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10) 

1.

전(前)에는 이 세상 만물이 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어릴 적부터 배워왔기에, 인간이 없으면 이 세상도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철을 따라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도 나의 감성을 위해 어김없이 피었다 지었다 하고, 새들이 노래하는 것도 다 나를 위해 노래한다고 생각하였스니다. 게다가 지구에 있는 나를 위해 태양은 매일같이 부지런히 뜨고 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철이 들어 진실을 알고 나니, 꽃들은 자기 종족 보존을 위해 꽃을 피우는 것뿐이요, 새들은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위해 소리를 내는 것뿐이고, 태양이 지구를 위해 도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구가 태양을 향해 부지런히 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착각을 해도 심하게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다시 세상을 바라보니 인생이란 정말 이 우주에서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한 작고도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 설령 우주의 세계에서 인간이 멸종되더라도 변화될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2.

모를 때에는 교만하였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늘 자기가 중심이요, 자기가 수고하고, 자기가 이루고, 자기가 모든 것을 다 감당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몰라주면 남들이 야속했고, 마땅한 대접을 해주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서운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 내가 서운한 짓을 할 때마다 어머니는 늘 이런 야단을 치시곤 했습니다. ‘이놈아, 너 혼자 큰 것 같으냐? 나중에 네가 부모 되어 자식 낳아 길러봐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너 같은 새끼 낳아 길러봐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철이 들며 정말 나 닮은 새끼를 낳아 기르다 보니,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내 잘 나서 크고, 내 잘 나서 사는 줄 알았는데, 철이 들며 깨닫고 또 깨달을수록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사는 데에는, 내가 성장 성숙해 가는 데에는 다른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모를 때에는 온통 자신만 보였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 보다 더 열심히 내 삶 속에서 움직이는 그 무엇이 보입니다. 내 생각, 내 열정, 내 능력보다 더 먼저, 더 열심히 역사 하는 그 무엇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큰 소리 칠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한 줄 알았는데, 내가 참은 줄 알았는데, 내가 이룬 줄 알았는데, 정작 진실에 대해 눈이 뜨이니 내가 아니더라구요. 내 인생, 내가 주인이라고 여겼는데, 주인인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나를 더 이해하고, 나를 더 보살피는 다른 분이 계셨습니다. 누구신가요?

신명기가 알려줍니다. “너희 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1:30,31,33)

늘 나보다 먼저 가시고, 내가 살아야 할 삶의 환경과 처지를 살피시고, 그것도 모자라 나를 감싸시고, 내 인생을 품에 안으시고 이끄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고, 제 잘나서 사는 줄 알고 교만을 떨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하나님이 보입니다. 느껴집니다.

3.

그래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

오늘 성경에서 이 고백을 하는 이는 사도 바울입니다. 전에는 자신이 대단한 인생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인생 족보나, 학문이나 종교적 열정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자기의 대단한 인생 프로필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빌3:4-6)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빌3:4) 육체적, 육신적 인생 프로필에서 자기가 남에게 뒤질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자기를 소개합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5)

유대 공동체에서 팔일 말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우리 식으로 말해 모태신앙이요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하는 것은 정통 중에 정통이라는 자기 혈통을 내세우는 것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하는 것은 율법을 준수하고 지킴에 있어서는 당시 완벽하다고 존경받던 바리새파 사람이라는 것이고,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다는 것은 말로만 믿은 것, 대충 믿은 것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되 그것도 자기들의 신앙을 반대하거나 흠집을 내는 이들을 그냥 두지 못하고 찾아가 죽이기까지 한, 열성적인 신앙인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 사람들의 존경을 흠뻑 받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대단한 인생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자아의식, 자화상(自畵像)을 갖고 산다면 그는 만사에 자신만만하고, 무엇이든지 능동적으로 이룰 수 있는 그런 인생입니다. 마음을 먹지 않아서 그렇지 자기가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살던 그런 강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제 고백하기를 이와는 정반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내 혈통 배경으로, 내 돈으로, 내 지식으로, 내 능력으로, ...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4.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는 자기만이 온통 커 보였는데, 은혜를 받고 보니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는 늘 자기가 주인공이었는데, 은혜를 받고 보니 자기는 조연(助演), 아니 엑스트라에 불과했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해서 항상 문제가 되지, 은혜를 받고 나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은혜는 마치 자동차의 연료, 가솔린과 같아서 한번 받고 평생 가는 것보다 늘 채워야 하는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러기에 은혜가 떨어지면 그는 신경질 내고, 불안해하고, 삶이 두려워지고, 자기 혼자 내팽개쳐진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늘 사모하십시오.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어제도 오늘도 언제든지 변찮고 보호해 주시네.”

은혜를 받지 못하기에 투덜댑니다. 은혜를 모르기에 늘 자기가 중심이요, 자기가 소외된 것 같습니다. 자기의 삶 속에서조차 자기는 낯선 손님과 같이 여겨집니다.

여러분, 무엇이 문제인가요? 돈? 사업 부진? 복잡한 인간관계? 자존심? 남편? 부인? 자식? 건강? 무엇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문제이든 실상 그게 참된 문제가 아닙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여러분의 삶 속에 고갈된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과 삶 속에 은혜의 샘이 터져야 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 12:9a) 하는 하나님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은혜로 채워지면 그런 게 더 이상 문젯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사도 바울, 은혜를 받고 난 후, 그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고린도 교회에 써서 보낸 편지에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보다 수고를 더 많이 했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혔고 매는 수도 없이 맞았고 죽을 뻔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의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고후11:24-27, 공동번역)

참 힘든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울은 그러한 자신의 삶을 한 번도 후회하거나 불평,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였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를 당하면 문제를 없애 달라고 간구하지만, 바울은 그것을 감당하게 해 달라고, 감당할 힘을 달라고, 감당할 은혜를 달라고 하여 더욱 더 영적 강골이 되며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마침내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어려운 여정을 다 달려갔고, 그 벅찬 사명을 다 완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런 험한 세월을 감당할 수 있고,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힘으로 이룬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고달픈 자신의 삶을 보며 불평하고, 투덜대며, 좌절했는데, 이제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보니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5.

우리가 받은 사랑이란 사실상 내가 모를 때 받은 것이 더 큽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사랑은 4살까지 다 받는다고 합니다. 엄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는가요? 지 어미를 그렇게 발로 차고 발길질해도 이쁨 받는 때는 태중에 있을 때입니다. 반면에 엄마는 얼마나 힘든가요?

갓 태어난 핏덩이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그 많은 고생을 하면서 애지중지 키우지 않습니까? 초보 엄마 아빠 심방을 갔더니 눈의 퀭하니 들어갔습니다. 왜 그러냐 했더니 아기가 밤에 잠을 안자서 교대로 날밤을 새운답니다. 애가 밤에 아프면 엄마아빠가 어쩔 줄을 몰라 아기와 같이 울면서 밤을 보낸답니다.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아기를 키웁니다.

그런데 교육학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4살 전의 일은 까맣게 기억하지 못한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갓난아이 때에 우유를 먹었습니까, 엄마의 모유를 먹었습니까? 만약 그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4살 넘어서까지 우유나 젖을 먹은 사람이랍니다.

인간은 4살까지 받은 그 헌신적이고 소중한 사랑을 모른답니다. 어쩌면 그 때의 사랑은 받지 못하면 살아남지도 못할 정도의 큰 사랑입니다. 단 한 순간도 보호의 손길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때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런 큰 사랑을 받고도 기억조차 못합니다. 참 기막힙니다.

그 후 의식이 생겼을 때에도 엄마 아빠를 배려할 줄 모릅니다. 그저 자기만 압니다. 어린 것이 어떻게 그렇게 본능적으로 자기만 아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어린 것이 엄마 품에 달려들더니 울먹이는 소리로 그럽니다. “엄마, 엄마는 절대로 아프면 안 돼.” 엄마는 돌발적인 상황에 놀라면서도 어린 아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너무 대견스러워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왜 아프지 말아야 돼?” 그랬더니 어린 아들이 그러더랍니다. “엄마가 아프면 누가 나 밥 줘?”

아들 환상에서 깨어나십시오. 다 자기만 압니다. 자기중심입니다. 그러다가 엄마 아빠를 배려하기 시작하면, 그 녀석 철들었다 하고, 그 때부터는 이 자식들이 감사를 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기에 철들기 전까지는 절대로 모릅니다, 부모의 은혜를!

신앙의 세계에서도 똑같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모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나는 작아지고 주님이 커집니다.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자신의 공로는 사라지고 주님의 능력만이 커질 뿐입니다. 깨닫기 전에는 늘 자기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고 했는데, 깨달을수록 자기보다 주님이 먼저 앞서 갑니다.

6.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의 도우심과 주님의 사랑, 주님의 능력이 내 삶 속에 역사하고 계심을! 그 분께서 이 미천한 인생으로 영원한 보물을 만들고 계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곤 마침내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 감사가 커져 갈 것입니다.

알곡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진다지요? 마찬가지,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인생의 고개가 겸손히 숙여집니다. 동시에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모든 게 감사, 심지어 괴로운 세월, 거센 팔자까지 은혜 주셔서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심이 감사! 불평과 불만의 인생살이 대신 그 모든 힘든 삶을 감당할 수 있음에 감사!

부디 이것 하나, 이 고백 하나를 늘 되뇌며 살아갑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by the grace o fGod I am what I am ....’ 신앙에 철이 들어 고백하는 이 고백이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로, 더 넓은 축복의 세계로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 가실 줄 믿습니다.

/왕십리중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