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하다가 은퇴를 하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시간관리이다.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지만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대부분 너무나 시간에 쫓기며 사역한다. 어느 때는 밤낮 없이 일해도 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들에 매여 지낸다. 새벽기도회로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설교준비, 심방, 행정, 수많은 회의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월간목회 박종구 목사는 말하기를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는 쉼표가 없다. 격무에 시달린다. 담임목회자에게 집중된 업무가 과중하다. 특히 설교 횟수가 연간 1,000회를 상회한다. 너무 분망하다.(중략) 지도자의 탈진현상(burn-out)은 또 다른 문제를 유발시킨다. 정서적 파탄 또는 공황상태를 가져오고, 체력의 한계로 발병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홍익교회 목회 초기(1975-1985년)에 부교역자가 없었을 때는, 새벽기도회, 주일오전과 밤 설교, 수요기도회와 금요기도회 설교, 화요성경공부반 인도, 봄가을 대심방, 일반심방 등은 물론이요, 교회 행정까지 거의 목회업무를 도맡아 헤야 했었다. 그런데다가 1982년 건축을 앞두고 시작한 밤9시기도회를 은퇴할 때까지 계속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러므로 항상 피곤에 찌들어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1986년부터 부교역자가 부임함으로 엄청난 양의 업무를 나누어 사역할 수 있었다. 대신 그 때부터 노회 임원이 되어 거의 8년을 봉사함으로 여전히 바쁜 삶은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도 바쁜 만큼 교회가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기에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기에 스트레스를 덜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의 성장 침체기 후부터는 바쁜 사역은 여전했지만 성장을 멈춘 교회를 보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스트레스를 교회를 터를 넓히고 부속건물을 확보하고 지역사회 봉사와 개척교회 설립, 해외 선교를 위해 진력하는 것으로 해소하고는 했지만, 멈춘 교회 성장에 대한 죄책감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일찍 은퇴를 서두르게 된 것 같다. 원래는 만65세에 은퇴할 예정이었으나 교회가 준비가 안 된 상태라 1년 늦추어 2007년 말에 은퇴했다. 은퇴하고 제일 먼저 당황한 것은, 일주일 내내 목회수첩에 빼곡할 정도의 스케쥴을 따라 정신없이 바빴던 삶들이 뚝 끊어지고 엄청나게 자유로운 시간들이 내 앞에 펼쳐 있다는 사실이었다. 180도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이제는 하루종일 잠을 자든지, 며칠을 여행을 가든지 누구 하나 강요하거나 간섭받지 않는 시간들이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은 새달력처럼 내 앞에 주어진 것이다.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처음에는 한없이 펼쳐진 시간들을 주체할 수 없어 상당히 당황했었다. 특별히 교회나 노회, 총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일했던 분일수록 감당하지 못해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특별히 교회나 노회 주변을 맴돌면서 교인들이나 노회원을 만나 이 일 저 일로 교회나 노회 문제에 관여함으로 분란의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목회윤리에 어긋난 일이다. 일단 후배들에게 교회나 노회 사역을 맡겼으면 과감히 손을 떼어야 덕스러운 것이 아니겠는가? 은퇴 후 시간관리에 실패한 모습들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나는 활동적인 성품이기보다 선비적인 면이 더 짙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무할 때도 여기 저기 활동하기보다 많은 시간에 서재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를 즐겨했었다. 그런 탓에 심방을 유난히 꺼려함으로 집사람으로부터 많은 눈총을 받기도 했었다. 그나마 은퇴 후에 다행스러운 것은 ‘소리지’를 통해 문서선교 사역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슨 일에나 앞장서서 활동하기 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보는 것을 즐겨하는 탓인지 독서, 영화 다운 받아 보기, TV로 축구나 야구, 바둑이나 골프를 즐겨보고 특히 은퇴 후에는 각종 드라마를 즐겨 보았으나 최근에는 수준 낮은 드라마들레 점점 염증이 느끼게 됨으로 이제는 어느 선배 목회자처럼 다큐멘터리 관람에 관심을 가져볼까 싶은 마음이다.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는 후배 목회자들에게나 교인들에게 경험자로서 권유하고 싶은 것은 은퇴를 위해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노후에 엄청나게 주어지는 시간들을 잘 관리하기 위해 또 하나의 일거리들을 준비할 것과 보다 취미 활동의 폭을 넓혀놔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은퇴 후에 초라하지 하고 풍성한 노년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