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부쩍 고향생각이 난다. 잠시 드라이브를 할 경 고향을 찾았다. 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이나 연고가 없어져 쉽게 찾아지지 못했다.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인데 도시개발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네비 아가씨도 갈팡질팡 했다. 지분이 바뀌었으니 헤맬 만도 할 것이다.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고, 유난히 진달래가 많았던 뒷동산이나 가재를 잡던 돌창이 없어졌다.

 

모두가 포장이 되어 흙조차 밟아볼 수가 없었다.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이 났다. 살던 집 옆에 3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호수가 되어 그런대로 위안이 되었다. 그네를 걸던 가지가 잘려 집터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주변 50여 미터를 거닐다가 부근 카페에 들렀다. 카페 주인은 물론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생면 부지였다. 1930년대 정지용 시인이 노래했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내가 그리던 고향은 아니로고”란 시귀가 생각이 났다.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음미하며 내 자신이 실향민임을 깨달았다 300년을 살아온 고향인데 할아버지의 사랑이 젖어있는 있는 곳인데 정녕 내 고향은 아니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감은 다르겠지만 실향민이 아니겠는가? 대동강변에서 살다 온 선배 장로님의 만향가가 들리는 듯 했다. 어디 그분만이 실향민인가. 댐건설로 동네가 물에 잠기거나 도시화로 집은 물론 산자락이 사라지고…, 한적한 시골마을도 농로가 차도가 되고 고속도로가 뚫리고, 어쨌던 고향에 내고향을 찾아가도 내마음속에 자리한 그 고향은 아닐 수밖에 없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10년 후면 사라지게 된다. 개발 전 세대가 뒷전으로 물러나면 동이든 서든 남쪽이든 북쪽이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내 인척 중엔 영남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호남지역으로 전출되어 일한 후에 은퇴하고도 그 곳에 정착한 사람이 있다. 그는 그곳 정서에 따라 생활하면서 그곳 정서를 인척들에게 대변하고 있다. 동인이 서인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 고향에 대한 정서는 사라져 가고 있으나 영혼의 고향은 있다. 그 고향은 개발되지도 않고 침략을 받지도 않고 은혜가 가득한 곳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난 후에 그의 본토로 돌아가지를 못했다. 아니 그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그 많은 땅을 약속 받으면서도 고향 땅은 제외되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가 아니라 가나안 땅이 된 것이다. 실향민이 되었다는 울적한 심사가 느티나무 한 그루에 위안을 받던 나는 영원한 고향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곳엔 내가 늘 찬양하고 자랑하던 예수란 분이 계시고 할아버지, 아버지를 비롯한 조상님과 사랑하는 사람도 살고 있는 곳이리라. 사람은 고향을 찾을 때 좋은 모습으로 찾아가기를 원한다. 좋은 차, 좋은 옷을 입고 편한 마음으로 찾아간다. 따라서 영원한 고향을 찾아갈 때 좋은 모습으로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저축하며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홍익교회원로장로, 전서울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