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 바란다.
―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보고 ―

                       유경재(안동교회 원로목사)

갑자기 부탁을 받고 무슨 이야기를 할가 하다가 아무래도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WCC총회가 은혜롭게 끝난 뒤이기에 그 총회를 통해서 우리 한국교회가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기에 전체 분위기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인터넷 뉴스와 WCC 공식 앱 등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서 열심히 총회 진행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우선 이번 총회에서 몇 가지 문서가 채택되거나 발표되었습니다. 첫째가 “일치선언문”으로 ‘창조세계의 일치’, ‘그리스도교의 일치’, ‘인간 공동체의 일치’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런 일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교회는 생명과 정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고 그것을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두 번째 문서는 작년 9월 중앙위원에서 결정한 새로운 선교지침서인 “함께 생명을 향하여:변화하는 지형에서의 선교와 전도”로, 1982년에 승인된 “선교와 전도:에큐메니칼 확언” 이후 30년만에 새롭게 발표된 것입니다. 이 문서는 “삼위일체 하느님, 삼위일체론적 성령론, 생명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신학적인 전거의 틀로 삼았고, 선교의 대상을 인간에서 하느님의 모든 창조세계의 피조물로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입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운동에 세계교회와 협력하고, 북한의 경제 제재에 대한 완화를 요구하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안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총회자료실에 올려진 문서에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작년에 승인한 “교회: 공동의 비전을 향하여”가 있습니다. 이 문서는 “우선 교회의 사명과 일치,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생명 안에 있는 교회의 존재에 대해 다루고, 다음으로 우리가 어떻게 공동체적 친교를 통하여 함께 성장하고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한 존재로 살아가라는 부르심에 응답할수 있는가 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BEM 문서처럼 세계 각교회의 반응들을 2015년 말까지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한국교회 각 교단은 이 문서를 검토하고 공식적인 반응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BEM 문서에 대한 반응의 경우 한국교회에서는 이형기 박사 한 분만 보낸 줄 알고 있습니다.
우선 이런 문서들이 준비되고 발표되기까지는 상당한 연구와 토의를 거쳤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런 문서들에 대한 후속조치가 한국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문서들은 어느 한 교파나 한 나라의 교회협의회가 다룬 것이 아니라 세계교회의 석학들이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결정하였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서이고, 한국교회가 이를 중심으로 계속 논의하고 각 교회 목회에 반영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1982년 신앙과 직제위원회가 채택한 BEM문서가 알려지면서 저는 성찬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이해를 갖게 되었고, 그 후 안동교회 성찬예식문집을 리마예식서에 근거하여 만들어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2002년 9월 총회에서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를 포함하는 헌법을 개정 공포하였습니다. 이 신앙고백서는 바로 세계교회협의회가 그동안 내놓은 문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놀라운 결과물입니다. 이것은 세계교회협의회 문서를 계속 연구한 이형기 박사가 초안을 작성한 것인데, 예장이 보수적인 교단이지만 이런 신앙고백을 보면 세계교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애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이런 문서들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1982년에 승인된 “선교와 전도에 대한 확언”에 대해 저 자신도 잘 몰랐고, 한국교회가 그 문서에 대해서 어떤 연구를 했는지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와 연대하고 같이 논의할 자격을 갖추지 못할 것입니다. WCC를 반대하는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보수쪽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들이 아무 근거가 없는 것임에도 목회자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사실 저 자신도 이 문서들을 읽기만 하는데도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기억에 잘 남지 않습니다. 나이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이런 문서들은 그냥 쉽게 읽어 넘길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선교훈련원을 중심으로 계속 이번에 발표된 문서들에 대한 연구와 우리 나름대로의 정리된 문서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우리 교단 기획국에 알아보니 이 문서를 중심으로 총회차원에서 여러 가지 기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각 교단별로 이런 노력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개혁은 구호나 비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런 신학적인 노력들이 경주될 때 서서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에 이형기 박사가 지난 여름에 펴낸 “세계교회협의회와 신학”이나 마이클 키나몬의 “에큐메니칼 운동”한국어판이 나왔는데, 여기에 WCC 중요한 신학과 문서들이 담겨 있습니다. 은퇴하여 별 볼 일 없는 저도 거액을 주고 이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중요한 문서가 많이 담겨있다는 이형기 박사 꼬임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NCCK의 홈페이지 자료실에는 이번 총회 자료들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곳에 자료가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자료를 찾을 때 제일 먼저 NCC 홈페이지를 볼텐데, 거기 없으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이번 총회를 지켜보면서 한국교회가 각 노회 혹은 연회 그리고 총회의 조직과 회의 진행에 대한 것들을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각종 예배와 성경공부 시간에 대표들이 열심히 참석하고 그 시간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감동하고 감사하는 모습들은 우리에게는 좀 낯선 풍경이 아닐까요?
또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데, 배려와 존중, 경청의 자세 아래 만장일치에 가까운 합의를 이끌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학과 신앙 이념 타종교와의 대화 문제에서는 만장일치에 가까운 ‘합의제’를 적용하여 어느 한쪽의 주장이 쉽게 채택되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가 연구해 보아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총대들의 구성도 보면 여성 50%, 청년 25%, 평신도 50%의 비율을 원칙으로 삼아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번 총회에는 여성 37%, 청년 13%, 평신도 30%라고 합니다.
저는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보면서 받는 느낌이 모든 일에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7년에 한 번씩 갖는 총회도 그렇고, 오늘 합의 안 되면 내일로 넘기며, 어떻게 해서든지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마침내 합의에 이른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중요한 문서들을 발표하여 그 역사를 기록하고 느리지만 아주 확실하게 앞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파와 사람들이 모여 일치를 논의한 기구인 만큼 상당히 어른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총회 때 밖에서는 계속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지만 그들에 대해서도 기독교 안에 다양한 공동체의 일부라고 인정하고 그 시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울라프 총무가 기자회견 때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런 여유와 포용력을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린다면, 한국교회가 에큐메니칼 인재를 많이 양성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를 준비하고 치루면서 많은 사람이 수고를 하였고 그래서 잘 끝났습니다. 역대 어느 총회보다 더 좋은 장소, 잘 훈련된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준비위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런 큰일을 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훈련된 사람들이 부족하였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우리나라 대표로 장상목사님이 아시아 회장이 되시고, 또 배현주 교수가 25명의 실행위원 가운데 포함되었습니다. 한 사람 더 중앙위원으로 들어갔으면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앙위원이 몇 사람 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WCC를 알고 그 신학적 흐름을 이해하며 그를 위해 얼마나 준비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7년에 한 번씩 열리는 총회를 대비하여 미리 훈련을 받은 인재가 준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큐메니칼 저변 확대가 필요합니다. 평소에는 아무 관심 없었는데, 영어를 좀 잘 한다고 갑자기 대표로 내 보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선교훈련원이 이런 일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번 총회 마당워크샵을 했던 오이코스 신학운동이란 모임이 있는데, 신학교수들 중심으로 매년 여름학교를 열고 신학생들을 모아 에큐메니칼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여기를 거친 신학생이 4백명 정도 되고, 금년 여름학교에서는 WCC 모의총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훈련 받은 신학생들이 이번 총회에 자원봉사자로 많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실행위원이 된 배현주 교수도 이 신학운동에 처음부터 참여하여 훈련을 받았고 이번 총회에서 성경연구도 인도하고 또 토의에 좌장도 맡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의 예이지만 이렇게 에큐메니칼 교육을 확대해 나가면 한국교회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 봅니다.
WCC 참여교단들이 자리다툼을 하기 전에 먼저 그 자리에 필요한 인재를 미리 준비시키고 훈련시켜 놓아야 할 것입니다. 교단 신학교가 주동이 되든지 아니면 총회가 주관하든지 장기 계획을 세우고 세계교회에 나가 활약할 많은 일군을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부산에서 열린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그저 한 번 크게 치룬 잔치로 끝나지 않고 반대하는 세력들이 부러워할 만큼 더 풍부하고 더 깊은 신학과 신앙의 유산들을 만들어 내면서 교회가 개혁되고 변화되는 계기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