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29-34)   
  
     1.
     지난주일 설교, 기억하십니까?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기억하는 게 거의 기적에 가까운 거라고. 글쎄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에 기록하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마음 판에 기록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결코 잊지 말라고, 받은 말씀을 마음판에 기록하여 그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 말을 하며 살라고 하였습니다.
 
     지난주일 말씀의 주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였습니다. 여기서 ‘나’는 누구였던가요? 예수님!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시기에 우리에게 이런 요구를 했다구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 이걸 누가 고백했다고? 베드로!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지난주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했습니다. 맞습니까?
 
     2.
     그런데 오늘은 두 명의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이 요한은 누구인가요?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증언한 것입니다. 이 세례 요한이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증거한 것입니다.
 
     또 다른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입니다. 사도 요한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처럼 예수님의 모든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은 이들보다 한 세대 뒤에 기록된 것으로, 자기가 보기에 중요하다 싶은 것 몇 가지를 뽑아 기록한 책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을까요?
 
     요20장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그러니까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아주 분명합니다. 베드로가 고백했던 것처럼 사도 요한도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우리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일어날 때, ‘참 은혜스럽다’ 하면 잘못 읽은 것입니다. ‘참으로 기막힌 지혜의 책이다’ 하면 번지수가 틀린 것입니다. ‘심오한 책이로다’ 하면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요한복음을 읽고 일어날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 감격과 기쁨 속에 잠이 오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삶을 주장하시고, 인도하시고, 나를 감싸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하나님이시란 사실, 그 분의 이름으로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도움을 얻는 사실에 할 말을 잃고,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감격 속에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란 사실에 몸을 떨며 일어나야 합니다.
 
     3.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조금 독특한 단어를 사용하며 예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무슨 의미인가요?
 
     이 어린양의 개념은 어디서 온 것인지 확실하게 꼬집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그 개념의 배후가 되는 말씀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출 29:38절에 보면 아침저녁으로 어린양을 제물로 드렸고, 출 12:32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결정적으로 구원받은 것이 유월절 어린양, 즉 장자의 재앙이 온 애굽을 덮칠 때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는데, 여기에 어린양의 개념이 있고, 레 4:32절에는 속죄물로 어린양이 나옵니다. 그리곤 이 모든 것을 총괄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어린양입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개념이 있는데, 레16장에 나오는 ‘아사셀 염소’가 있습니다. 당시는 염소나 양이나 거의 같은 맥락에서 썼고, 그 후에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사셀 염소, 아사셀 양이라고 하는 데, 이 양과 염소는 일반적인 희생제물과 조금 다릅니다. 일반적인 희생제물은 제단에서 죽이는데, 이 아사셀 양, 염소는 성별해 두었다가 때가 되면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 광야로 쫓아냅니다. 그러면 그 어린 것은 울면서 울면서 광야로 들어가 헤매다가 맹수에게 찢겨죽거나 먹혀 죽습니다.
 
     아마도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은 바로 이런 아사셀 양, 아사셀 염소 개념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것이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짐승도 압니다. 자기 생에 위기가 다가온 것을. 소와 개도 자기가 죽을 날이 되면 남다르게 행동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직감적으로 다 안답니다. 그러니 그 어린양, 애처롭기 짝이 없는 그 연약한 것이 안전한 성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광야로 쫓겨 갈 때,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요? 죽을 수밖에 없는 그 길을 밀리듯 내몰리는 그 길이 얼마나 본능적으로 무서웠을까요?
 
     누구 때문에? 인간의 죄 때문에! 죄는 자기가 짓지만, 아픔은 엉뚱한 이가 당합니다. 죄를 짓고 자기가 책임지는 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엉뚱한 이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형제들이 그 피해를 당하고 책임을 지고 아픔을 맛봅니다. 죄를 짓고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지만 누가 자기 죄를 책임질 수 있습니까?
 
     기껏 해서 자기가 책임진다고 자살을 한다구요? 자살이 끝인가요? 그것은 영원의 시작입니다. 결코 끝이 아닙니다. 인간은 결코 죄를 책임지지 못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죄의 삯은 사명이요.”(롬6:23)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이런 죄를 누가 책임져 줄 수 있습니까? 시편기자는 이렇게까지 증언합니다.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시49:7-8) 아무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구약에 보면 제사제도를 통하여 그 죄의 문제를 잠시나마 해결할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평생 죄책감에, 죄책에 짓눌려 살아서야 되겠는가 싶어 그것을 해결할 속죄제도를 주셨습니다. 이건 이 세상 어느 종족, 어느 문화나 동일하게 갖고 있는 제사제도입니다.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곳엔 그 어느 곳에서나 다 제사가 있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을 달래기 위한 그런 제사가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옛날 옛날에 인류가 모여서 ‘우리 죄 지을 때는 이렇게 제사를 지내자’라고 약속한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어느 곳에서 살던 간에 인간은 제사제도를 갖고 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내신 것이기에 그러합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범죄하는 인간에게 잠시 죄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 속죄제도, 제사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만 인종과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를 뿐이지 근본 맥락은 같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상황, 어떤 문화, 어떤 곳에서 산다 할지라도 인간은 거의 모두 죄의 문제와 씨름을 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속, 속죄의 제도, 제사법을 본능적으로 찾아내었습니다.
 
     그러기에 죄 지은 이들이 죄의 양심과 가책 때문에 견딜 수 없을 때 희생제물을 끌고 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죽입니다. 자기가 죽을 것인데 이 녀석이 내 죄를 다 끌어안고 대신 죽습니다 하고 자기가 가장 아끼는 깨끗한 동물, 희생제물을 끌고 와서 자기 죄를 고하고 대신 죽입니다. 그리곤 한동안 죄를 용서받았다고, 죄책에서 벗어났다고, 자유함을 얻었다고 즐거워합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요, 그 희생제물은 죄지은 사람이 끌고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니까 죄지은 사람이 데리고 옵니다.
 
     4.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희생제물 예수님은 좀 이상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사실 이건 나의 어린양, 양목사의 어린양, 김장로의 어린양, 이집사의 어린양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께서 왜 어린양을 내놓으시는가요?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희생제물, 아사셀 어린양은 왜 하나님께서 내놓으시는가요?
 
     하나님은 그 누구도 자기 죄로 죽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중 그 누구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며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왜? 그렇게 해 봐야 책임질 수도 없고, 완전한 제물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 때, 내가 무슨 죄가 있나...? 라고 한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죄가 생각나지 않더라구요. ‘아, 모두들 나 같이만 살아보라고 해’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만 오면 기억도 나지 않는 죄를 용서해 달라고 립서비스(lip service)한 적도 있습니다.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짜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며, 이상하게도 점점 내가 지은 죄들이 자꾸 생각납니다. 누군가가 찔러대는 것도 아닌데, 고자질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자꾸 생각납니다. 한동안 전혀 생각나지 않던 것들이, 전에는 그것이 죄라고 전혀 생각이 들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자꾸 죄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새까맣게 잊고 지내던 것들이 자꾸 살아나며 내가 잘못 살았구나 하는 탄식이 나옵니다.
 
     나이 들어서 ‘나는 죄지은 것이 없어. 나는 완벽하게 살았어. 나는 깨끗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들 대다수는 세월이 갈수록 잊었던 죄들이 생각납니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모질게 사람들을 대했던 것들이 살아납니다.
 
     지금도 그러니 말이죠, 마침내 거룩하시고 완벽하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그 성결하신 하나님 보좌 앞에 섰을 때, 너는 어떻게 살았느냐 물어보시며 내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쫘악 펼쳐갈 때, 그 때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죄들이 클로즈업 될 텐데 어떻게 할 것인가요?
 
     가끔은 착한 일도 했고, 기부도 많이 했고, 칭찬 듣고 존경받을 일들도 많았지만, 클로즈업 되는 그 악하고도 추한 모습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요? 아무도 안 보겠지, 모르겠지 했던 장면들이 대문짝만 하게 확대될 때 어떻게 하겠는가요? 100% 자기 죄를 해결하고 거룩하고 완벽한 하나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이 증언한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느니라!.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것이 당신의 어린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한 희생제물 어린양, 부족한 인간이 내놓은 것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완벽한 희생제물 어린양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보고 요한은 이렇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어린양 예수님은 완벽한 이를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어린양 예수님은 스스로 성결하고 착하고 거룩하다고 하는 이를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 그리곤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대속물, 대신 속하여 죽는 희생제물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대신하여 죽으러 오신 분, 내 죄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나를 자유케 하시고, 해방시키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로마서가 아주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우리가 착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철이 들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했을 때가 아닙니다. 여전히 죄인입니다, 철부지입니다, 이기주의입니다. 그럼에도 그 부족하고 추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죽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말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가 여전히 철이 없어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요? 날 사랑하신다고요? 증거가 뭐예요?’할 때, 그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찢겨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증표입니다. 날 보고 제발 영생을 얻으라고 주신 하나님의 눈물겨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이말 저말 하다가도, 이 불평 저 불평하다가도 십자가만 보여주면, 모두 입을 다뭅니다. 그게 뭔지 알기에, 그저 눈시울만 뜨거워질 뿐입니다.
 
     5.
     이제 그 어린양이 마지막 길을 갑니다. 성에서 쫓겨나서 그 무섭고 험한 광야로 나아갑니다. 자기에게 다가온 죽음을 직감하며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죽음의 땅으로 내몰려 갑니다.
 
     내 죄를 짊어지고, 내 죄를 속하기 위하여 길을 나섭니다.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 ...”
 
     이번 한 주간, 내일부터 시작되는 수난 주간이 바로 그런 한 주간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닌 척할 것이 아니라 ‘그래요,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란 자세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벽에 잠이 오겠습니까?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 봅시다. 새벽에 일어나 밤새 그 길을 어떻게 가셨는지 따라가 봅시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감동과 감격, 눈물과 감사가 가득한 수난 주간이 되기를!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