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1:1-25)
 

    1. 
     저기 강서구의 한 교회에서 부목로 섬길 때, 나와 함께 심방다니던 권사님이 계십니다. 한번은 이 권사님이 구역원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어렵다고 어렵다고 우는 소리를 해서 보증을 서줬는데, 구역원이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 권사님이 얼마나 열을 받고, 상심했는지, 교회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갔더니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있습니다. 그 분에게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권사님,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이 다 아셔요. 그저 권사님은 권사답게 용서해 버리세요.”
 
     그러자 이 권사님, 내게 그럽니다. ‘난 못해요.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땅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받아낼 거예요.’ 땅 끝까지는 복음을 전하러 가라고 했는데, 이 분은 땅 끝까지 빚을 받으러 가겠답니다. 내 참....
 
     그런데 말이죠, 왕십리에 와서 목회할 때 어느 초신자가 친구에게 돈을 떼인 적이 있습니다. 이제 예수 믿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상심이 될까 싶어 심방을 갔고, 조심스레 무슨 말로 위로할까 전전 긍긍하고 있는데, 이 분이 도리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그 돈 떼먹고 도망간 놈도 용서해야지요? 그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지요?” 이 분은 초신자임에도, 용서할 수 없는 이를 용서해야 하는 것이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제 자신이 그렇게 용서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얼마나 뿌듯해 하는 지,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힘이 뭔가요?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 갈 수 없는 곳을 가는 것,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는 것, 세상의 상식과 도덕, 법률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예수 믿는 이의 힘 아닌가요?
 
     2.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써서 보낸 편지입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마도 이 때 빌레몬이 에베소에 들렸다가 바울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빌레몬에게 있어서 바울은 스승인 셈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로 돌아와 자기 집에서 교회를 개척, 가정교회를 시작하였고, 이 교회는 아주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빌레몬은 상당히 여유있는 부자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집의 노예 한 명, 오네시모가 주인 빌레몬의 재물을 훔쳐, 멀리 달아나버렸습니다. 달아난 오네시모는 대도시 로마에서 사도 바울을 만났고, 거기서 신앙을 갖게 되었으며, 바울이 옥에 갇히자 그 곁에서 수종을 들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바울은 오네시모가 노예 신분이며, 그것도 주인집에서 도망쳐 나온 노예란 것을 알게 되었고, 더구나 그 주인이 빌레몬이란 사실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고민하던 바울,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오네시모를 원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며 오네시모를 위해 빌레몬에게 용서 해 주라는 사적인 편지를 쓴 것이 바로 이 빌레몬서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요? 아, 그냥 용서해 주면 되지, 뭘 그렇게 까지 힘들게 ...?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부탁이 당시엔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부탁을 하는 바울의 태도입니다. 그가 부탁하는 자세, 단어 사용, 심리적인 모습 등을 보면 사도 바울이 매우 신중하게, 매우 낮은 자세로, 조심스럽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엿 볼 수 있습니다.
 
     1절에서 바울은 인사 하는데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된 바울’이라고 합니다. 보통 서신서를 보면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당당하게 자기소개와 인사를 하는데, 여기선 ‘갇혔다’는 동정을 유발하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4절을 보면,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이라고 하면서, 기도 때마다 빌레몬을 기억하고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곤 5절부턴 그를 흠뻑 칭찬하고 있습니다. 매우 자랑스러워하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가, 모든 교인이 너로 인하여 행복해 한다 하며 빌레몬이 계면쩍어할 정도로 띄워주고 있습니다. 도무지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띄워줍니다.
 
     그러면서 8절 이하엔 ‘명할 수도 있으나 사랑으로써 간구한다’고 스승으로서의 강압적 권위가 아닌 겸허한 자세로 빌레몬의 마음을 두드릴 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갇힌 자’되어 하며, 자기가 나이가 많음에도 갇혀 있으니 불쌍히 여겨 달라는 듯이 빌레몬의 마음을 압박합니다.
 
     12절엔 오네시모를 칭하기를 ‘그는 내 심복이다’라며 바울에게 있어서 오네시모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강조합니다.
 
     13절에서는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하며, 은연중 빌레몬이 자신을 섬겨야 할 것을 내비치며, 그 의무를 오네시모에게 맡긴다는 듯 말합니다.
 
     그것도 14절에서는 ‘억지로 말고 자의로 하도록’ 빌레몬을 예우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18절부터 보면, ‘만일 그가 빚진 것이 있으면 내 앞으로 계산하라’며, ‘내가 확실히 갚겠다’고까지 밝힙니다.
 
     그러더니 20절,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안에서 평안하게 하라.”고 직격탄을 날립니다. 이것도 모자란지 21절에 추인까지 붙입니다.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한다. 아니 더 행할 줄을 안다.’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게, 때로는 협박하듯이, 때로는 간청하듯이 애가 타서 부탁하는 사도 바울, 대체 노예 하나 용서해 주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문제기에 이리 긴장하며 편지를 쓴 것일까요?
 
     3.
     당대 로마 제국 내에는 노예가 6천만 명이나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노예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로마는 매우 가혹한 노예법을 시행하였습니다. 실상 노예의 생명은 주인의 뜻에 달려 있었습니다. 주인의 마음에 안 들면 노예를 팔아버릴 수도 있었고, 죽일 수도 있었으며, 십자가에 매달 수도 있었습니다. 노예에게는 아무런 인권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견디다 못해 도망가는 노예들이 나왔는데, 도망간 노예는 잡히면 반드시 처형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네시모의 경우, 그는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도망쳤는데, 그냥 도망친 것이 아니라 주인인 빌레몬의 재물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면, ‘이제 당신이랑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다. 혹 다시 만난다면 그 자리에서 당신이 죽거나 내가 죽을 것이다!’란 원수 선언을 한 것입니다. 주인으로서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노예가 도망갔다는 것 자체도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재물을 훔쳐 달아났다는 것은 자기에게 심한 모욕감을 안기고 도망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한 모욕을 당하고,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준 그 오네시모, 그 노예를 어떻게 대해 주라는 건가요? 그냥 용서해 주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16절엔 ‘종과 같이 대하지 말라. 종 이상으로 사랑 받는 형제로 대해 줘라’합니다. 17절에선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고까지 합니다.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주인과 종, 신분의 차이가 극렬하게 드러나던 시절, 주인인 자신의 자존심을 짓밟고, 재물까지 훔쳐 자기를 모욕하고 도망간 노예를 종 이상, 형제로 대해 줘라? 아니, 주의 종에게 하듯이 깍듯하게 해 주라? 과연 이 부탁에 쉽게 고개를 숙일 수 있을까요?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사람은 다 마지막 자존심의 선이 있습니다. 이거마저 허물어지면 살기 힘든 그런 자존심의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지금 평탄한 믿음 생활하다가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입니다!
 
     4.
     어느 교수님이 고백하는데, 자기 부모님은 장로, 권사인데, 싸우기를 잘 하셨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싸우시다가도, ‘여보, 우리 예배드리고 끝냅시다’하면 두 분이서 예배를 드리고 끝내곤 하셨답니다.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요? 부부싸움 하다가 예배드리고 끝낸다니? 이거야 말로 코메디도 아니고 ... 그런데 어쨌든 간에 한쪽에서 그렇게 말하면, 목소리 높여 싸우던 분들이, 당장에 멈추고 예배를 드린답니다. 이게 자신은 이해가 안 되었답니다. 그럴 바에는 뭐 하러 싸워? 아예 싸우지 말지.
 
     그런데 자신이 결혼하여 부부 생활을 하다 보니, 부부간의 싸움, 이건 거의 필수였습니다. 서로 다른 2개의 세계가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이 부부싸움이었습니다. 그러니 부부는 필히 싸울 수밖에!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단 한 번의 싸움도 없는 부부는 닭살 부부가 아니라 위험한 부부랍니다. 그렇다고 오늘부터 싸우란 말은 아닙니다.
 
     서로 다르니 싸울 수밖에! 그러나 싸우더라도 그들에게는 아주 분명한 한계, 브레이크가 있었습니다. ‘예배드립시다!’ 이러면 무조건 끝!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얼마나 쑥스러운데, 얼마나 신경질 나는데,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 다하고 무조건 끝내면 얼마나 약이 오르는데 ... 그럼에도 이 어른들은 무조건 뚝! 왜? 하나님께 예배드리자고 해서!
 
     그 정도로 부모님에겐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의 마음, 전적인 경외심, 곧 신앙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5.
     결국, 신앙심입니다. 기도 많이 하고, 전도, 봉사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읽고, ... 왜 이런 걸 하나요? 신앙심 키우기 위해! 그러니 결국 신앙심입니다. 기도 많이 했으면, 전도 많이 했으면, 봉사 많이 했으면 그만큼 내공이 쌓여야 합니다. 신앙심이 깊어져야 하고 두터워져야 합니다. 아니면, 다 쑈한 것이빈다.
 
     신앙심으로 사십시오. 신앙심으로 섬기십시오. 신앙심으로 나누십시오. 신앙심으로 봉사하십시오. 신앙심으로 용서하십시오. 신앙심으로 숨을 쉬십시오. 그게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신앙심이 아닌 제 멋에 겨워 봉사를 하니까 시험에 듭니다. 신앙심이 두텁다면 뭐가 문제인가요! 내가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뢰, 절대 순종, 절대 의지, 이 온전한 신앙심이 있다면 내가 걸려 넘어질 게 뭐가 있는가요?
 
     신앙심이 없으니 자존심에 늘 걸려 넘어집니다. 신앙심이 없으니 체면에 늘 쓰러집니다. 신앙심이 없으니 명예욕에 발목이 잡힙니다. 신앙심이 없으니 늘 이기심에 쓰러집니다. 신앙심이 없으니 늘 생각에서 끝납니다. 교회 생활에서, 봉사 생활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기의 신앙심의 문제입니다. 평상시엔 자기 신앙심도 괜찮은 듯 보이지만, 문제가 생길 때 그걸 넘어가지 못하는 신앙심이라면 그건 있으나마나 한 것입니다.
 
     신앙심은, 우리가 넘어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인간적인 것들로 넘어갈 수 없는 그곳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결국 넘어가게 합니다. 빌레몬에겐 도저히 당시의 도덕, 윤리, 사회 규범으로 볼 때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주의 종의 부탁이라도 못하는 것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뒤로 어찌 되었을까요?
 
     분명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뒤 교회사를 뒤적여보면, 빌레몬은 후에 골로새 교회의 감독이 되고, 마침내 네로 황제 때 순교하여,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그의 순교일을 11월 22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마침내 감당하기 어려운 바울의 청에 신앙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했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신앙심의 승리인 것입니다.
 
     어느 군 내무반에 한 믿음 좋은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 병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고참들에게 늘 놀림을 당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고참이 술에 취해 병사의 오른 뺨을 군화로 후려치고는 ‘야, 너희 기독교에서는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민다면서?’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다음날 아침, 고참은 자신의 군화가 반들반들하게 닦여져 있는 걸 보았습니다. 아무도 몰라도 고참은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신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심입니다. 논리와 계산, 자기주장, 권리로 살지 말고, 신앙심으로 사십시오. 힘들고 괴로울 때 자기 신앙심을 점검하십시오. 신앙심, 마음 심(心)자입니다. 그 안이 신앙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겉모습만, 형식만, 남 보기에만 그럴 듯해 보일 게 아니라, 그 안이 신앙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게 신앙심으로 사는 이입니다. 어떤 신앙심?
 
      6.
     ‘윌리엄 홀’ 박사는 청일전쟁 후 태평양 일대에 콜레라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너는 조선으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태평양을 건너 조선으로 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조선 사람들을 치료하다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조선에 온지 3년 만입니다. 더군다나 결혼한 지 2년여 만입니다.
 
     그의 아내 ‘로제타 홀’은 충격으로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와 오늘날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짧은 신혼 기간에 낳은 홀 박사의 아들 ‘셔우드 홀’은 해주에 결핵요양소를 세웠고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결핵퇴치에 진력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의 안락한 조국을 뒤로 하고 열악한 이 조선 땅까지 찾아와 한 목숨을 던지고 갔습니다. 이들 한 가족의 묘가 양화진에 있는데, 그 묘비명이 이러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
 
     신앙심으로 삽시다. 신앙심으로 죽읍시다. 신앙심으로 예수를 위해 살다 갑시다. 신앙심으로, 언제나 내 자존심 문턱에서 걸려 넘어지는 우리의 봉사, 헌신, 희생을 완성합시다. 평소 풀 수 없는 것들, 해결할 수 없던 것들, 넘어갈 수 없던 것들, ‘오직 예수!’ 예수님을 향한 신앙심으로 멋지게 넘어섭시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펼쳐지는 2016년 새 역사 현장엔 이 신앙심으로 사는 하늘의 성도들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흥에 겨워 살다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신앙심으로 살다 가게 하옵소서. ‘주님이 하라면 합니다, 주님이 가라면 갑니다.’ 고백하며 오직 주님을 향한 깊은 신앙심으로 이 세상을 이기는 주의 성도로 살아가게 붙잡아 주옵소서. 주님,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 신앙심과 고백으로 올해는 모든 담을 넘어가게 하시고, 순종케 하시어 내 믿음과 축복의 대지가 영역을 넓혀 주옵소서.>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