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40년 동안 힘든 일 가운데 하나는 국가기념일 설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은퇴하기 전 일 년 동안만 강해설교를 했을 뿐, 목회 40년 주일설교는 대부분 제목설교를 해왔다. 그런 때문에 3․1절이나 6․25 사변, 8․15 광복절, 개천절 때나 국가적인 중요한 사건(대선이나 총선, 올림픽이나 월드컵, IMF나 국가비상사태 등) 때는 그런 면에서 대해서 설교를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기념일에 설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본문을 택하는 일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본문과 한국적인 상황과 연계해서 설교하는 일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처음 한 두 해는 그런 대로 설교할 내용들이 많아 원고량을 줄이고 줄이어야 할 정도였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국가기념일이 다가오면 점점 가중되는 부담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무엇보다도 국가기념일에 설교한다는 것이 너무나 부담이 되는 것은 교인들의 정치적인 성향이 다양하다는 데 있다. 최근에 와서는 국민들이 정치적인 성향이 보수와 진보로 팽팽하게 양분되어 있기 때문에 더 어렵다. 목회자가 자기의 정치적인 성향과는 다른 방향에서 설교하면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할 정도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일부 강경파 목회자들 외에는 대부분 국가기념일 설교를 피하려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국가기념일 설교가 가장 힘든 때가 있었다면 군사정권 때일 것이다. 그 때는 조금만 반정부적인 설교를 하면 정보기관에 붙들러 가 곤욕을 당하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그 때에 많은 목회자들이 목까지 차오르는 분노의 메시지를 참아내노라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담대히 외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  때문에 심한 낭패감에 빠지고는 했던 아픔들을 우리 후배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 당시에 했던 나의 국가기념일 설교를 보면 한국사회의 도덕적인 부패와 한국교회 사명과 갱신 쪽에 더 무게를 두었던 것을 볼 수 있다.

한국교회가 바로 서는 길이 한국이 사는 길임을 강조했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에 의해 마침내 군사정권 30년이 종식되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의 날이 왔다. 그러나 그 때도 국가기념일에 설교하기가 힘들었던 것은 동서로 갈라진 지역감정 때문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자 국민들은 김영삼, 김대중 씨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이제는 양 김씨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차례로 정권을 인수함으로 30년 동안 빼앗겼던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워주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양 김씨는 정권욕에 사로잡힌 채 전혀 양보하지 않음으로 군사정권의 일원인 노태우 씨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 때부터 두 진영 간 반목의 골이 깊어진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추종하는 국민들도 양분되는 아픔을 낳게 되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영남과 호남으로 갈라짐으로 남북 양단에 이어 동서로 갈라지는 비극을 민족사(史)에 남기게 된 뿐 아니라 그런 지역 감정이 교회 안까지 비집고 들어와 교우들의 우애에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어느 주일날 지하식당에 갔더니 여기는 영남파들이 모여 김대중 씨를, 저기는 호남파들이 모여 김영삼 씨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중직 가운데 지역감정 때문에 모든 교우들이 보는 앞에서 심한 말다툼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주일 아침 예배 광고 시간에 ‘이제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서로 비판하거나 다투는 일이 생길 경우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교인들 간에 정치적인 발언을 자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강원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만약 영호남 어느 지역이 나의 출생지였다면 그런 광고는 교회를 엄청난 시험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그런 미묘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국가기념일에 설교한다는 것은 살얼음판 위에 선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들을 비판하더라도 철저하게 성경적인 관점에서 했을 뿐 아니라 원고를 몇 번이나 교정한 후 철저히 원고중심으로만 설교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너무나 극심하다. 이런 때에 설교자들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기도와 묵상으로 준비하되 철저히 성경적인 관점에서 해야 할 것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철저히 원고를 작성해서 전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어보니 장로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을 너무나 내세우고 있다. 정치적인 식견이 너무나 저급한 수준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나오고 싶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그런 설교를 한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월간 '목회와 신학'가 2008년도에 목회자 506명을 대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목회자 인식조사'에서 86.5%가 이 대통령의 당선에 개신교가 기여했다고 응답했다. 그 만큼 정권 초기에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이명박 장로에 대해서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 실망을 준 설교는 이명박 정권 말기 때에 한 것이다.

그 당시 이 대통령은 많은 실정(失政)과 친인척, 측근 비리들로 매스컴으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장로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교회의 위상까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저급한 정치적인 식견을 피력하고 있었다는 것은 목회자의 입장에서 너무나 부끄러웠던 것이다. 어찌 그 설교자 뿐이겠는가? 오늘날 적지 않은 저급, 저질의 목회자들이 강단을 어지럽히고 있지 않은가? 한국 강단이 말씀 중심으로 서는 것이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가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