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 장면)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자기 왕궁인양 강고하게 버티던 청와대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몇 매스컴은 다음과 같이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탄핵 다음날 몇 신문사 사설들이다.

 

한겨례신문 “어리석고 무도한 대통령은 결국 권좌에서 쫓겨났다. 사필귀정. 국민을 업신여기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해 나라의 근본을 뒤흔든 죄업에 대한 당연한 인과응보다.” 한국일보 “헌재의 결정은 우리나라가 헌법과 법치가 살아 있는 민주국가임을 선언했다. 그 역사적 의미가 4.19나 6월 항쟁 못지않다.” 오마이뉴스 “부친의 정치적 유산으로 집권한 박정희 주니어, 박근혜는 유신 시대의 인물인 김기춘을 통하여 '박근혜식 유신 통치'를 집행해 왔다. 그는 21세기를 20세기 방식으로 사고하고 소비하려 한 지체(遲滯)의 정치인이었다. 탄핵은 그가 매달렸던 70년대식 패러다임의 마침표였다. 박근혜의 퇴진은 그가 역주행하려 했던 박정희의 유신시대, 그 신화와의 결별이다.”

 

필자는 탄핵의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닌가를 계속 주시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확실한 음성을 듣지 않았기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좀체 발견할 수 없던 사건들이 연일 눈앞에 펼치고 있기는 것을 보면서 그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러면서 ‘만약에 이번에 박대통령–최순실 국정농단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국가의 엄청난 재산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사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비극을 보면서 그 원인의 뿌리에는 ‘세월호 참사’라는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TV를 통해서 몇 시간 동안 목격하는 가운데서 304명의 어린 학생들을 태운 배가 수장되는 참극은 온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어떻게 그 날의 충격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절대위기에서 구출에 앞장섰어야 할 위치에 있었던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참모들조차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자취를 감춘 사실이 들어나면서, 그리고 어렵게 구성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도 정부의 갖은 방해 속에서 해산되는 것을 보면서, 심한 상처를 안고 울부짖는 가족들의 호소가 계속 무시당하는 것을 보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세월호 인양을 계속 미루는 작태를 보면서 국민들의 분노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애타는 호소를 들으신 것 같다. 성경에서는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19:40) “네가 만일 그들(고아와 과부)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출22:23)고 했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외쳐야 할 자들이 잠잠하면 하나님은 돌들을 통해서라도 소리 지르게 하시고 사회적인 약자들이 너무나 억울하여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그들의 애소(哀訴)를 들으신다는 말씀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안산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팽목항에서 풍창노숙하면서 정부와 국회, 사회를 향해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혀달라.’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 ‘세월호를 인양하고 미수습된 9명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수도 없이 눈물로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나 정부나 여당은 완전히 무시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저들을 반정부집단인양 박대하고 있으니 그 억울함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역사하심인가? 그 때부터 박근혜 정권의 흑막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일보가 2014년 11월 28일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을 공개함으로 청와대 구중궁궐에 깊이 감추었던 어둠의 일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최순실 씨의 이름이 처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도, 십상시들의 이름도, 대한민국의 권력서열 1위가 최순실, 2위가 정윤회, 3위가 박 대통령이라는 말들이 회자된 것도 이 때부터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정부에 대한 민심을 바꾸게 한 것인가? 한겨례 경제사회연구원 한귀영 사회조사센터장은 컬럼에서 “2015년 <한겨레>는 신년조사에서 해방 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물었다. 이 질문에 50대 이상은 한국전쟁을, 40대 이하는 세월호를 꼽았다. 한국전쟁이 우리가 세운 국가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중장년 세대의 공포를 보여준다면, 세월호 참사는 그 국가가 우리를 버릴 것 같다는 충격을 상징한다. 세월호는 우리 시대의 묵시록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 세월호 참사가 민심의 줄기를 바꾸게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부패의 분명한 증거가 확실해도 여대야소(與大野小)에서는 아무 개혁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해방 후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사실, 정치적 정황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야당은 두 쪽으로 분열된 상태였고, 무엇보다도 야당의 텃밭인 호남을 중심으로 국민의 당이 창립된 것이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이 180석을 장담할 정도의 판이 짜여 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새누리당은 공천 과정에서 친박과 비박 간에 추잡한 싸움을 벌임으로 콘크리트 지지 세력들조차도 외면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결국 여소야대 정국이 되면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야당 중심의 특검(特檢)이 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야당세가 강하더라도 대통령중심제의 정국에서, 온갖 반칙에 능숙한 정부와 여당을 향해 부정부패를 파헤친다는 것은 너무나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인가? 그 때에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비폭력·평화집회 중심의 촛불집회였다. 지금까지의 돌이나 각목, 화염병으로 데모하던 방법과 전혀 다른 형태였다. 기독적인 투쟁방법이기에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촛불집회를 더 촉발하게 만든 것이 이화여대 사태였다. 최순실 딸의 부정입학과 학사특혜에 대한 항의집회가 수많은 흙수저 가정들의 학부형들과 학생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추운 겨울임에도 촛불집회에 모이는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20회 동안 연인원 1600만에 달함으로 세계가 경탄할 정도였다. 더욱이나 평균 100만 이상, 때로는 200만 이상이 모였으나 축제처럼 평화롭게 진행하면서 모든 시민들이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고 단 한 명도 불상사나 체포되는 일이 없이 마쳤고 쓰레기들도 자발적으로 치우는 등 질서를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통령 때문에 세계 앞에 너무나 부끄러웠으나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성숙한 민주시민의 모습이 보임으로 그나마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이처럼 누구의 지시에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촛불집회가 정부와 국회, 언론, 특검에 큰 압력을 주었고, 종내에는 불의하고 무능한 대통령을 탄핵함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의해 국가가 곤두박질 당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쾌거를 이루했다고 볼 수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구중궁궐 꼭꼭 숨겨둔 검고 추잡한 비밀들이 오히려 측근들을 통해서 백일하에 들통 나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깨알같이 기록한 안종범(정책조정수석)의 40개의 수첩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지시사항을 잊지 않기 위해 충성스럽게 녹음했던 정호성(제1부속비서관)의 236개의 파일들, 그리고 최순실의 수족이었던 고영태, 노승일, 장시호 등의 내부 고발자들이 밝혀낸 자료들이 결국 탄핵의 핵심증거가 되었으니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이 가슴에 깊이 파고든다.

 

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생각은, 탄핵을 주도했던 헌법재판소 안창호 재판관의 글을 읽으면서 더 확고해지는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는 서석주 변호사처럼 쭉정이 같은 자들도 적지 않으나 안창호 판사 같은 알곡 크리스천들이 도처에 있음으로 이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