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근 고개 옆, 한양대학교 부속고등학교 뒤편에 고개 보다 조금 더 높은 언덕이 있습니다. 잡목이 우거졌지만 주로 아카시아 나무가 많았습니다. 봄날에 교회를 오갈 때면 눈이 내린 듯 하얗게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습니다. 사방팔방 멀리까지 아카시아 향기가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습니다. 어릴 때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친구들과 아카시아 꽃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우물우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카시아 잎을 따다가 손가락으로 잎을 튕기며 놀았던 것도 생각납니다. 서울 시내에서 그렇게 아카시아 꽃이 많이 핀 곳은 아마 이곳 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산동네에 살기에, 교통이 불편한 동산 위 교회를 다니기에 우리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자랑거리였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돋아나는 따뜻한 봄이 시작되면 곧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겠지 하는 기다림과 기대감이 가득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많던 아카시아 나무가 모두 싹둑싹둑 잘려버렸습니다. 무슨 이유로, 어떤 목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근처의 아카시아가 모두 잘리고 밑둥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습니다. 갑자기 휑하게 변해버린 언덕에 차가운 겨울바람만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가슴마저 휑하게 구멍이 뚫려 버린 것 같았습니다. 소중한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고, 달콤하고 향기로웠던 추억이 바람결에 사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가장 좋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라고 말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오직 마음의 눈으로 보고 느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과 더불어 살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눈이 닫혀서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자리에 늘 있던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보배로웠는지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늘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깨달아 볼 수 있는 것은 축복이며 감사이며 넉넉한 행복입니다. 습관적으로 혹은 의무감에 늘 반복하는 일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버린 사람들이, 오며가며 만나는 작은 소품 하나하나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그런 것을 볼 수 있도록 마음의 눈을 열어주는 신비한 열쇠가 바로 “감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홍익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