 예배 시간을 지키지 못한다면 위선자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우리 목회자들이 흔히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교통체증 때문이다.

10여 년 전인가, 교회의 어느 기관 헌신예배 때, 역촌동에서 목회하는 동기 목사를 강사로 초청한 적이 있었다. 예배 시작을 하고 한참 후에야 도착했다. 설교 전에 교인들에게 사과 하기를 “승용차를 몰고 역촌동에서 시내를 통해서 오는 도중 무슨 행사 때문인지 얼마나 막히는지, 예배 시간은 다가오고 있는데 차들은 꼼짝하지 않아서 얼마나 안타까운지, 목회하면서 그렇게 주님을 많이 불러본 적은 처음이라."고 해서 온 교인들이 웃은 기억이 있다.

나도 그런 안타까운 경험이 있다. 교회 청년이 주례를 부탁한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 시간 전에 교회를 출발했다. 결혼식장은 여의도에 위치하고 있었다. 부교역자가 운전하는 교회 봉고를 타고서 금호동 두무개길 따라 가고 있는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었다. 1시에 결혼식인데 20분도 안 남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가까스로 한남역으로 방향을 바꾸어 전철로 갈아탔다. 이제 10여분 남았다. 애타게 기다릴 신랑 신부와 가족들, 축하객들을 생각하니 너무나 초조했다.

속으로 안타까이 기도하는 중에 떠오른 지혜가 있었다. 신랑에게 전화하여 사정을 이야기 하고 1시가 되면 주례 사정을 알리고 축하순서부터 진행하라고 일렀다. 용산에서 다시 1호선으로 갈아타고 대방역에서 택시를 타고 식장에 도착하니 마침 축하순서가 끝나고 있었다. 두 개의 축하순서가 있어 다행이었다. 주례를 하면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그 다음부터는 어느 교회 설교 담당이나 결혼식 주례, 장례식 집례를 맡으면 비록 기다리는 시간이 많을지라도 미리 가서 대기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