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3-16)
1.

제 아들이 군대 가서 자대 배치를 받고 대대장을 만나 상담하는데, 그 대대장이 제 아들 이름이 이상하니까 뜻을 묻고는 부관들에게 이렇게 지시한 적이 있습니다. “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에 교회 보내라.”

왜 그랬을까요? 이름의 뜻이 심상치 않으니 얘는 교회 안 보내면 사고 치겠다 싶었을 것입니다. 이름이 뭐길래? “하힘!” 하나님의 힘이니, 하나님의 힘을 일요일에 교회 안 보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것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며칠 전에는 어느 분이 물어오기를 교인이 이름을 바꿔도 되느냐고 묻는데, 바꿔도 상관없을 것이나 이왕이면 믿음의 이름,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는 이름으로 해야지 돈 주고 작명가에게 가서 이름을 바꾼다고 하는데, 그거 괜히 돈 자랑하는 것입니다. 작명가는 사주, 음양오행을 보면서 짓습니다. 아닙니다, 성도의 이름에는 모름지기 자기 삶의 고백, 믿음의 고백이 있는 게 좋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엔 이름이 참 많이 나옵니다. 아마 여러분은 오늘 같은 수많은 이름이 나열된 성경 본문으로 설교 들을 일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신학교에서도 사람 이름 많이 나오는 본문으로 설교하는 것을 피하라고 합니다. 왜? 은혜가 안 된됩니다.

아니 은혜가 안 되는 것은 둘째 치고, 이건 뜻도 모르겠고, 혀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늘 성경 봉독자는 고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사모하는 이에겐 은혜로 찾아옵니다.

2.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써서 보낸 편지 마지막 부분입니다. 바울은 아주 심오한 로마서를 기록하고는 로마 교회에 있는 교인들을 하나씩 추억하며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만 무려 26명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혹은 단독으로, 혹은 부부로, 혹은 집단적으로, 그 중에는 로마인, 헬라인, 유대인 등 각 인종이 있으며, 자유인, 노예, 귀족 등 다양한 사회 그룹이 로마 교회 안에 있음을 짐작하게 해 줍니다.

그 중에 으뜸으로 등장하는 이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그들은 로마 본토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글라우디오 황제가 로마 내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려, 고린도로 피신 왔다가 바울을 만나 전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부부입니다. 얼마나 이들이 신실했던지 후일에 신학자인 아볼로에게 복음의 진수를 전해줄 정도의 신실한 부부였습니다.

이들 뒤를 이어 아시아, 즉 에베소 지역에서 전도하여 처음으로 얻은 열매 에배네도가 나옵니다. 그리곤 마리아도 등장합니다. 마리아, 유대인에겐 흔한 이름인데, 이 흔한 이름을 가진 여인은 아마도 처녀로 보입니다. 얼마나 교회를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수고를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바울의 친척이었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도 나옵니다. 그들은 바울 보다 먼저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이요, 아마도 바울보다 먼저 사도로 칭함을 받은 존경받는 교회의 지도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8절부터 보면 독특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볼리아에게 문안하라.” 앞 절에는 없던 ‘주 안에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가 언급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가 나옵니다. 11절엔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절,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리곤 계속하여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 그의 형제들,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요, 그의 자매, 올름바, 모든 성도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왜 어떤 이들에겐 ‘주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가 그 앞에 붙어 있을까요?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그 수식어가 붙은 이들의 이름은 대부분 노예의 이름이랍니다. 그런데 그들 이름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이름, ‘아리스도블로’는 헤롯대왕의 손자요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의 친구입니다. 또 ‘헤로디온’은 바울의 친척으로 유대인이며, 아마도 헤롯 집안의 사람으로 양반입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는 ‘사치하다’는 뜻의 이름으로 부유한 자매로 보입니다. 그리고 ‘버시’, ‘블레곤’ 등은 평민의 이름이랍니다.  그런데 왜 이런 다양한 계층, 다양한 신분의 이름들을 거론하며 특별히 어떤 사람들 앞에는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를 붙인 것일까요?

신분의 차이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위대한 교회로, 이미 교회 안에서 사회적 신분의 차별을 극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시는 엄연히 귀족과 천민, 자유인과 노예, 상전과 하인이 존재하던 신분 사회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이름과 사랑으로 극복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게 교회의 힘이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한계, 신분의 한계, 감정의 한계, 직업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3.

이렇게 많은 이름들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단순히 습관적으로 이름 목록표를 갖고 인사하기 위해 이름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이것은 단순한 출석부, 이름 목록표가 아닙니다.

신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이 때 바울의 나이는 59세 쯤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로선 적지 않은 나이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 나이에 새로운 사역을 위해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지금 현재 그가 머물고 있으며 로마서를 쓴 곳은 고린도의 가이우스라는 사람의 집입니다. 가이우스의 집에 머물러있던 바울은 이제 새로운 사역지, 멀리 떨어져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남부를 향해 길을 떠나려고 짐을 꾸리고 있습니다. 승천하시며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이제 마지막 남은 땅끝이라고 여겨지는 그 먼 곳, 스페인 남부를 향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은 길입니다. 예루살렘을 거쳐 그리로 가고자 하는데,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시기를 그 길이 그리 만만한 길이 아니랍니다. 험난하다고 합니다. 체포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핍박 받을 것이라 합니다. 매 맞고 욕 먹는 길이랍니다. 헐벗고 굶주릴 것이랍니다. 이 나이에 꼭 해야 하나 ... 착잡한 심정입니다. 그러기에 짐을 꾸리며 문득 그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며 추억에 잠깁니다.

아, 그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 정말 고마웠던 부부,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나를 도와주고 믿어주었던 신실한 믿음의 부부! 내 사역의 자랑스러운 열매!

그렇지, 고생 고생하여 에베소에서 전도하여 처음으로 얻은 복음의 열매, 에베내도! 마침내 그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던가! 아, 그래 마리아도 있어. 언제나 남들보다 일찍 예배당에 찾아와 예배 준비를 해 주었지. 그리곤 늘 늦게까지 예배당 정리하고 들어가곤 했어. 참 고마운 자매야.

언제나 화려한 옷을 입고 예배에 참여하여 우리 모두를 환하게 해 주었던 그 자매, 이름이 뭐더라, 아,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내 집안사람이면서도 그토록 겸손하고 훌륭했던 믿음의 지도자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귀족이면서도 하나도 티내지 않고 그 노예 출신 교우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던 아리스도블로! 헤로디온!

그렇지, 나를 그토록 챙겨주시던 루포의 어머니, 그 분은 내 어머니와 같았어. 행여나 내가 밥 굶고 갈까봐 괜찮다는데도 언제나 막무가내로 밥상을 차려주시곤 했지. ......

바울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추억하며 하나 하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하지만, 그는 지금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가 가는 길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에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 추억으로 미소 짓고, 스스로 격려를 받으며 자기가 가야할 순교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순교의 길, 십자가의 길, 주저되는 길을, 그들을 추억함으로 그들로부터 무언의 격려를 받고 힘을 얻어 그 길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4.

교회는 교우들 간에 아름다운 추억이 많아야 합니다. 이름을 떠올리면 함께 따라오는 추억으로 인해 격려를 받고, ‘그래 나도 더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지’ 하고 결단하게 하는 그런 거룩한 추억이 많아야 합니다. 나는 목사이면서도 때론 심령이 매마를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드려도, 찬송을 불러도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나는 돌아가신 믿음의 어른들을 추억하며 힘을 냅니다. 김창순, 하은혜, 정수찬, 이은덕, 박승순, 백성희, 이재전, 권달례, 한상순, 강제숙, 표태욱, ... 모두가 그리운 이들, 내게 힘을 주고 날 위해 기도하던 분들입니다. 그 분들과의 추억이 나로 어려운 목회 길을 이겨가게 합니다.

교인들 간에는 더욱 많은 아름다운 일들이,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추억이 있어야 합니다. Fred Craddock이라는 목사님은 이런 경험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아팔레치아 산에 있는 조그만 선교단체를 섬길 때, 그 교회는 부활절에 세례를 거행하는데 세례식 후 교우들 모두가 그날 세례 받은 새신자들을 가운데 놓고 기존 교우들이 빙 둘러앉아서는 그 새신자들에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이렇게 자기를 소개한답니다.

“제 이름은 마크입니다. 세탁이나 다림질이 필요하신 분은 저를 찾아주세요.” “제 이름은 빌입니다. 나무를 패야할 때는 저를 불러주세요.” “저는 메이입니다. 어린아이를 맡기시려면 저를 기억해 주세요.” “저는 프랭크입니다. 집을 수리할 일이 있으면 저를 불러주세요.” “제 이름은 조이입니다. 차가 필요하신 분은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자기를 소개하되 도움이 되고 싶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그러면서 더욱 친밀함을 더해가는 곳, 그게 바로 신앙 공동체 교회입니다. 교회는 절간이 아닙니다. 자기 혼자 예불 드리고 훌쩍 돌아가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자기 것으로 남을 섬기고 돕는 그런 곳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용납하며 사랑하는 그런 공동체입니다. 함께 마음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고, 재능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는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올 해 얼마나 자기 것으로 교우들을 섬겼습니까? 얼마나 많은 미소를 교우들에게 보내주었습니까? 얼마나 자주 함박웃음을 교우들에게 날려 보냈습니까? 얼마나 자주 뜨거운 사랑을 표현해 주었습니까? 힘들어하는 이에게 얼마나 자주 따뜻한 손길로 잡아주었습니까?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 잊혀지지 않는 /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는 어느(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 되어 있습니까? 어떤 진한 영향이 우리 간에 있습니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 따라오는 아름다운 추억이 과연 있습니까?

5.

누구에게든 이름 석 자 떠올리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다 있습니다. 마음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름이 있고, 반면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그리움의 이름도 있습니다. 잔잔한 고마움이 솟아나는 이름도 있고, 괜한 미소가 떠오르는 이름도 있습니다. 소중히 간직하고픈 이름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2015년 마지막 주일 예배입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봅시다.

<221장 반주>

고맙고 감사한 이, 아름다운 추억을 주는 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십시오. 그러나 혹시, 올해 내가 감정을 정리해야 할 사람이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떠오르는 이름들, 이어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생각들, 감정들, ... 이 시간, 조용히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그 이름들, 아름다운 이름으로 변형되도록 위하여 기도하며, 미움은 지우고, 증오도 지우고, 시기도 지우고, ... 차라리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그들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을 지웁시다. 그리고 새사람 대하듯이 그 이름을 소중히 간직합시다.

우리들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는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주시는 이름들입니다. 뭔가 정리하라는 싸인입니다. 그들을 위해 함께 1-2분간 기도합시다.

<합심 기도>

찬송가 221장 가사가 이렇습니다.
1.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2. 하나님 보좌 앞 다 기도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 안에 하나라
3.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동락하면서 참 사랑 나누네
4.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 안에 교제하면서 또 다시 만나리

자리에서 일어납시다. 옆 사람과 한번 진한 인사를 나눕시다. 옆 사람 손을 잡고 그를 바라보며 나를 따라하십시오.

‘올 한 해도 감사했습니다. 함께 예배드릴 수 있었음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혹 맘 아프게 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십시오. 제 마음에 당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간직합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께 충성합시다. 주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