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뉴스미션) 
가나안 성도의 등장

한국 교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어떤 이는 십 수년 전부터 이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이십년 전에 신학교 다닐 때에도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기록에 의하면 1970년대에 함석헌 선생이 <씨알>지에 이 단어를 쓴 것으로 나타나 이미 40년 전부터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나안 성도’란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지만 현재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찾아 다녔듯이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가나안’이라는 말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인 것과 같이 교회를 나가지 않는 또는 의도적으로 ‘기성’ 교회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미 20년 전에 영국의 종교사회학자인 그레이스 데이비는 영국에서 교인 수가 감소하는 것을 기독교의 쇠퇴와 동일시할 수 없다고 보면서 교회를 떠난 사람들에 대하여 연구한 바 있다. 영국에서는 성공회가 국교이고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이지만,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흔히 알려졌듯이 거대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이 주일에도 텅텅 비고 일부는 식당이나 술집으로 바뀌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렇게 세속화한 영국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여전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고, 교회는 안 나가도 하나님은 믿고 있으며 대다수는 확신은 없어도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레이스 데이비가 “소속 없는 신앙”(believing without belonging)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그의 저서 <1945년 이후 영국의 종교>(Religion in Britain since 1945)에서 연구한 결과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세속적인 국가들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속되지 않고 믿는”는 것이며, 다수가 아직도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문화화한 기독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일반화된 사회적 기억으로 종교가 얼마나 오래 생존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제도로서의 종교가 쇠퇴한 뒤에 얼마나 오랫동안 기독교가 살아남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 난민

미국의 종교사회학자들도 종교 단체에 속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종교적인 문제에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영적인 구도자’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는 표현으로 종교 단체에 속하지 않지만 여전히 영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전체 미국인들 중에 거의 40%가 종교 단체와 연관이 없지만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여전히 집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노던 콜로라도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조쉬 패커드는 올해 출판된 그의 저서 <교회 난민>(Church Refugees)에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종교인을 뜻하는 'None'은 이미 미국 사회에서 20년 이상 증가하고 있고 미국인들에게는 익숙한 용어이다. 그런데 패커드는 최근의 경향에 대해 'Done‘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것은 제도 종교 밖에서 더 나은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None’이 교회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세대 비종교인들을 말한다면, ‘Done'은 교회에 다녀봤지만 현재는 교회를 떠난 30대 이후 세대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이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결국 교회에서 나오게 되었다. 패커드는 1백여 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이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싫어하기 때문에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교회를 떠났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이것은 유럽과는 다른 상황인데 유럽은 장기적인 종교적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미국은 최근까지도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None’이 일시적인 증상이라면 'Done'은 암과 같이 매우 치명적인 문제라고 패커드는 말한다.

한국의 가나안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들은 14년 이상 교회에 다녔고, 절반 가량이 구원의 확신이 있었으며, 직분도 받고 교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사람들로서 흔히 오해되듯이 나일롱 신자들이 아니었다. 또한 이들은 전체 한국 기독교인들보다도 교회를 옮긴 경험이 적어서 떠돌이 교인도 아니었음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것은 신앙에 대한 강요와 교회 안에서 소통의 부재, 그리고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동료 신앙인들의 모습들 때문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38명 중에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태신앙인이었음에도 이러한 교회 분위기 때문에 쫓기듯이 교회를 나와 ‘난민’의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가나안 성도들을 받아들이려면

중요한 것은 이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이다. 왜냐하면 교회를 떠난 이유가 교회에 대한 불만 때문이고 이러한 불만이 합당한 것이라면 교회가 갱신을 할 경우 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 최근의 추세와 같이 개인주의적인 영성을 추구하고 제도 교회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면 교회가 갱신한다고 해서 이들이 교회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이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해서”(30.3%)였지만, 다음으로 “목회자에 대한 불만”이 24.3%, “교인들에 대한 불만”이 19.1%로 나왔다. 그리고 “신앙에 대한 회의”도 13.7% 있었다. 여기서 신앙에 대한 회의도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교회라는 틀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이 더 큰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나안 성도들 세 명 중에 두 명은 교회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을 섣불리 교화하려고 하거나 제도권으로 흡수하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가 바로 그러한 강압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들의 영적인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것을 기성 교회에서 수용함으로써 교회를 갱신하고자 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가나안 성도들이 원하는 교회로 올바른 목회자가 있는 교회와 공동체적인 교회, 그리고 건강한 교회를 꼽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표방하지만 그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가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인을 무시하는 공동체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다. 영성과 사회성의 균형을 이루며 바람직한 공동체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기되는 세이비어 교회의 고든 코스비 목사가 “참된 교회와 공동체에는 극도의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던 점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교회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서로 간에 소통할 수 있는 공동체성을 회복함으로써 가나안 성도들이 마음껏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