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화 ‘크로싱’은 예상과 달리 아주 잔잔한 영화였습니다. 너무 많이 울면 어떡하지 걱정했던 제가 무색할 정도로 영화는 잔잔했습니다. 물론 몇 번 저를 울먹이는 장면들이 있었지만 제가 감정에 동요되어 큰 슬픔을 느끼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우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 점심식사를 하러 차로 이동하면서 아내에게 영화가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참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주인공 차인표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는 평도 내놓았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많이 슬플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도리어 웹사이트에서 예고편과 뮤직 비디오를 볼 때 더 슬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북한의 현실이 오늘 우리의 현실과 너무 괴리가 커서 그런지도 몰라요…….”

아내의 말을 듣자 저는 곧 그 말이 정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영화 ‘크로싱’을 보면서, 그것이 실패 현실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동화나 만화에 나오는 이상한 나라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울지 않았던 이유도 그것이 오늘날 진짜 북한의 현실이라고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순간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인 ‘소나기’가 생각났습니다.

영화 ‘크로싱’에는 소나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아버지 용수와 아들 준이가 함께 축구하는 장면부터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또 어머니 용화가 죽고 아들 준이가 홀로 남겨졌을 때도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또 중국으로 탈출하려다가 잡혀서 북한 수용소에 여자 친구 미선과 함께 잡혀 갔을 때에도 소나가가 내렸습니다. 또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홀로 남쪽으로 내려오게 된 아버지 용수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창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어김없이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아버지 용수가 아들 준이를 만나러 갔던 몽골에서 시체가 된 아들을 묻고 비행기를 타러 온 공항에서도 어김없이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소나기는 예고 없이 갑자기 내리는 비입니다. 영화에서 ‘소나기’는 하나님의 눈물을 상징합니다. 이것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아들 준이가 중국 국경을 넘어 몽골로 들어가서 길을 잃고 사막에서 잠을 청하면서 죽어갈 때, 준이의 얼굴에 하늘에서 한 방울의 물이 떨어집니다. 그것은 조용히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영화 ‘크로싱’에 나오는 ‘소나기’를 묵상하던 제 마음에 영화 내내 보이지 않던 하나님께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인공 영수가 성경책을 받았을 때도, 한국에 넘어와 탈북자를 돕는 마음씨 좋은 사장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할 때도, 제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소나기’를 묵상하면서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울고 계셨던 것입니다. 때로는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맹렬한 소나기로, 때로는 한 방울의 안타까운 눈물로 울고 계셨던 것입니다.

3.

영화 ‘크로싱’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영화 내내 울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눈물을 묵상하던 저는 그 눈물이 단순히 북한 사람들을 향한 눈물인줄 알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불쌍한 북한 동포들을 향해 울고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소나기’를 계속 묵상하다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북한 동포들만을 위해 울고 계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북한의 현실을 보면서도 마음에 아무런 동요도 느끼지 못하는 강퍅한 남쪽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이었습니다. 그 순간 성경이 하나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5-17절이었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마 11:15~17)

하나님은 북한을 향해 통곡하며 울고 계시는데 같은 민족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습니다.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듣거나 남의 이야기로 들을 뿐입니다. 영화 ‘크로싱’에서 주인공 영수가 아내 용화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술에 만취해서 사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예수는 남조선에만 있습네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북한에는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우리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4.

영화 ‘크로싱’을 보고 온 날 저녁에는 하늘에서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저녁에 잠시 외출할 일이 있어 우산을 들고 밖을 나왔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우산을 들고 걸으면서 다시 하나님의 눈물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북녘 땅을 바라보며 흘리는 눈물을 잊지 말아라. 나의 마음을 품고 북녘 땅을 바라보렴. 나는 지금도 북녘 땅을 바라보며 계속 울고 있단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앞으로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진심으로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25~37절에서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마지막에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 11:36~37)

예수님은 우리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길 바라십니다. 영화 ‘크로싱’을 교인들과 함께 단체로 본 목사님이 계십니다. 목사님은 영화를 보고 나서 고통당하는 북한 동포를 구출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모르지만 정말 한 명이라도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오도록 돕고 싶다고 제게 고백하셨습니다.

우리가 북한 동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 동포를 향한 하나님의 눈물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귀를 기울인다면,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 순간 거절하지 말고, 순종하기로 결심하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눈물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영화 ‘크로싱’을 통해 하나님의 눈물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인 아주 특이한 한 편의 영화를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영화 ‘크로싱’을 만든 김태균 감독님과 주인공 차인표씨, 그 외에 모든 배우와 영화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크로싱’은 참 좋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