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 그 능력이 있던 곳

황해도를 찾아온 이상，어찌 안악을 찾지 않으리요. 사리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재령에서 하차，안악을 향해 가는 버스를 탄다. 안악은 옛날로부터 우리 선민사회(先民社會)의문화가 꽃 피웠다는 흔적이 엿 보인다. 구월산을 중심으로 일대에 흩어진 고인돌은 물론 돌칼이나 돌도끼，돌촉 등 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악하면 김구의 체취를 느껴진다. 그는 해주에서 태어났으나 활동의 본거지는 대부분 안악이었다.

이곳에서 김구는 일본 육군 중위 쓰지다(土田)을 만나 단칼에 죽인 것으로 유명하다. 또 김홍량이 설립했던 양산중학을 중심으로 김구，최명식，이상보, 박도병，안명근 등이 민족운동을 전개하다 소위 안악 105인 사건으로 모두 옥고를 치룬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안악을 돌아보면서 가슴이 탁 트이게 하는 의기가 서리어 있음에 뿌듯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또한 안악에서 김익두 목사의 그 헌칠한 모습을 뵈옵는 듯싶다. 안악골의 호랑이던 그가 변하여 이적의 부흥사가 되었다. 김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한다고 하면 수 십리 밖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교회 안은 비좁아 밖에 다락을 매어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설교를 하였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어느 곳에도 그는 찾아갔으며 그 당시 한국 교인이라고 하면 김익두 목사의 힘 있는 설교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공산당의 손에 순교할 때까지 50여 년 동안 국내뿐 아니라 중국 시베리아 일본에까지 그의 발길을 옮겨 776회의 부흥회를 인도하였으며, 150개의 교회를 건축하였고, 2만 8천여회의 설교를 함으로 수많은 심령을 구원하는데 엄청난 성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실로 부흥사중의 부흥사였다. 오늘날 조금만 능력을 받으면 과장해서 자기가 유일한 불의 사자인양 내 노라 하는 모습이나 부흥회전에 흥정부터 앞서는 풍조는 가슴이 아프다. 오늘날 강단에서 그의 능력의 설교를 다시 듣는다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면서 우리는 안악을 떠난다.

평양, 여기가 평양인가?

우리를 실은 열차는 자유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들판을 지나 북으로 달린다. 유명한 정방산(正方山)을 넘으면 황주의 준평원이 전개된다. 자비령(慧悲領) 줄기에 솟은 정방산은 31본산의 하나로 꼽히는 성불사(成佛寺)로 더욱 유명하다. 사과의 고장，우리의 입에는 신물이 돈다. 중화(中和)를 지나 얼마큼 달렸을까? 아, 거기 대동강이 흐르고 있었다. 무수한 월남교인으로 부터 맑기가 그지없다고 들어오던 강，거기에 뿌려진 피가 그 얼마였던가?

대동강 철교를 지나가면서 우리는 기어이 목 메여진다. 저편으로 보이는 인도교는 얼마나 많은 애환이 서린 곳인가? 파괴된 인도교 위로 간신히 가설된 목교(木橋)를 타고 도강하던 피난민들, 겨울 칼바람에 데룽데룽 매달려 강을 건너며 얼마나 절규했던가. 대동강은 알고 있는 것이다. 무수한 피난민들의 삶과 죽음의 순간들에 토했던 신음들을. ‘도로 천리 길’이란 글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당시를 묘사했다.

“어제와 매한가지로 강변에 많은 피난민들로 대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이미 UN군도 퇴각하고 말았으므로 목교(木橋)를 통하여 건너 갈 수 있는 것이다. 군데군데 폭파된 지점에 널판을 건네어 놓고 건너가게 되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왁 밀려 건너가지는 못하게 되었다. 국군 헌병들이 땀을 흘려가며 피난민들로 하여금 열을 짓게 하여 하나씩 하나씩 건너가도록 하게 한다. 어린 아이，늙은이，부인들을 부축하여서 위험한 널판위로 통과하게 한다. 이리하여 피난민들은 무사히 대동강을 건널 수 있었다.”

우리는 대동강의 철교위로 열차를 타고 건너간다. 우리 앞에는 한국 최고(最古)의 도시가 낯선 모습으로 서있다. 대동강이 유려한 금수산을 휘돌아 흐르고，차광산과 서기산을 양쪽에 끼고 천험(天險)의 요해지임을 자랑하듯 평양은 저기 서 있지만, 우리의 가슴은 왜 이리 아픈 것인가? 그러나 곧 우리의 가슴은 부풀어 오른다. 제 1강산의 경승(景勝)으로 이름이 높고，이름도 고운 모란봉，을밀대，청류벽，능라도，양각도，부벽류 등이 대동강을 끼고 절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도시만큼이나 기독교의 문화의 꽃을 피워 위대한 인물을 키워낸 곳, 기독교의 고향 평양의 시가를 보며 아! 우리의 가슴은 왜 이리도 뛰는가? 우리는 이곳에서 며칠 유숙하면서라도 위대한 이들의 걸음을 따라 구석구석을 걸어 보고 싶다. 우선 양각도(兩角島)부터 가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1866년 9월 3일 평양 대동강의 신장포 쑥섬이라는 곳에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온 토마스 목사는 나졸들에 끌려 백사장에 나와서도 계속 복음을 외치고 있었다.

그는 흰옷에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 갓을 쓴 모습이었다. 그는 죽음의 위기 와중에도 만면에 웃는 얼굴로 성경을 전해 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슨 변괴인가. 나졸 중에 하나가 저의 목을 치니 목은 땅에 떨어졌다. 그때 까지도 저는 ‘예수, 예수’ 소리만 외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낮고 천한 곳에 오시어 우리에게 무한한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결국 인간들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잔인을 보였듯이, 멀고먼 땅에서 오직 복음의 은혜를 전하고저 온 백인의 메신저의 목은 쳐 버리다니….

그 결과，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유대인에게 저주가 왔듯이，초기의 선교사나 기독교회 대한 박해에 대해 하늘의 채찍으로 일제의 압정이 온 것이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후에 약 40여 년이 지난 서기 70년에 유대 땅이 로마군에 의해 황무지가 되었듯이, 토마스 목사의 사건 후 약 40년 만에 일제의 군화에 짓밟혀 우리 강토가 황폐해 버리었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그러나 순교 후에 저주는 왔으나 기독교의 생명의 축복이 왔듯이 비록 이 민족에 외적으로는 저주가 왔으나 영적으로는 큰 축복이 온 땅에 퍼졌고，평양은 복음의 수도가 되고 있었다. 피는 생명이다. 생명은 성장한다. 평양 속에 그리스도 생명이, 토마스 목사의 저 호소가 누룩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결국 평양은 로마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1933년 9월 14일 승리의 기념일까? 그를 죽인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 토마스 기념 예배당이 대동강 기슭에 세워진 것이다.

오늘 그 터는 어찌되었을까? 우리는 그 거룩한 터에 엎드려 입을 맞추며 눈물로 쓰다듬으리라. 자，이제 모란봉이 어디이냐? 그림으로만 보던 모란봉에 올라서니 절벽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맑은 대동강과 멀리 능라도의 꿈같은 들의 시정(詩情)이 펼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여기 쾌재정(快栽停)에는 일찍이 유명한 웅변이 있었다. 광야의 소리가 있었다. 시대의 여명을 여는 소리가 있었다. 1907년, 조국의 운명이 기우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 당년 30세의 청년 안창호는 비분의 웅변을 터트리고 있었다.

세계 형편과 우리나라의 살길에 대해 열정과 눈물로 호소하는 웅변 속에 위대한 거목(巨木) 남강 이승훈이 새롭게 탄생되고 있었다. 거기에서 저 위대한 민족학교인 오산학교가 태어난 것이다. 말씀의 능력이 이리 큰 것인가? 쾌재정은 이날을 위해 역사 속에 존재해 왔었던가? 아니, 그 어느 날 세계를 향해 복음의 새로운 문을 여는 날，한국의 위대한 모세가 외치는 날을 위해，또한 존재하리라. 우리는 가슴이 뜨거워 옴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제는 장댓재가 어디이냐? 평양시내 중심가 언덕에 한옥(韓屋) 형태에 기역자 교회인 장대현 교회를 우뚝 세우고 평양 시내를 향해 종을 울리며 거기에서 장로교를 시작했다. 마포삼열 목사가 그리도 기도의 눈물과 충성의 땀을 흘리던 곳, 우리는 거기에서 깡패 이기풍에 게 돌을 맞던 성자의 모습을 그리며 감격을 느낀다. 그 교회당에서 길선주는 자랐고 한국 영계의 지주가 되었다. 1907년 성령의 강한불이 길선주의 회개로 부터 시작되었고 그를 통해 전국에 번지어 간 것이다.

길 목사는 매일 새벽 4시 반이면 기도회를 시작함으로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그는 전국교회 부흥회를 위해 1927년 장대현 교회를 사임했고，부흥사의 일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의 전도를 통하여 목사나 장로, 그리고 교사가 된 수만도 무려 800인이 넘는다. 1935년 11월 26일 그는 사경회를 인도하던 중 67세 나이로 소천(召天)할 때 까지 그는 실로 한국교회의 사도로서 예언자로서 살았던 것이다.

장댓재, 이 위대한 터 위에 다시 종을 드높이 달고，공산주의의 마신(魔神)이 들끓던 평양 시내를 향해 다시금 힘차게 종을 울리리라. 눈물로 종 줄을 당기리라. 고성능 스피커를 높이 달고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찬송이 울려 퍼지게 하리라. 1930년대까지 장댓재가 한국교회의 성장 역활을 주도해 왔다면, 1930년대 이후부터는 또 하나의 언덕 한국의 골고다 산정재가 한국교회 시련극복의 역할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그 언덕에 우뚝 선 산정현 교회, 거기에는 주기철 목사가 주역으로 등장한다. 그동안 산정현 교회는 신학적인 교회였다. 강규찬，박형룡，송창근 목사가 시무하는 동안 뜨거움 대신 냉철함이 앞서 있었다. 그러나 신학의 뼈대를 키우고 있었다. 이제 사명의 날개를 펴리라. 1936년 주기철 목사의 부임과 동시，조만식，오윤식，김동원，유계준 장로 등 인물의 단합으로 일제와 싸우기 시작했다. 환영예배 석상에서 이성휘 박사의 환영사는 뜻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마산 문창교회에서 오신 주 목사님을 환영하는 게 아니라，한국 제일의 목사 주기철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주 목사는 49세의 나이로 순교할 때까지 수없는 투옥과 잔인한 고문, 동료 목회자들까지 외면하는 골고다의 고독 속에서 오직 일사각오(一死覺悟)로 싸워갔다. 더 위대한 것은 조만식을 위시한 여섯 장로가 주 목사와 더불어 일사 각오의 신앙으로 뭉치어 나갔으니 이 어찌 위대한 목사，위대한 장로，위대한 교인이 있었던 교회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 터 위에 엎드려 우리는 입을 맞춘다. 우리의 가슴은 거기에서 고난의 가시밭길의 36년사의 아픔을 전달받는다.

위대한 언덕들을 내려오니 평양은 밤이 되고 있었다. 우리는 밤의 거리를 거닌다. 그리고 다시금 뜨거움에 싸인다. 거리거리마다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거리를 싸다니던 권능의 종 최봉석 목사의 소리였다. 새벽 4시 정각. 평양의 새벽 거리는 최 목사의 ‘예수 천당’의 소리로 깨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그를, 모든 교우와 모든 목회자들은 천시(賤視)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예레미야의 모습이었다. 때로 썩은 베띠를 띠고 다니며 멍에를 메고 다니며 외쳤던 선지자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만주 전도 시절에는 기아 속에 쓰러져서 어느 때는 올챙이를, 어느 때는 방금 소가 누운 똥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콩을 먹고 연명했다는 그 모습은 큰 봉급，큰 대우, 큰 지위만 탐내는 오늘 우리 목회자들과 너무나 대조가 된다. 아, 최봉석 목사의 예수 천당의 고함소리와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의 찬송소리가 들리던 평양 거리는 예레미야의 소리가 있던 예루살렘처럼 진정 복이 넘치던 거리가 아니었겠는가?

평양을 떠나기 전 우리는 꼭 방문할 한 장소를 기억한다. 평양 교외의 공동묘지인 돌박산을 찾아 가리라. 주기철 목사，최봉석 목사, 박관준 장로 등 수없는 성도들이 묻힌 묘지에 어찌 꽃이라도 들고 가지 않을 수 있으랴.

아, 위대하도다. 평양이여.
이제 너의 시대는 다가오는 도다.
여기에서 다시금 최후의 시대에
복음의 횃불이
높이 들리어 지리니
세계의 어둠은
이로 인해 밝아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