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설날 아침, 너무나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시내 모처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장모님이 입원하신 의왕병원에 가려고 7시 20분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다. 늘 주차하던 자리에 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승용차 리머컨을 가지고 여기저기 눌러보았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면서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지하 1층 주차장과 지하 2층 주차장, 그리고 상가 주차장까지 오르내리면서 찾아보았으나 ‘회색 아반테 41우 8913’는 보이지 않았다.

당황하고 있는 아내에게 ‘차량을 도난당한 것 같다.’고 했다. 그 때부터 아내는 묻고 나는 대답을 했다. 은퇴한 후에 너무 많은 액션 영화를 본 탓인지 나의 대답들이 제멋대로이다. 아내는 묻는다. “아니, 저렇게 좋은 차들이 많은데 하필 7년 된 작고 낡은 차를 왜 훔쳐갔든지 이해가 안 되네요?” 내가 대답한다. “아마 내가 문을 안 닫았는지 모르겠소. 범인이 주자장에 들어와서 이 차 저 차의 문을 열어보다가 문이 안 닫힌 차를 발견하고 훔친 것 같소.”

“그러면 차 열쇠도 없는 데 어떻게 시동을 걸어요?” “운전대 밑을 뜯고 선을 열결하면 시동을 걸 수가 있소. 언제가 뉴스에 보니까 이렇게 도난해간 차들이 해외로 많이 팔려간다고 합니다.” 다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다. 우리 부부는 우문우답을 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보았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차량으로 마음만 타들어갈 뿐이었다. 아내는 음식점 예약을 취소하고 나는 아파트 경비실에 전화를 했다. 젊은 경비원이 놀라서 달려와 자초지종의 설명을 들었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말이 있다. 경비원과 여기저기 조사해 보아도 어찌된 노릇인지 CCTV가 보이지 않는다. 경비원이 너무나 미안해했다. 그래서 내 차를 주차했던 자리에서 앞차를 보니 불랙박스(카메라)가 있는 것 같아 경비원이 전화해 보니 공교롭게도 요즈음 밧테리 관계로 꺼놓았다고 한다.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연락처와 차량번호를 알려주면서 경비원에게 빨리 찾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설날 아침임에도 식사할 마음이 없었다. 가장 상심이 되는 것은 신앙문제였다. 마음 한구석에 서 ‘하나님,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물질의 손해를 보게 하십니까? 요즈음은 가까운 어려운 교회를 위해서 많은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까?’라는 기도가 신음처럼 고이고 있었다. 도난된 차량을 찾기 위해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더욱 낙심을 부채질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입으로는 여전히 주문을 외우듯 ‘하나님,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라는 속기도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차량 도난 시 조처할 일을 찾아보니 우선 경찰과 보험회사에 시급히 알려야 한다고 했다. 경비실에 전화해서 “경찰에 신고하려고 한다.”고 하자, 경비실 팀장이 “차량을 찾은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 보세요. 지금 직원이 확인하러 갔습니다.”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 도난당한 차를 어떻게 당장에 찾았는가? 범인을 잡았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선 너무나 반가워서 “어떻게 찾았습니까?” “아파트 정문 부근 길옆에 회색 아반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순간 ‘아’하는 소리를 질렀다. 이틀 전에 그곳에 주차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내도 “맞어. 그곳에 주차를 해놓았지”라는 것이 아닌가? 그날 우리 부부는 가까운 교회 목사님에게 설날 선물을 전달하고 돌아오다가 아파트 경내에서 열리는 화요장터를 보기 위해 정문 옆길에 주차했었다.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마침 맛있어 보이는 ‘장충동식 족발’이 있어 사들고 돌아와 점심식사로 대신하고는 주차된 차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경비실 팀장의 말을 듣자마자 계단을 뛰어 내려가 주차된 장소로 갔더니 내 차가 밤새도록 추위에 얼었는지 하얗게 성애에 덮여 있었다. 마치 잃었던 식구를 찾은 것처럼 너무나 반가웠다. 눅15장에 잃었던 양을 찾은 주인이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인 것처럼 설날 아침부터 부산을 떨게 한 송구함에 경비원 모두를 불러다가 식사대접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과일 바구니를 들고 경비실에 찾아가 감사인사를 했다.

그 분들도 CCTV의 부실 탓으로 오히려 더 미안해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표정이었다. 그러므로 2015년 설날 아침의 황당한 쇼는 막을 내렸다. 우리 부부는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어떻게 이틀 전에 일을 부부가 이렇게 까맣게 잊을 수가 있는가? 과거 목회할 때는 30-40명의 제직을 교인들 앞에 세우고 이름 전부를 소개하던 기억력이 어디로 사라졌는가?’

‘어쩌다 이제는 대화 중에도 누구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더듬는 말을 하는 나이가 되었는가? 더욱 이런 기막힌 건망증까지 나타나 설날 아침을 망치게 하다니‘라는 생각에 쓸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시는 이런 실수로 우리 스스로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없도록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다행히 스마트폰의 검색기능이 잃어가는 기억력을 보완해 주고 있다면 스마트폰에 많은 자료들을 입력해 놓음으로 또 하나의 인생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도록 대비해야 할 것 같다.

p.s. 오전 10시 반에 다시 찾은 승용차를 몰고 외곽도로를 통해 의왕을 향해 달리는 기분은 새차를 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