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뉴스앤조이)

생명 경시 풍조, 자기결정권 침해 우려 속 '웰다잉법' 국회 통과
                                                                                  구권효 기자
 

▲ '웰다잉법'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환자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웰다잉법은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 일명 '웰다잉(well-dying)법'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웰다잉법의 골자는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하에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품위 있는 죽음'(존엄사)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웰다잉법은 2018년부터 시행된다.

웰다잉법은, 치료를 받아도 회생 가능성이 없고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해 사망에 임박한 상태인 환자 중 △연명 의료 중단의 뜻을 직접 문서로 남겼거나 △가족 2명 이상이 평소 환자의 뜻이라고 진술하는 경우 △환자의 뜻을 알 수 없는 때에는 가족 전원이 동의한 경우 적용된다. 담당 의사는 환자 본인이나 가족의 의사를 확인한 뒤,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중단되는 연명 의료는 심폐 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이다. 영양·물 공급과 단순 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한마디로 자연스러운 수명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리 존엄사라 해도 이를 법제화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도 많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자칫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로 번질 수 있고, 경제적인 이유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환자가 사전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을 경우 가족의 의사에 따라야 하는데, 이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또 환자의 회생 불능 상태를 의료진이 판단하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거나 오판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함준수 상임공동대표)와 성산생명윤리연구소(권오용 소장)는 법안이 통과되기 전인 지난 12월 15일, 웰다잉법을 반대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했다. 환자 본인이 아닌 가족이나 의사 등 제3자의 의한 의료 행위 중단을 법제화하는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생명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 '소극적 안락사'를 조장해 생명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법안에 반대했다.

민감한 사안이지만 웰다잉법은 큰 반발 없이 통과되었다. 일단 병원에 들어가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처치를 받아야 하는 게 그동안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말 진행된 한국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국민 1,000명 중 77%가 웰다잉법을 찬성했다. 부모나 배우자가 회생 불능 상태가 된다면 연명 의료를 중단하겠느냐는 질문에는 63%가 찬성했는데, 본인에 대해서는 90%가 찬성했다. 개신교인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균보다 조금 낮지만, 72%가 웰다잉법을 찬성했다. 

▲ 웰다잉법의 취지는 국민 대부분이 찬성하지만, 이를 시행함에 있어서는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MBC 뉴스투데이 갈무리)

나쁜 사회에서 좋은 죽음?…전재중 변호사, "윤리적·사회적 논의 필요"
기독교인은 웰다잉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법안이 통과된 후, 기독교 생명 윤리 단체나 교계 연합 기관 등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뉴스앤조이>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 전재중 변호사(법무법인 소명)에게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법안 자체만 놓고 보면 기독교 윤리상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수명을 줄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웰다잉법과 같은 '소극적 안락사'는 이미 형법에서는 허용되어 온 부분이다.
그러나 이 법이 현실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걱정이 크다. 이제 죽음의 시기를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바뀔 것이다. 심각한 병을 안고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부터 죽음의 시기와 방법, 그에 따라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지 계산하려 들 것이다.
환자의 회생 불능 상태를 의료진이 판단하는 것도 생각해 볼 지점이다. 만약 이것이 악용된다면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의료 부분에서 비전문가들은 철저히 '을'이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도 현실적으로 없다.
웰다잉법이 미칠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고 어떻게든 법망을 피해 가려는 윤리 의식을 개선해야 할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법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을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윤리적·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법안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 해도, 그 법이 시행되는 사회에 문제가 많다면 부정적인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인류학 교수도 1월 10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나쁜 사회와 웰다잉'이라는 글에서 전재중 변호사와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현실의 세상은 개인이 스스로의 의지와 가치관만을 좇아서 치료 여부를 결정하고, 가족들은 환자의 의사와 복리를 무엇보다 우선하며, 국가는 그 결정을 물질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그런 곳이 결코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착하지 않은 사회에서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